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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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한 지 1주일. '대망(待望)'은 '대망(大亡)'이 될 위기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권 행보를 둘러싼 ‘구설수’는 논외로 치자. 이보다 정치권 내 ‘반기문 대망론’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게 위기 요인이다. 반 전 총장에 목을 맬 줄 알았던 ‘보수신당’ 바른정당은 ‘저울질’을 시작했다. 반 전 총장 측의 지분 요구를 받아들여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다. 바꿔 말하면 '와주시기만 하면 감사합니다'가 아니라는 뜻이다. 바른정당만 그런 것이 아니다. '안철수 사당'을 거부하고 '반기문 텐트'를 펼치는 듯 했던 국민의당의 기온도 달라졌다. "우리와 정체성이 맞지 않다"는 말이 거침없이 나온다. '불임 정당’ 위기에 빠진 새누리당조차 ‘여차하면 황교안’이라며 배짱을 부린다. 1주일 전만 해도 ‘반기문’ 중심의 빅텐트였는데 이젠 반 전 총장이 텐트를 찾아 헤매야 할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기대에 못 미치는 ‘반풍(潘風)’을 접한 정치권의 약삭빠른 행동에 불과하다고 넘길 수 있다
#1. 에비앙과 퇴주잔, 턱받이 같은 폭발적(?) 논란에 가렸지만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게는 지난 12일 사소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의 선거캠프가 페이스북 그룹을 개설했다. 담당 기자가 가입하면 일정 등을 공지하는 채널로 쓰겠다고 했다. 명칭은 '반기문의 새소식'. 그런데 당일 오후늦게 그룹 이름을 바꿨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반 총장의 좌우명이다. 반기문에게 상선약수가 있다면 야권 유력주자 문재인 전 대표는 '운명'이란 화두를 달고 산다. 고(故) 노무현 대통령 서거 후에도 정치에 거리를 두다 2012년 대선등판 요구에 끝내 출마할 때, 명분은 '운명'이었다. 반 전 총장 측은 언론창구 이름을 기능 위주의 '새소식'에서 '상선약수'로 바꿀만큼 행보 하나하나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상선약수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온다. '가장 좋은 것(상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수선리만물이부쟁(水善利萬物而不爭) 즉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는다는 구절로 이어진다. 대
# "칠푼이 아이가?(칠푼이 아니냐?)" 2012년 7월 대선 정국에서 YS(김영삼)는 박근혜 당시 후보를 이렇게 혹평했다. 그래도 박 대통령은 8월 YS를 예방했다. 둘의 대화는 나름 화기애애했다. YS는 비록 웃음기 없는 얼굴이지만 "많은 산을 넘어야 할 텐데, 하여튼 잘 하라"고 덕담했다. 박 대통령은 "감사하다"고 답했다. 대선 결과는 알려진 대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YS를 찾아 세 번 고개를 숙였다. 1990년 3당 합당을 거세게 비판하며 원수지간이 된 후 얼굴도 보지 않던 사이였다. 예방 당시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YS가 일본 출장길에 선물한 그 유명한 'YS시계'를 꺼내 찼다. "지나고보니 내 생각만 맞는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이겼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에서 소장파 개혁의 상징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그러던 중 전두환 전 대통령을 예방해 세배했다. 원 당시 후보는
18. 기관의 장은 전문성보다는 조직 장악력이 더 중요하다. 서울시 부시장은 세 명이다. 제1부시장은 일반행정, 제2부시장은 건설행정, 정무부시장은 대외관계를 맡는다. 나의 서울시 경험은 서울시 중구청에서 경험한 행정사무관 시보 생활 6개월이 전부다. 당연히 서울시 행정에 문외한이다. 그런데 내가 시장 다음의 최고위직(정무부시장)이 된 것이다. 막 부임했을 때 나이가 45세였다.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는 내 또래의 고시동기들은 거의 다 과장급이었다. 부시장을 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다. (※2002년 이명박 후보의 서울시장 선거를 도운 정두언은 그해 7월 이명박 서울시장 취임 후 정무부시장이 됐고 2003년까지 일했다.=편집자 주) 그러다 보니 우스운 일도 많이 생겼다. 하루는 외부에서 누가 만나러 오기로 했다. 나도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다. 부속실에서 대기 하고 있는 그를 안으로 모시라 했다. 나는 그를 맞이하기 위해 문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는 인사를 하는 나를 무시하고 더
