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1호 시각장애 변호사 "앞 못보는 불편함보다…"

국내1호 시각장애 변호사 "앞 못보는 불편함보다…"

김정주 기자
2013.05.27 06:30

[인터뷰] 공익 소송 앞장 김재왕 변호사

김재왕 변호사/사진=구혜정 기자
김재왕 변호사/사진=구혜정 기자

"앞이 안 보인다는 답답함 때문에 일을 합니다. 장애를 갖고 있다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죠. 이 일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요"

국내 1호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재왕씨(35)는 자신이 변호사로 활동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으로서 살아가는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을 통감하고 있었다. 대학시절 시나브로 찾아온 시각장애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놨기 때문이다. 직접 장애를 겪으며 느낀 불편함이 그를 변호사로 이끄는 계기가 됐다.

김 변호사가 완전히 시력을 잃게 된 것은 2009년이었다. 어려서부터 보이지 않았던 오른쪽 눈에 이어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던 2003년부터는 왼쪽 눈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바깥 쪽 시신경이 대부분 죽어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차츰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하던 그의 눈은 결국 7년 만에 빛을 잃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상담 일을 시작한 그는 장애인의 차별과 인권 문제를 절감한 뒤 로스쿨 행을 결심했다. 변호사가 되면 장애인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을 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앞을 볼 수 없었던 탓에 로스쿨에 다니는 3년 간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했다. 문서를 소리로 변환한 음성 파일을 활용해 공부했다. 강의를 듣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치거나 동그라미를 표시할 수가 없었다. 소리로만 공부하다보니 '신문', '심문'처럼 발음이 비슷한 법률용어를 접할 땐 헷갈리는 경우도 많았다.

"시험 기간 직전에 다른 친구들은 요약서를 사 보고 문제집을 풀기도 하는데 저는 바로 볼 수 없고 시간도 오래 걸려서 그럴 수가 없었어요." 김 변호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지난해 3월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이라는 결실로 돌아왔다. 변호사계에 입문한 김 변호사는 장애인들의 권리를 찾는 일에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대선 방송의 수화통역 화면을 더 크게 해달라며 청각장애인 단체가 지상파 방송3사를 상대로 낸 임시조치 신청을 대리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단체들은 당초 화면 확대와 함께 복수의 후보를 각각 담당하는 2인 이상의 수화통역자 확보 등을 요구했으나 법원은 "17대 대선 방송의 수화통역 화면보다 30% 이상 큰 크기의 화면을 방영하라"고 일부만 받아들였다.

김 변호사는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지만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법원이 청각장애인들의 불편함을 인정하면서도 입법적으로 해결하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라며 "결과가 아쉽긴 하지만 변호사로서 처음 법정에서 변론한 사건이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에겐 변론 과정도 쉽지만은 않다. 방대한 양의 서면을 숙지하기 위해선 문서를 스캔하고 이를 문자 파일로 변환해 음성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류가 생기거나 사진이 포함된 경우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남들보다 조금 시간이 걸릴 뿐 큰 문제가 되진 않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지난해 공식 문을 연 공익인권변호사모임인 '희망을 만드는 법'의 변호사 6명이 그의 든든한 동료이자 지원군이다. 로스쿨 3학년 때 알게 된 예비 변호사들과 뜻을 모아 장애인 등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돕기 위해 사무실을 열었다. 지난 3월에는 성전환자가 기존의 성기를 제거했다면 따로 성기 성형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도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는 법원의 결정을 이끌어 내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장애인 차별금지법을 활용한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진이나 그림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위해 음성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웹접근성 관련 문제를 살펴보고 있다.

김 변호사는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장애인들과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장애인들의 요구가 당연한 권리로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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