뉴스속오늘
과거의 오늘, 뉴스가 전한 다양한 사건과 감동의 순간들을 되짚어봅니다. 사회, 문화, 정치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던 이슈와 인물들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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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14일, 경기 부천 원미구 한 놀이터에서 놀던 초등학생 두 명이 실종됐다. 경찰은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고 같은 해 1월30일 부천 인근 야산에서 싸늘한 주검이 된 두 학생을 발견했다. 이른바 '부천 초등학생 피살 사건'이다. 경찰의 지지부진한 수사로 자칫 미궁으로 빠질 뻔했던 이 사건은 발생 2년 5개월 만에 다른 사건으로 잡힌 범인이 자백하며 마무리됐다. 당시 범인은 범행에 대해 "그냥 죽이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사라진 두 초등학생…16일 만에 발견했지만━실종 당일 A군(당시 13세)과 B군(당시 12세)은 밤 시간 공놀이하러 나간 뒤 그대로 사라졌다. A군은 실종 전 같은 날 오후 8시50분쯤 수신자부담 전화로 여동생에게 "엄마가 있는 집 근처 PC방으로 간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게 마지막이었다. 경찰은 탐문수사 중 A군과 같은 반 친구로부터 "실종 당일 오후 10시쯤 이들이 성인 남성 뒤를 따라가는 모습을 봤다"고 진술했다. 이에 경찰은 마지막 목격지 일대에서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다.
35년 전인 1991년 1월 29일 밤 11시쯤 이형호군(당시 9세)의 집에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서울 말씨를 쓰는 수화기 너머 남자는 "내가 형호를 데리고 있다"며 "이틀 뒤 다시 전화할 테니 7000만원과 카폰이 달린 자동차를 준비하고 있어라"고 말했다. 이후 유괴범은 서울 곳곳의 공중전화를 옮겨 다니며 이군 부모에게 60회 이상 연락해 협박했다. 경찰은 28만장에 달하는 전단과 1000여개의 음성 테이프를 뿌리며 공개수사에 나섰지만, 끝내 유괴범을 붙잡는 데 실패했다. 이군은 같은 해 3월 서울 송파구 한 배수구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형호군 유괴 사건은 △개구리 소년 사건 △이춘재 연쇄 살인 사건(해결)과 함께 대한민국 3대 미제 사건으로 분류됐다. 2007년에는 이 사건을 다룬 영화 '그놈 목소리'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군의 유괴 당일, 그날 저녁까지만 해도 평범한 하루였다. 겨울 방학이었던 터라 이군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6시쯤 이군이 사라졌고, 늦은 밤 유괴범의 전화가 걸려 왔다.
1년 전인 2025년 1월 28일. 밤 10시15분쯤 부산 김해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홍콩행 에어부산 BX391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다행히 이륙 전이었고 승무원들도 신속하게 대처한 덕에 탑승객 176명 모두 생존했다. 당시 승객들 머리 위 선반(오버헤드빈)에 있는 보조배터리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파악되면서 기내 수하물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약 1년이 지난 현재 한진그룹 소속 5개 항공사는 보조배터리 기내 사용을 전면 금지한 상태다. ━이륙 미뤄진 덕에 신속한 대피…176명 전원 생존━사고 여객기 출발 예정 시간은 오후 9시55분이었다. 하지만 오후 10시4분 홍콩국제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계류장에서 대기하던 중 김해공항 계류장 관제사로부터 '항로 분리'(항공기 안전 간격)를 이유로 출발 시간을 10시33분으로 미뤄야 한다고 통보받았다. 그런데 10분 만인 오후 10시14분 기내 뒤쪽에 있던 승객들 머리 위 선반에서 '타닥타닥' 소리가 들리더니 연기가 나면서 불똥이 떨어졌다.
