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도마위에 올랐다. 예상치 못했던 이른바 '국정원녀 사건' 때문이다. 국가최고정보기관과 여야 정치권이 주연으로 등장한데다 서울 강남 한복판의 오피스텔 복도에서 벌어진 수십시간의 '문밖대치' 로 경찰은 곤경에 처해졌다.
'국정원녀 사건'에서 민주통합당이나 새누리당 모두 철저히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확실한 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혹을 제기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효과가 어느 정도인가가 더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었다.
반면 경찰은 준비되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가지고 있는 경찰이 너무 쉽게 정치권이 만들어놓은 복잡한 상황에 빨려 들어갔다.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강남 오피스텔에 처음 출동했던 그 시점부터 경찰은 발을 뺄 수 없는 정치 논리에 갇혀버렸다.
적극적으로 수사하면 여당이, 소극적으로 수사하면 야당이 반발할 것이고 반대로 대선 이전에 수사결과를 내놓으면 여당이, 대선 이후에 결과를 내놓으면 야당이 반기는 상황이 돼 버린 것이다.
전 국민적인 관심이 김모씨의 컴퓨터 분석결과에 쏠린 시점에서 경찰이 갈 수 있는 길은 아주 좁았다. 공명정대하고 불편부당하게, 그리고 최대한 신속하게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수준의 수사결과를 내놨어야 했다.
경찰은 그러나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에 실패했다. 오히려 수사결과 발표 시점이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전례가 없이 밤 11시라는 시간에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유력 대선 후보간의 TV토론이 끝난 밤이었다. 의혹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수사가 적극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김씨의 인터넷 ID(아이디)를 찾아내고 그 아이디로 달린 댓글이 있는지 확인하는 정도였다.
이번 사건을 지켜본 국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이목이 집중됐던 이번 사건에서 경찰은 효과적인 수사능력을 보여주지도 못했고 정치적 중립성도 지켜내지 못했다. 그 대가는 경찰 조직 전체가 앞으로 져 나가야할 원죄가 돼 돌아올 것이다. 등 돌린 국민을 무서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