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재판 독립성 훼손하는 '부러진 화살'

[기자수첩]재판 독립성 훼손하는 '부러진 화살'

이태성 기자
2012.01.31 08:00

최근 개봉한 영화 '부러진 화살'에는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요"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부러진 화살'은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복직소송 2심 재판장인 박홍우 부장판사(현 의정부지방법원장)를 집 앞에서 석궁으로 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을 영화화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개봉 2주차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영화 개봉 후 김 전 교수의 복직소송에서 주심을 맡았던 이정렬 창원지법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려 "저도 석궁을 맞진 않을까 하는 두렵다"며 "품위 없게도 요즘 유행하고 있는 표현을 빌리자면 저는 무척 '쫄고' 있다"고 밝혔다.

영화 탓인 지 최근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재판에서도 비슷한 '코멘트'가 나왔다.

학부모 단체 공교육살리기연합은 지난 26일 판결을 내린 판사의 집 앞에 찾아가 "김형두 판사 그게 개판이지 재판이냐"며 영화 대사를 빗댄 문구를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일부 참가자는 김 판사의 집에 달걀을 던지기도 했다.

보수단체들도 사법부를 앞다퉈 비난하고 있다. 2010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후보를 매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곽노현 교육감이 지난 19일 벌금 3000만원을 선고받고 석방되자 "정치 교육감에게 석방 판결을 내린 판사가 법률적 상식이 있는지 모르겠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입장이 갈리는 재판의 특성상 판결에 불복하는 목소리는 언제든 있었다. 사법부의 판단이 당사자에게는 촌각이 달린 문제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부러진 화살'과 곽 교육감 판결에 대한 논란은 사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 일부 판사에 대한 위협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우리 헌법은 제5장 법원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입법과 행정, 사법으로 나뉜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관의 독립성 보장은 민주사회 운영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근 일련의 사건에 대해 대법원은 "특정 사건의 재판장을 목표로 한 불만 표출행위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며 유감을 나타냈다.

판결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얼마든지 허용될 수 있다. 하지만 판결에 불만이 있다고 해서 법관을 '쫄게'하거나 신변을 위협하는 것은 법치국가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떼법'으로 뒤흔드는 것처럼 느껴져 씁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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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성 기자

2011년 입사해 사회부 법조팀, 증권부, 사회부 사건팀, 산업1부 자동차팀을 거쳐 현재는 정치부 국회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2020년 제14회 한국조사보도상 수상 2024년 제 19회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언론상 신문보도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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