2022년 1월 27일 산업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형사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다. 2018년 12월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시설물 내부를 순찰하다 기계에 끼여 숨진 지 3년 만이다. 그러나 법 시행 후 지난해 9월까지 피고인에게 실형이 선고된 비율은 단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과 합의하면 형을 줄여주는 법원 태도가 '솜방망이 처벌'의 주요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내년 4월까지 중대재해법 위반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새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구의역 김군→김용균 사망…산안법 개정안·중대재해법 도화선━김용균씨는 만 24살이던 2018년 9월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 도급업체인 한국발전기술에 계약직으로 입사했다. 1년 근무 시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는 조건이었지만 김씨는 입사 3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다. 늦은 밤 홀로 석탄을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다 기계에 머리가 끼이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2020년 1월26일. 미국프로농구(NBA) 레전드 코비 브라이언트가 41세의 이른 나이에 둘째 딸 지아나(당시 13세)와 헬기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20년을 LA 레이커스(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한 팀에서만 뛰며 팀을 5차례 정상에 올린 실력파 스타였다. 그는 파이널 우승 5회, 파이널 MVP 2회, 시즌 MVP 1회, 올스타 18회, 올스타전 MVP 4회, ALL-NBA 팀 15회 등 화려한 전적을 남기고 2016년 은퇴했다. 농구로만 11억1000만달러(한화 약 1조6270억원)를 벌어들였던 코비는 자신의 농구 후계자로 여긴 둘째 딸 지아나와 함께 헬리콥터를 타고 농구 경기를 보러 가다가 비극적 사고를 당했다. ━딸 넷 둔 진정한 딸 바보…둘째 딸 농구 실력에 "프로선수 될 것" 자랑도━ 코비 브라이언트는 아들 없이 슬하에 딸만 넷을 둔 아빠였다. 그는 딸들과 보내는 시간을 먼저 생각하는 '딸바보'였다. 특히 둘째 딸 지아나는 아빠 코비의 DNA를 물려받아 농구 실력을 뽐냈다.
2013년 1월 25일. 울산 중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잔인하게 자매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홍일(당시 26세)이 사형을 선고받았다. 김홍일은 이에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 판결을 깨고 무기징역으로 형량을 줄였다. 2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그는 옥살이 중에도 "20년쯤 살면 가석방된다", "20년 뒤면 나간다", "출소하면 여자도 사귈 거야"라는 등 발언을 하며 반성은커녕 후일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충격을 안기기도 했다. ━ "헤어지자"는 말에 분노…집으로 찾아가 흉기로 자매 살해━김씨는 2008년 4월 병역 의무를 마친 후 같은 해 7월 울산 중구에 있는 한 주점에서 5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때 주점에서 일을 돕던 사장의 딸 A씨와 그의 동생 B씨를 알게 됐다. 김씨는 동갑인 A씨와 2009년 7월부터 교제하게 됐다. 두 사람은 2009년 7월부터 2012년 7월까지 사귀었다. 연애 4년 차에 접어든 2012년 7월 김씨는 A씨로부터 "그만 헤어지자"는 결별 통보 문자를 받았다.
9년 전인 2017년 1월 24일 서울고법은 '수락산 묻지마 살인 사건' 범인 김학봉(당시 62세)에게 원심판결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김학봉을 살인 및 절도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긴 뒤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1심과 2심 재판부는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라며 "사형을 선고하든 무기징역을 선고하든 사실상 큰 차이는 없다"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학봉 측은 법정에서 "편집 조현병에 의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주장을 펼쳤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정신 감정 결과, 사물을 변별하는 능력이 비교적 건재하다"며 "감형 여지는 전혀 없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항소심 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장을 냈다. 2017년 4월 대법원이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김학봉 형량은 무기징역으로 확정됐다. ━범행 전날 미리 산에 올라 준비…"처음 만난 사람 죽였다"━ 김학봉은 2016년 5월 29일 새벽 서울 노원구 수락산 등산로 초입에서 홀로 등산하던 60대 여성의 목과 배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했다.
2009년 1월23일(이하 현지시간). 벨기에 덴더몬드 지역의 한 어린이집에 괴한이 침입해 흉기 난동을 벌여 3명이 숨지고 12명이 중상을 입었다. "뭐 하나만 여쭤볼게요. 좀 도와주시겠어요?" 이날 오전 10시 15분쯤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서쪽으로 30㎞ 떨어진 동플랑드르주 덴더몬드 지역의 한 어린이집에 새빨갛게 머리를 염색한 한 남성이 들어와 도움을 청했다. 이 남성을 가장 먼저 마주친 건 보육교사 리타 반 가이테였다. 그는 반 가이테에게 다가가 말을 건 뒤 등 뒤에 숨기고 있던 30㎝ 길이의 흉기로 마구 공격했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반 가이테는 저항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괴한의 습격을 목격한 또 다른 보육교사 마리타 블린드만(당시 54세)이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하려 했다. 그러자 괴한은 그에게 달려들어 목과 복부를 찔러 살해했다. 흉기에 찔린 반 가이테는 놀이방에 있던 창고로 도망쳤다. 이곳에는 다른 직원들이 숨어있었다. 괴한은 창고 문을 열려고 하다 실패하자 금방 돌아섰다. 그때 창고 안에 있던 직원은 먼지떨이로 그를 덮쳐 제압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오히려 흉기에 찔리고 말았다.
