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원시보가 중국의 내란 조짐을 전한 후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에 맞선 저우융캉(70)에 관심이 쏠리고있다.

저우융캉은 2003년 3월 제10차 전국인민대표대회 제 1차 회의에서 국무위원에 임명됐다. 동시에 그는 공안부장, 무장경찰 제 1정치위원직을 겸직하게 된다. 2007년 10월엔 자신의 측근 멍젠주(孟建柱)를 공안부장에 임명함으로써 공안부와 무장경찰부대에 대한 장악력을 이어간다.
중국의 경찰력은 군에 버금간다.
대기원시보에 따르면 중국은 2005년 36개 중점도시에 공안특수경찰부대를 설립하고 장비를 정예화했다. 그동안 무장경찰부대는 장쩌민의 사병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장쩌민은 줄곧 무장경찰병력을 대대적으로 확충해왔으며 이 세력은 지금까지 주로 저우융캉의 정법위 계통에 의해 통제되어 왔다.
장쩌민이 확충을 거친 지금 무장경찰은 모두 150만에 달하며 이중 20만의 기계화 부대는 소위 '50만 감군(減軍)’ 중에서 군대에서 빼내 편제만 바꾼 정예부대이다. 기계화 부대에는 모두 14개 사단이 있으며 이들은 첨단장비와 뛰어난 기동성을 확보, 야전능력을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말이 경찰이지 실제로는 중공군 정예부대인 셈이다.
이런 장쩌민계의 경찰력은 후진타오와 원자바오측에겐 골칫덩이가 아닐 수 없다. 후-원측은 대신 군부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는데 매진했다.
대기원시보는 2월 6일 왕리쥔 사건이 발생한지 얼마 후 베이징 군대 사령관들이 잇달아 후 주석에 대한 충성을 공개적으로 표시했다고 전한다. 2월 10일에는 베이징 총후근부(總後勤部), 2월 16일 총정치부 주요기관(總政機關), 2월 21일에는 총장비부(總裝備部), 2월 27일에는 총참모부(總參謀部) 등이 모두 “단호하게 당 중앙과 중앙군사위원회 및 후 주석의 지휘를 따르자”고 태도를 표시했다.
후진타오 역시 3월 7일 삼대 관영매체인 신화사, 인민일보, 해방군보와 동시에 인터뷰를 갖고 장편의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반복적으로 군대의 사상정치건설을 강조하고 군대에 대한 당의 절대적인 영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진타오의 군권이 과연 저우융캉의 ‘경변(警變 경찰 정변)'을 막아낼 수 있을까? 무력대결 양상을 보이는 중국의 권력투쟁에 우려의 눈길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