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18년 9월 경기 연천군 인근 야산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됐다는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현장엔 백골이 된 사체와 사망 당시 입고 있던 옷 몇 벌 뿐 지갑, 휴대전화 등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아무것도 없었다.
경기북부경찰청 과학수사대 이서정 검시조사관(37)이 나설 때였다. 현장에 출동한 이 조사관은 발견된 두개골과 골반뼈 등의 모양을 보고 남성임을 알아냈다. 또 생전에 뇌 수술을 받은 두개골의 자국과 어금니 쪽의 치과시술 흔적을 확인했다.
즉시 이같은 검시 결과를 이전 실종사건과 대조했고, 9개월 전인 2017년 12월 실종신고가 됐던 60대 남성의 특징과 일치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신고 당시 유서를 쓰고 나갔다는 가족들의 증언이 있었으나 그간 해당 남성의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백골이 되어 그동안 뜬눈으로 밤을 지샜을 아내와 자식들의 품에 9개월만에 돌아갔다.
사건을 해결한 이 조사관은 과학수사를 통해 현장에서 발견된 변사자를 검시하고 주변 환경 조사를 통해 사망 원인 등을 파악하는 일을 한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8년 동안 간호사로 근무하다가 2015년부터 경찰 내 일반공무원인 검시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다.
2005년 경찰에 검시조사관이 처음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전국 시, 도 경찰청에서 약 139명이 현장에서 활약하고 있다. 검시조사관이 되려면 간호사, 임상병리사 면허증 등이 있어야 한다.
검시조사관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대학의 법의부검실의 법의학자, 부검의와 다르다. 법의학자는 시신을 부검해 법의학적 사인을 밝힌다. 반면 검시조사관은 변사현장에 직접 출동해 변사자의 모습, 주변 환경을 종합해 범죄 연관성이나 사인을 추정하고 부검 필요성을 판단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매번 긴박한 상황에서 증거를 찾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 조사관은 "사건을 끝까지 진행하고 종결하는 형사와 달리 검시조사관은 초반에 투입돼 현장에서 짧으면 15~20분, 길어도 1시간 이내에 변사자의 모든 것을 파악해야한다"며 "다음 변사 신고가 들어오면 또다시 출동해야하고 고민하는 순간에 범죄의 단서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해선 안 된다"고 했다.
독자들의 PICK!
이어 "112 신고가 들어왔다는 상황 외 아무런 정보가 없기에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조사를 시작한다"며 "시간이 지나면서 시체와 주변 환경이 변하기 때문에 사건 초반에 정확한 검시소견을 제시해야한다"고 했다.

이 조사관은 대학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때보다 책임감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사건 현장에 나가 의학, 법률적 지식을 활용해 독자적으로 범죄 연관성이나 혐의 등을 밝혀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는 2016년 5월 경기도 의정부시 인근의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50대 여성 변사자에게서 살해 정황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기도 했다. 당시 발견된 여성 변사자는 이불을 덮고 누워있었다. 마치 자는 듯한 모습이었다. 현장도 깔끔하게 정리돼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검시를 시작하면서 신체에 목을 졸랐을 때 나타나는 흔적들이 나타났다. 어깨를 압박했는지 미세하게 멍든 자국도 있었다. 이 조사관은 곧장 살해 정황이 있다고 판단, 현장에 있던 형사팀, 강력수사팀에게 검시결과를 전달했다. 이후 수사팀은 여성과 함께 모텔로 들어와 먼저 자리를 떴던 40대 남성을 용의자로 보고 검거에 성공했다. 이 조사관은 처음으로 단독 출동했던 살인사건 현장이어서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 조사관은 "변사자에게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항상 현장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검시를 시작한다"며 "변사사건 현장이 아니어도 의료사고, 의료처치 등과 관련한 과실여부 등을 따지기 위한 현장에도 나가기에 책임감을 가지고 더 열심히 일을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