1998년 1월 22일 . IQ 167의 수학 천재에서 연쇄 폭탄 테러범으로 전락한 테드 카진스키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른바 '유나바머'(Unabomber)로 불리며 세상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인물이다. ━소포 열자 '펑'…17년 동안 16번 테러━1978년 5월 미국 노스 웨스턴대학 버클리 크리스트 교수는 발신인에 자신의 이름이 적힌 소포를 받았다. 수상함을 느낀 크리스트 교수는 경찰을 불렀다. 이후 소포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한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소포가 폭발했다. 소포 속에 들어있던 건 다름 아닌 폭탄으로 유나바머의 시작이었다. 약 1년 뒤인 1979년 5월에는 노스 웨스턴 대학교 대학원생 존 해리스가 소포를 개봉하다 부상을 당했고, 같은해 11월에는 시카고를 출발해 워싱턴DC로 향하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보잉444기 우편물 보관실에서 다량의 연기가 발생해 항공기가 비상착륙했다. 그 이듬해에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사장에 4번째 소포 폭탄이 배달됐고 얼굴과 몸에 수많은 파편이 박히는 중상을 입었다.
1968년 1월 21일 오후 김신조 등 북한 124군부대 소속 무장 공비 31명이 서울에 침투했다. 이들의 목적은 청와대를 기습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는 것이었다. 북한 무장 공비들은 1968년 1월 18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왔고, 하룻밤 숙영한 뒤 19일 저녁부터 얼어붙은 임진강을 횡단했다. 이후 당시 경기도 파주군 삼봉산에서 숙영한 무장 공비들은 20일 앵무봉을 통과, 산악길을 따라 서울 안으로 진입했다. 이들은 서울 진입 전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코트 아래 총기 등 장비를 숨긴 채 이동했다. 그러나 남성 무리가 시내에서 2열 종대로 이동하는 것을 본 경찰은 이상함을 느껴 검문에 나섰다. 그러자 무장 공비들은 "우린 군 소속 방첩 요원들"이라며 "산악 훈련 후 복귀하는 길이니까 신분증 확인할 필요 없다"고 되레 경찰들을 위협했다. 당시 검문 장소는 청와대에서 불과 300m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경찰들은 의문의 남성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결국 그들을 체포하고자 했다. 무장 공비들은 총기와 수류탄을 사용하며 저항했고, 그로 인해 현장을 지휘하던 최규식 종로경찰서장이 사망하고 여러 경찰관이 중상을 입었다.
1999년 1월 19일. 강원 삼척시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가 한 비포장도로에서 엽총으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고급 승용차를 탄 부부가 자신의 소형차를 추월했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총기를 난사한 것으로 드러나 공분을 샀다. 사건 당일 오후 4시10분쯤 전주에서 올라온 신혼부부 김모씨(당시 28세)와 장 모 씨(당시 27세)가 탄 검은색 그랜저가 강원도 삼척시의 한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사실혼 관계였던 부부는 슬하에 7살, 2살 두 딸을 두고 있었다. 어려운 형편 탓에 결혼식을 미루다 사건 이틀 전 뒤늦은 결혼식을 올리고, 삼척시로 신혼여행을 온 것이었다. ━사실혼 7년 만에 떠난 신혼여행…엽총 맞고 숨진 부부━부부가 탄 차량 앞에는 아주 느린 속도로 달리는 엑센트 차량이 있었다. 이 차 뒤에서 달리던 부부의 차량은 비포장도로의 흙먼지를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고,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주행이 힘든 상태였다. 결국 운전하던 남편 김씨는 속도를 높여 이 차를 추월했다. 그러자 엑센트는 곧장 따라붙었고, 창문을 내린 뒤 험한 욕설을 퍼부었다.
2002년 1월18일,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가수 유승준이 미국 시민권 선서식에 참여했다. 이때 그는 '4급 공익근무요원' 판정받고 입대를 석 달 앞둔 상황이었다. 병역 의무를 피하기 위해 스스로 미국 시민 스티브 승준 유가 된 그는 "2년 반 동안의 공익근무를 하고 나면 내 나이가 거의 서른이다. 처음부터 다시 영주권 준비를 해야 하고, 영주권이 나오고 시민권이 나올 때까지 사실상 가족과 생이별이다. 또 댄스가수 생명이 짧은 걸 저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선택으로 그는 '병역 기피 대명사'로 자리 잡았고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땅을 밟지 못하고 있다. ━1997년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병역법 개정안 시행 후 2002년 활동 막 내려━유승준은 1997년 데뷔와 동시에 스타덤에 올랐다. 1집 활동 곡이었던 '가위', '사랑해 누나'가 히트를 하면서 등장과 동시에 톱스타로 자리 잡았다. 이어 '나나나', '열정', '찾길 바래', 'Wow' 등 발표하는 곡마다 큰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