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간다. 한국에서 한 해 검거되는 범죄 사건은 113만건(2021년 기준). 사라진 범죄자를 잡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경찰 베테랑을 만났다.
총 197 건
2019년 8월. 경기도 수원의 한 원룸 안 현관에서 흉기에 찔린 채 쓰러져 있는 시신이 발견됐다. 원룸 내부에서는 시신만 발견됐을 뿐 범행도구 등 피의자를 추정할만한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다. 경기남부경찰청 과학수사대 조명룡 경사(40)는 시선을 외부로 돌렸다. 시신이 발견된 건 원룸 내부지만 옆방까지 샅샅이 조사했다. 기적처럼 옆 호실 문 손잡이에서 혈흔을 발견해 채취한 끝에 살인 현장의 범인을 특정할 수 있었다. 과학수사요원 8년 차인 조 경사는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현장에서 발견된 작은 단서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 그는 올해 1·2분기 전국 실적 1위로 경찰청장 표창을 받은 '베테랑'이다. ━장판·벽지 뜯고, 하수구 안까지 들여다본다…직접 개발한 '휴대용 렌즈'로 지문 채취━전국 시도경찰청의 과학수사요원 1900명은 매일 사건현장을 누빈다. 이들은 최신 과학 기술로 개발된 기구와 장비를 이용해 사건현장에서 발견되는 모든 증거를 채취한다. 조 경사도 그들 중 하나다.
# 2018년 9월 경기 연천군 인근 야산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현장엔 백골이 된 사체와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옷 몇 벌 뿐 지갑, 휴대전화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기북부경찰청 과학수사대 이서정 검시조사관(37)이 나설 때였다. 현장에 출동한 이 조사관은 발견된 두개골과 골반뼈 등의 모양을 보고 남성임을 알아냈다. 또 생전에 뇌 수술을 받은 두개골의 자국과 어금니 쪽의 치과시술 흔적을 확인했다. 즉시 이같은 검시 결과를 이전 실종사건과 대조했고, 9개월 전인 2017년 12월 실종신고가 됐던 60대 남성의 특징과 일치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신고 당시 유서를 쓰고 나갔다는 가족들의 증언이 있었으나 그간 해당 남성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백골이 되어 그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샜을 아내와 자식들의 품에 9개월만에 돌아갔다. 사건을 해결한 이 조사관은 과학수사를 통해 현장에서 발견된 변사자를 검시하고 주변 환경 조사를 통
지난해 3월 서울 도봉구에 거주하는 한 70대 남성은 "계좌가 도용돼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검찰 수사관의 전화를 받았다. "체포영장 발부를 막으려면 돈을 꺼내 검찰에 맡겨라"는 말에 피해자는 계좌에 있던 9000여만원의 돈을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 집 현관문에 걸어뒀다. 속은 것을 깨달은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을 때에는 이미 현금은 사라진 후였다. 이 사건의 수사 과정에서 외국 국적의 수거책과 간부, 한국인 총책 등 6명으로 구성된 범죄조직의 윤곽이 잡혔다. 드러난 피해액만 59억여원에 달하며 200~300명의 피해자가 이들 조직에게 사기를 당했다. 경찰은 끈질긴 수사 끝에 6명 중 5명을 검거하고 중국으로 도주한 총책을 뒤쫓고 있다. 이 사건을 전담한 서울 도봉경찰서 강력팀 김준형 형사(41)는 기자와 만나 "형사가 범인을 못 잡고 먼저 쓰러져버리면 사건은 미제로 남는다"고 했다. 13년차 베테랑 그는 수도권 일대의 CCTV를 모조리 뒤져가며 밤을 새워 범인을 쫓았다. 김 형사는
"경찰이 밤새 뒤쫓지 않으면 '연중무휴' 범죄자를 잡을 수 없잖아요." 경기북부경찰청 사이버수사1팀장 윤희동 경감(48)은 13년차 '연중무휴' 베테랑 수사관이다. 지난 1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을 때조차 매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수사에 집중했다.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복권에 당첨시켜주겠다'며 120억원대를 뜯어낸 사기단을 검거할 때도 윤 경감의 열정이 빛을 발했다. 그는 6개월이 넘는 끈질긴 수사 끝에 사기단 간부 18명을 검거하고 13억원을 추징 보전했다. 윤 경감은 "2주 정도 입원했을 때도 '피해자가 있는 사건을 내버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면서 수사했다"며 "몸 상태가 나쁘지 않으면 자가격리 기간에도 범인을 추적했다"고 했다. ━"전자복권 당첨시켜주겠다"는 말에 돈 보낸 피해자들…입금하면 연락 끊었다━ 가짜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피해자를 끌어들인 이 사건에는 어머니 수술비를 투자한 사람부터 대출을 받아 2억원 넘
