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 전문가 고(故) 기우봉 박사, 아름다운재단에 '호민기금' 조성 후 영면

"무엇을 남길까? 아프면서 줄곧 생각했습니다. 진보라고 함은 좌우방향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 누구나 바라는 것, 내 몫에서 최선을 주고 가고 싶은 거지요."
고(故) 기우봉 박사가 유산기금을 만들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아름다운재단 관계자에게 남긴 말이다.
아름다운재단은 10일 이메일소식지를 통해 호민 기우봉기금을 조성한 기우봉 박사가 지난 3월 1일 지병인 암으로 영면했다고 전했다. 향년 73세.
기 박사는 지난 1월 15일 아름다운재단에 유산기금을 남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유산기금이란 내가 죽은 후 남게 될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사회에 환원하기로 약속해 만드는 기금이다.
아름다운재단 이메일소식지는 기 박사가 2월 4일 설 연휴 전날 "못 다 이룬 일과 가슴 뜨겁게 만난 사람들을 위해 기금을 만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기 박사는 "못 다 이룬 일은 풍력에너지 개발이요, 가슴 뜨겁게 만난 사람은 시민단체 활동가"라고 말했다.
그는 재발한 암과 투병하던 지난해, 72세의 나이로 강원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 강원대 전기전자공학부 석사과정에 입학한 후 5년반만의 일이었다. 논문 주제는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위한 가공송전선 적용 타당성 연구'.
당시 그는 세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에너지의 97%를 수입하는 현실을 극복하려면 자연에너지 분야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공대 전기과를 졸업한 그는 한국전력공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한화에너지, 현대엔지니어링을 거쳤다. 아름다운재단은 그가 국내 최초로 턴키발전소를 설계하는 등 발전기 분야의 국내 일인자로 꼽혔다고 전했다.
'호민(好民)'이라는 그의 아호처럼 그는 사람을 좋아했다. 또 "사람 같은 삶을 사는 것이 인생 성공의 목표"라고 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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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그는 1998년부터 줄곧 참여연대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2000년부터는 참여연대와 서울시가 공동으로 운영한 '청렴계약제 옴부즈맨'으로 활약했다.
'마무리'란 아이디의 한 네티즌은 기 박사의 사연의 실린 아름다운재단 홈페이지 글에 "위대한 유산이 바로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썼다.
아이디 '진정한 유산'은 "기우봉님께서는 물질적인 것 그 이상의 정신도 함께 남기셨다"고 썼다.
아름다운재단은 유족의 뜻을 존중해 기부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유산기금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아름다운재단(02-730-1235)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