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리쥔 망명이 단초, '中사태(?)'의 진행과정

왕리쥔 망명이 단초, '中사태(?)'의 진행과정

김재동 기자
2012.03.20 18:44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정변이 났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다. 하지만 중국주요포털과 언론에선 이를 찾아볼 수 없다. 정부차원의 강력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의 진행과정을 살펴보자.

2월2일 충칭시 서기인 보시라이의 오른팔이자 충칭 공안국장이었던 왕리쥔이 해임된다.

2월 6일 왕리쥔이 갑자기 미국 영사관에 들어가 망명을 신청한다.

왕리쥔의 망명사건이 발생하자 저우융캉은 무장경찰을 동원해 미국영사관을 포위했고 보시라이는 황치판 충칭시장에게 명해 300km 떨어진 청두까지 쫓아가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왕리쥔을 충칭으로 데려오되 필요하면 미 영사관에 무력을 사용해도 좋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과민한 반응였다. 이유는 미국매체를 통해 드러났다.

왕리쥔은 당시 3꾸러미의 기밀자료를 미국 측에 넘겼으며 일부 내용에 따르면 보시라이와 저우융캉이 정변을 일으켜 시진핑을 끌어내리려 했다는 것이다.

왕리쥔 사건으로 보시라이, 저우융캉의 군사정변 음모가 폭로되자 후진타오-원자바오가 보시라이에 대해 선수를 쳤다.

3월 3일 중국인민 정치협상회의 제 11기 전국위원회 제5차 회의와 3월5일 제 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5차회의(이 두회의를 양회(兩會)라 한다.)가 열렸다.

3월10일 황치판 시장은 베이징에 호출돼 청두 총영사관을 포위한 경위에 대해 추궁받았다.

3월 15일 중국 양회(兩會)가 끝난 후 보시라이는 해직되어 베이징에 억류되었고 지금은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다. 한편 충칭시장 황치판은 태도를 돌변해 보시라이를 배신해 보시라이의 모반음모를 폭로했다.

17일 인터넷에는 충칭 모 구(區)의 내부에서 중국중앙 판공청에서 왕리쥔 사건에 대한 조사처리상황을 통보한 녹음이 전해졌다.

유튜브에도 퍼진 이 녹음 중에는 이번 사건이 발생한 후 후진타오가 직접 전문팀을 조직해 조치를 시행했으며 이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즉각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에 관계자를 보내 왕리쥔과 담화하고, 중앙기율위원회와 국가안전부가 책임지고 조사를 완성하며, 왕리쥔 사건의 사회적 충격을 감소시키고, 외교부문에서는 관련 외교공작을 전개해 외교 및 국제적 영향을 감소시키고, 충칭업무에 협조해 질서 유지를 강화한다.

이번 사태를 단독보도한 대기원시보의 칼럼니스트 장톈량 박사는 "보시라이 사건은 보다 광범위한 ‘모반 폭풍’으로 변할 가능성이 매우 크며 더 많은 사람들이 관련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중에는 왕리쥔, 황치판, 저우융캉 및 전에 보시라이와 연합해 충칭에서 군사훈련을 진행했던 국방부장 량광례(梁光烈)와 청두 군구와 티베트 군구 정법위원 및 사령관 등이 포함되며 또 자오번산, 쓰마난, 쿵칭둥 등도 관련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시라이, 저우융캉의 모반계획은 이로써 실패로 돌아갔고 이번 사건은 저우융캉의 자폭성 반발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진타오를 중심으로 하는 '후파 중앙' 외에 또 다른 실권을 지닌 일명 '장파 중앙'(장쩌민)의 세력도 만만치않다.

대기원시보에 따르면 여기에는 인민대 상무위원장 우방궈, 정협 주석 자칭린, 중앙정신문명건설지도위원회 주임 리창춘 등이 포함된다. 장파는 리창춘이 통제하는 언론기구 외에 저우융캉이 통제하는 공안, 검찰, 법원 등 폭력기구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총과 펜을 모두 차지한 셈이다.

왕리쥔사건으로 촉발된 후파와 장파의 권력투쟁이 어떻게 끝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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