"무슨 낯으로 가족을 봅니까 제가. 진짜 죽고 싶습니다." 지난 2월 밤 늦은 시간 술에 취해 전남훈 경기남부청 사이버범죄수사대 팀장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몸캠피싱' 피해자 A씨였다. 그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말을 걸어 온 여성 프로필의 신원 미상자와 영상통화를 했다. 이후 "돈을 보내지 않으면 얼굴과 몸이 드러난 음란 영상을 유포하겠다"는 협박 전화와 문자를 받았다. 피해자가 돈을 보냈지만 요구는 계속됐고, '몸캠' 영상은 피해자의 며느리를 포함한 지인들에게 뿌려졌다. 전 팀장은 이미 1년 가까이 '몸캠피싱' 조직을 쫓고 있었다. 랜덤채팅이나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여성으로 위장한 사기 조직원들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것이 첫번째 단계다. 이들은 친밀감을 높인 뒤 서로 영상통화를 하자고 요구한다. 피해자가 영상통화에 응하면 이모습을 촬영한다. 이 때 조직원들은 피해자에게 파일을 하나 보내는데, 이걸 무심코 누르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있는 연락처가 모두 사기조직에게 넘어간
#지난 2월 전국 무인 점포 23곳이 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인 30대 남성 A씨는 충남, 경북, 경기, 서울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니며 무인점포에서 현금을 훔쳤다. 손님이 적은 심야시간을 노려 갈고리 모양의 쇠지렛대로 현금교환기를 열었다. 훔친 현금은 1480만원에 달했다. A씨는 경찰 추적을 피하기 위해 옷을 여러 번 갈아입었다. 택시를 타고 CCTV(폐쇄회로TV)가 없는 논밭에 내리는 등 경찰 추적을 치밀하게 따돌렸다. A씨를 검거한 건 25년간 강력·마약 사건 등을 수사해온 안송규 경기 평택경찰서 강력팀장(53)이다. 안 팀장은 지난 3월4일 추격전 끝에 A씨를 붙잡았다. 안 팀장은 "A씨가 어디에서 나타날지 알 수 없으니 쫓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숙박업소, 매장 등 수십 곳을 샅샅이 뒤진 끝에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벙거지 모자쓰고 검은 봉지에 현금 쓸어담아…옷 갈아입으며 추적 따돌려━ 안 팀장이 근무하는 평택서에 무인점포 도난이 발생했다는 신고 접수
#2008년 제 2금융권인 한 은행 전산망에 해커가 침입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의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일명 '랜섬노트'를 발견했다. 은행의 대출자 신원 등 관련 데이터를 전부 암호화했으니, 이를 해제하려면 20만달러(약 2억2500만원)를 지급하라는 해커의 전언이 담긴 파일이었다. 지금은 랜섬웨어가 창궐하지만 당시에는 그 단어조차 생소했다. 2001년부터 20년동안 사이버테러수사 외길을 밟아온 이병길 경감도 이때 처음으로 랜섬웨어 사건을 접했다. 랜섬웨어는 몸값(랜섬)과 소프트웨어의 합성어로, 데이터를 암호화해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 뒤 이를 인질 삼아 금전을 요구하는 악성 프로그램을 말한다. 이 경감은 은행 컴퓨터에 누가 어디서 접속했는지 추적부터 나섰다. IP 주소 추적 등 디지털포렌식을 통해 위치를 확인하니 해커의 접속 위치가 매번 달랐다. 공통점은 단 하나. 카페 등 공용 와이파이 신호가 잡히는 곳이었다. 해커가 접속한 장소를 찾아 CC(폐쇄회로)TV를 조회하니
# 2016년 9월2일 경주시 안강읍 인근에서 가족과 마지막 통화를 한 유영순씨(당시 44세)가 실종됐다. 경찰은 단순 실종이 아닐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실종 한 달만에 유씨를 마지막으로 목격한 손모씨(44)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붙잡았다. 하지만 경찰은 수사에서 난항을 겪었다. 시신을 유기했다고 추정되던 장소는 방수 페인트 등으로 모든 흔적이 지워져 있었다. 계속되는 경찰의 추궁에도 손씨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러던 중 같은해 10월7일 유씨의 시신 일부가 발견되며 수사가 급진전됐다. 육안으론 깨끗해 보이는 시신 유기장소에서 체취증거견 '에로스'가 냄새를 맡고 시신 일부를 찾은 것이다. 이후 손씨는 범행을 인정하고 자백했다. 이 사건을 해결한 '에로스'는 후각을 이용해 범행 현장에서 시신, 혈흔이 묻은 범행 도구 등을 찾아내는 과학수사견이다. 에로스를 훈련시키고 현장에서 함께 사건을 해결한 인천경찰청 과학수사과 김재홍 경사(40)는 2014년부터 활약한 베테
"꼭 열심히 신고해주세요." 