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남인 B씨는 추석 때 못간 부친 묘에 최근 벌초갔다가, 부친의 묘가 없어져 버린 것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B씨가 수소문을 해보니 부친의 묘를 없애버린 사람은 1년 전 부친 묘가 있는 땅을 산 K씨였다.
K씨는 땅을 산 후 B씨 부친의 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공장을 지어야 하니 부친 묘를 이전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B씨는 K씨가 제시하는 보상금액이 너무 적어 B씨는 K씨의 요구를 거절한 적이 있었다. 이후 K씨는 B씨에게 일언반구 없이 B씨 부친의 묘소를 파헤쳐 유골을 꺼내 화장한 후 납골당에 보관한 것이었다.
졸지에 부친의 묘를 잃게 된 B씨는 K씨의 무단개장에 대하여 형사적인 고발이 가능한지, 손해배상청구는 할 수 있을지, 나아가 다시 부친의 묘를 복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다른 사람의 땅에 조상의 묘소가 있는 경우에는 묘지의 이장과 관련한 분쟁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묘지관련분쟁에서의 핵심은 묘지의 관리권자에게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느냐 여부이다.
'분묘기지권'이란 남의 땅에 분묘를 소유한 사람이 그 분묘를 수호, 봉사하기 위해 분묘가 설치된 땅과 주변의 토지 약간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인데, 이는 조상숭배를 중시하는 우리의 관습에 의해 인정되어왔다.
분묘기지권은 원칙적으로는 토지소유자의 승낙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경우와 자기 토지에 분묘를 설치한 후 이장에 대한 약정 없이 토지소유자가 바뀐 경우에 인정된다.
분묘기지권은 존속기간에 대한 특별한 약정이 없더라도 분묘기지권자가 분묘의 수호와 봉사를 계속하고 분묘가 존재하는 한 계속 인정된다는 것이 판례이다.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는 토지의 범위는 분묘를 수호관리하고 제사를 지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라고 하는데, 한 판례에 의하면 분묘 1기당 30㎡라고 한다.
사례로 돌아가 보자. B씨 부친의 묘는 설치될 당시 땅의 주인이었던 종중의 동의를 얻어 설치되었고 토지매각 당시 이장에 관한 약정이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B씨는 부친 분묘에 대한 분묘기지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문제는 K씨가 부친의 묘를 없애버린 상황에서 분묘를 복원할 수 있느냐인데, 판례는 '분묘가 멸실된 경우라고 하더라도 유골이 존재하여 분묘의 원상회복이 가능한 경우에는 일시적인 멸실에 불과하여 분묘기지권이 인정된다'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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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B씨는 자신의 분묘기지권을 근거로 하여 K의 땅에 부친의 분묘를 복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연고가 있는 묘소를 훼손한 K를 분묘발굴유골손괴죄로 형사고소하고, K에게 분묘의 원상복구비용 및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다.
위와 같은 판례들의 입장에 따르면 분묘기지권은 분묘가 존재하는 한 존속하며 훼손되었다고 하더라도 복원이 가능하면 다시 분묘를 되살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권리이다. 일단 분묘기지권이 인정되면, 분묘기지권자의 입장에서는 반영구적으로 분묘가 설치된 땅을 쓸 수 있는, 사실상 소유권과 다름 없는 강력한 권리를 얻게 되는 셈이다.
반면, 토지소유자의 입장에서는 자기 땅에 '알박기'를 당한 것과 같은 제약을 받게 되니 토지, 임야 등을 사려는 사람은 반드시 분묘의 설치여부, 설치 시기, 관리되고 있는지 여부 및 그 관리자 등을 미리 확인해서 매수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토지매수 후에야 분묘를 발견했다면 일방적인 개장, 이장을 할 경우 형사처벌, 손해배상의 위험이 따른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화장률이 70%가 넘는 이 시대에도 분묘에 이처럼 강력한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의문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분묘기지권에 관한 판례가 가까운 시일 내에 변화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니, 불측의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각자 알아서 대비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