# 2011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내놓은 회고록엔 "1987년 대선 때 선관위에 신고금액인 130억원 외에 비공식적으로 2000억원을 더 썼다"고 적혀 있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민자당 후보에게 3000억원을 지원했다"고도 했다. 당시 김영삼 후보 진영에 있던 김종필 전 총리는 "대선자금 규모를 알면 국민이 기겁할 것"이라고 말했다. '희망돼지 저금통'을 통해 선거 후원금을 모은 노무현 전 대통령도 대선자금에서 자유롭진 못했다. 집권 초기인 2003년. 노 전 대통령의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이뤄졌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던 안희정 충남지사가 구속됐다. 안 지사가 불법으로 모금한 금액은 60억원에 달했다. #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밝힌 2007년 대선자금은 373억원. 이 전대통령 측근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역대 어느 대선보다 돈을 적게 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말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근혜 후보와 한나라당 대선 경선전이 대선 본선 수준
퇴주잔이나 턱받이 문제가 아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걱정해야 할 것은 ‘메시지 부재’다. 귀국 후 그의 일주일 행보가 ‘희화화 대상’으로 소비된 이유다. 지지율은 거의 그대로다. 정치철학, 대권 전략 부재에 대해 의심, 걱정까지 생긴다. 지난 16일 기자들과 처음 가진 치맥타임(치킨과 맥주를 곁들인 술자리) 자리. 반 캠프는 처음부터 비보도를 염두에 뒀지만 언론 간 비보도 합의가 이뤄지기 전에 속보가 나가면서 공개된 그 자리다. 반 전 총장은 설 직후 입당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했다. "정당 없이 홀로 하려니 금전적으로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반 전 총장은 "캠프 사무실을 두 군데 얻었는데 둘 다 사비로 얻었고 차량도 두 대, 기사도 두 명, 비서 등등 여기저기 비용이 다 내 돈"이라고 말했다. 정당은 개인의 저금통이 아니다. 반 전 총장의 발언은 정치철학의 부재로 해석될 수 있다. 게다가 별 준비 없이 귀국만 하면 자금문제가 해결될 걸로 봤던 모양이다. 대권전략의
국민들 눈에 박근혜 대통령은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다. 누구든 그보다는 나을 것이란 자조가 깔려있다. 이럴 때에 ‘문재인은 안 된다’는 주장이 먹히겠나.” ‘문재인 대세론’에 대한 새누리당 인사의 말이다. 이번 대선은 결국 ‘정권 교체 여부’라는 분석도 곁들였다. 야권도 아닌 여당 인사 입장에서 ‘문재인 대세론’이 나온 게 놀랍다. 이 인사 입장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게 반가울 리 없다. 하지만 ‘반문(반 문재인)’만 외치는 정치권을 보면 속이 더 타들어간다고 목청을 높인다. 촛불 민심과 대선 여론을 제대로 못한 채 진영 논리만 내세울 뿐 변한 게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20년 가까이 정치권에 머문 한 전략가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냐’는 질문에 “문재인 전 대표가 될 확률이 70%”라고 단언했다. 그의 정치 성향도 친문(친 문재인)이 아니다. 문 전 대표와 친분도 없다. 그는 “국민들은 정권교체를 누가 할지 본다. 국가 대개혁을 누가 제일
17. 정책의 이념적 구분의 허구성. 인류 역사상 개혁을 부르짖지 않은 때가 있었을까.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개혁이 사회적 화두로 대두된 것은 문민정부 출범 이후이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개혁이 계속되고 있다. 개혁은 이렇게 오래 걸리는 것인가. 오래 걸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개혁의 실패를 애기해주는 것이 아닌가. 개혁이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어쨌든 무언가 좋게 만든다는 뜻일 것이다. 무언가 좋아지지 않았으니 개혁이 계속되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간의 그 무수한 개혁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한마디로 엉터리 개혁이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진단이 잘못 되었든가, 처방이 잘못 되었든가, 아니면 둘 다 잘못된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엉터리는 어떤 경우에 발생하는가. 첫째, 관념에 치우쳐 현실을 꿰뚫어 보지 못할 때 나타난다. 둘째, 국내외의 지식과 정보가 수준에 미달할 때 나타난다. 셋째, 일머리를 모르는 3류들이 추진주체가 될 때