2018년 하반기,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한 남편이 아내를 경찰에 신고했다. 남편 A씨가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면 매일 아내 B씨가 마신 소주병 7개가 쌓여 있었다. A씨가 외벌로 버는 돈은 생활고로 우울증을 앓던 B씨의 술값으로 나갔고, 7살 아이는 방치됐다. 물리적 충돌과 학대는 없었지만 아이는 정서적 학대와 스트레스로 식사를 제대로 못했다. 남편은 아내의 처벌을 원치 않았다. 달리 도움을 청할 곳을 찾지 못해 경찰에 신고했을뿐 '제발 아내를 말려달라'는 요청만 했다. B씨의 알코올중독에 대한 치료가 급한 상황에서도 A씨는 가정을 지키겠다는 마음에 진술을 거부했다. 뾰족한 수가 없는 가운데 부부다툼과 경찰 신고만 거듭됐다. 해당 사건을 맡은 경력 21년차 관악경찰서 학대예방경찰관(APO) 곽현정 경위(45)는 "관계자가 진술을 안하면 사건 진행이 안된다"면서 "B씨가 변화하지 않고서는 그 고리를 끊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사건 해결에 2년
"알몸 영상 유포당하고 싶지 않으면 빨리 입금하세요." 지난달 27일 경남 마산동부경찰서는 영상 통화로 음란 행위를 유도한 뒤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일명 '피싱' 범죄 조직 일당 8명을 전원 검거했다. 중국에 사무실까지 차려두고 조직적으로 움직인 이들에게 75명의 피해자가 7억여원의 금액을 편취당했다. 이들은 각종 피싱 수법을 동원해 10~50대의 피해자들을 무차별적으로 낚았다. 전원 검거의 맨 앞에는 박종민 마산동부서 사이버수사팀장(46)이 섰다. 박 팀장은 휴가까지 반납해 가며 팀원들과 밤낮으로 이 사건에 매달렸다. 피해자들은 수치심에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박 팀장은 '죽고 싶다'는 말까지 할 정도로 시달리던 피해자들 생각에 차마 손을 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박 팀장은 특채로 경찰에 임관된 이후 16년간 줄곧 사이버 수사를 맡아 온 '베테랑'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이름을 알리는 것보다도 수사가 우선순위다. "얼굴이 알려지면 수사에 지장이 생길까 두렵다"
"마약계 '큰 손', 저희가 드디어 잡았습니다." 태국에서 밀반입한 필로폰을 국내에 유통했던 마약계 '큰 손'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내부에서도 이름 석자만 대면 다 알 정도로 악명높은 마약범이다. 지난 2월18일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가 '큰 손' 검거에 성공했다. 이들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2월까지 검거 작전을 벌여 '큰 손'이라 불리는 총책 A씨를 포함해 판매·유통책, 소지·투약자 등 일당 81명을 잡아넣었다. 그 중심에는 고정희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 경위(52)가 있다. 고 경위는 10개월 간 경기 오산, 전남 해남, 충남 천안 등 전국 각지를 돌며 이들 일당을 쫓았다. 고 경위는 2006년부터 형사 생활을 한 베테랑 수사관이다. 다년간의 수사 노하우로 범죄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추적했다. CCTV(폐쇄회로TV)에서 움직이는 작은 점만 보고도 피의자 동태를 짐작한다. 그는 "마약계 '큰 손'과 그 일당들을 모조리 잡겠다는 마음으로 단서가 될 만한 건 한개도
지난 1일, 30대 A씨는 부산의 한 PC방으로 향하고 있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 고가의 텐트를 판다는 글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PC방 입구에 다다른 순간 누군가 A씨의 이름 부르며 어깨를 잡았다. A씨는 본능적으로 "내가 아니다" "내 동생 이름이다"며 뿌리쳤지만 주머니에선 그 이름이 적힌 신분증이 나왔다. 그리고 금팔찌를 두른 A씨 손목엔 수갑이 채워졌다. A씨는 유명한 중고거래 사기꾼이었다. A씨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내려와 숨어지내며 사기행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날도 그가 쓰려 했던 텐트 판매글은 '사기'였다. 그는 미리 '상품권 판매자'에게서 계좌번호를 얻어내고, '가짜 텐트' 판매 대금을 그 계좌로 받으려 했다. 계좌로 돈이 입금되면 상품권 판매자에게 그 돈을 환불 받는 방식이다. '삼자사기'로 자신의 계좌를 쓰지 않아 흔적을 숨길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흔적을 뒤쫓은 사람이 있었다. 15년 경력의 베테랑 김규환 일산서부경찰서 사이버수사팀장이다. 사이버수사만 8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