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사법부가 아름다웠던 날

[기자수첩]사법부가 아름다웠던 날

배혜림 기자
2010.07.29 10:02

간첩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어부 정영씨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이 열린 지난 8일 서울고등법원 508호 법정.

재판장인 이강원 부장판사가 무죄를 선고하자 정씨는 회한이 앞선 기쁨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 지 모르는 듯 한동안 재판장을 바라봤다. 10초쯤 지났을까. 그는 두 팔을 들어올리며 "만세! 만세! 만세!"를 외쳤다. 그러고는 그만 엎드려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방청석에 있던 정씨의 가족들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기자들의 눈에도 이슬이 고였다.

"권위주의 통치시대의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1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교도소에서 심대한 고통을 입은 정씨에게 사법부가 진정으로 용서를 구합니다. 정씨의 가슴 아픈 과거사에서 얻은 소중한 교훈을 바탕으로 사법부가 국민의 작은 소리에도 귀기울이겠습니다. 정씨와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의 역할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

이 부장판사는 정씨가 겪은 인고의 세월에 마음을 담아 사과했다. 가슴이 먹먹해왔다.

지난 16일 '진도 가족간첩단 사건'의 희생자인 고(故) 김정인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성낙송 서울고법 부장판사 역시 희생자와 유족을 진심으로 위로했다.

"법원이 사법부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진실 발견을 소홀히 해 무고한 생명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것이 아닌가 하는 회한을 떨질 수 없습니다. 그동안 형언하기 힘든 고통을 겪은 피고인과 그 가족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김씨를 대신해 법정에 나온 부인 한화자씨가 "너무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라며 눈물을 훔치자, 판결을 선고하던 재판장과 배석 판사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사법부는 그동안 '인민혁명당 사건', '아람회 사건', '송씨일가 간첩단 사건' 등 공안조작 사건을 다시 심리해 과거의 잘못된 판결을 바로잡아왔다. 한 법관은 "세월이 흘러 누렇게 변색된 기록을 읽을 때면 감회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30~40년 지난 기록을 검토하다 피부염에 걸린 판사도 있다고 한다.

법관이 그늘진 역사로 인한 피해자의 고통을 짐작하고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남아있는 재심 사건에서도 피해자 한 명 한 명의 억울한 사연을 귀담아 듣고 함께 아파하는 사법부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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