세계무대에서 활약한 '국민영웅'이 금의환향했다. 그가 이룬 성취와 옆집 아저씨 같은 푸근한 인상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본인은 입도 안 뗐는데 국민들이 알아서 그를 '대권주자' 반열에 올려놨다. 여야 모두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당분간 중립지대를 지키겠다며 여야 정당들의 애를 태운다. 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의 얘기다. '아이크'(Ike)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그는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전쟁영웅'이었다. 1952년 5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최고사령관 자리에서 물러나 민간인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나는 아이크를 좋아해!'(I like Ike!)라고 적힌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렸다. 어떤 대선주자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심지어 현직 대통령이었던 해리 트루먼조차 아이젠하워에게 대통령 후보 자리를 제안하며 자신은 부통령 후보가 되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지지자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김 회장은 한국시리즈 10회 우승(해태 타이거즈 9회, 삼성 라이온즈 1회)에 빛나는 한국 야구의 전설이다. 김 회장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진행된 문 전 대표의 지지자그룹 '더불어포럼' 창립식에 참석했다. 문 전 대표의 바로 옆자리에 앉으며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문 전 대표는 최근 김 회장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김 회장을 만났고 지지 의사를 받는데 성공했다. 김 회장은 고(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도 지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의 자존심이었던 '해태 왕조’를 이끈 김 회장의 존재는 ‘호남 수복’을 노리는 문 전 대표에게 ‘호재’가 될 것으로 정치권은 분석한다. 김 회장에 대한 ‘구애’는 문 전 대표의 ‘야구 사랑’과 한묶음이다. 문 전 대표는 김 회장과 만난 자리에서 김 회장의 팬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날 더불어포럼 창립식에서도 문 전 대표는 "중학교 때부터
16. 경제는 정치다. MB가 쓴 '신화는 없다'라는 책의 주제는 그가 서민 출신으로서 성공 신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서민이미지로 국민적 인기를 얻어서 대통령까지 됐다. 그리고 친서민 중도실용을 표방했다. 그런데 이명박의 정신세계, 사고방식은 과연 서민이었나?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니었다. 그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가 서민이었다면 현대그룹에 들어간 이후, 기업인으로서, 재벌 CEO(최고경영자)로서 제2의 인생을 살았다. 전반부의 인생은 로맨틱하고 낭만적인 추억으로만 남아있을 뿐 그의 실제 사고방식은 재벌이었다. 이게 집권 후 여지없이 드러났다. 강부자(강남, 부자),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인사를 한 이유도 그런 것이다. 주변에 소위 말해 가진 자들이 포진했다. 그러니 정책도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 감세 등을 통해 기업을 부양해서 기업이 성장의 견인차가 되도록 하는 신자유주의로 간 것이다. 어떤 정책을 표방하고 관철시키려면 거기에 맞는 사람을 자리에 앉혀야
15. 백해무익한 정권인수위원회. 나는 평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한마디로 인수위원회는 백해무익한 기구이다. 소위 87년 체제 이후 단임정권이 되면서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인수위가 꾸려졌다. 인수위는 대통령이 당선된 후 항상 난리법석을 피우는 곳이다. 그러다가 정부가 들어서면 새 정부는 새로 조각을 하고 장관들은 업무 계획을 세워서 대통령에게 다시 보고를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인수위는 뭐하는 곳인가? 인수위가 실질적으로 새 정부에 업무를 인수인계한 경우가 있나? 예를 들어 인수위에서 안을 만들었으면 누군가 끝까지 챙겨야 하는데 인수위가 끝나면 그 안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물론 일부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인수위에 있던 사람이 내각에 들어가는 경우에 한해서다. 한마디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지는 사람도 없이 인수위가 두어 달 동안 난리만 치다보니, 시작 전에 오히려 정부를 망가뜨리는 역할을 한다. 거기서 온갖 흠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