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좋아했던 아빠의 쓸쓸한 추석 "내년에는 꼭..."

술 좋아했던 아빠의 쓸쓸한 추석 "내년에는 꼭..."

뉴스1 제공
2013.09.20 08:05

서울대 졸업 뒤 체육교사, "밑바닥" 노숙자까지 경험

(서울=뉴스1) 박현우 기자 = 지난 6월 중순 사당역 근처에서 민씨(48)를 처음 만났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시설 지원 중단과 관련한 집회가 열렸던 자리였다.

마이크를 잡고 사람들 앞에선 민씨는 '철학', '영적 깊이', '근본적 치료' 등 단어를 사용하며 논리적으로 시설에 대한 지원이 재개돼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차분한 말투로 "시설에 들어와 교만함과 성격적 결함을 깨닫게 됐다"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진정성도 느껴졌다.

집회 뒤 민씨를 따로 만나 사연을 들을 수 있겠느냐 물었다. 대뜸 자신을 "15년간 체육교사를 했던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훗날 정식으로 인터뷰 한 번 해줄 수 있느냐고 요청하자 흔쾌히 "좋다"고 했다.

3개월 만에 민씨를 다시 만났다. 민씨는 변해있었다. 많이 움츠러 들어 있었다.

만남조차 쉽지 않았다. 이달 초 민씨와 만나기 위해 시설에 전화를 걸었지만 "민씨가 인터뷰를 하기 꺼려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일주일 동안 시설에 전화를 걸고 민씨와 직접 통화하며 인터뷰 요청도 했지만 민씨가 내켜하지 않았다. 시설을 찾아가 직원들에게 인터뷰 취지를 말하고 민씨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한 끝에 민씨의 마음을 겨우 돌려세울 수 있었다.

13일 오전 '카프남성거주시설 감나무집'에서 민씨를 만났다. 카프치료공동체 감나무집은 사회복귀시설로 알코올중독자를 대상으로 사회복귀를 위한 안정적인 주거공간과 재활프로그램의 서비스가 제공되는 중독자재활시설이다.

-'삼고초려' 끝에 만났다. 심경의 변화라도.

"6월 하순께 한 매체와 인터뷰를 했다. 실명으로 나가다 보니까 예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들한테 시설과 집으로 연락이 오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되다 보니까 회복에 전념하기 힘들더라. 아무래도 술의 유혹도 있을 수 있고. 또 가족들 입장에서는 내가 인터뷰 하고 이런 모습이 일부러 '보여주려고' 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더라. 내가 인터뷰를 하고 그럴 때가 아닌데. 치료에 전념할 때인데. 또 보도가 내 의도와는 다르게 나간 부분도 있고. 그런 것 때문에 가급적 인터뷰를 안하려고 한다"

-본인이 알코올 중독이란 걸 언제부터 인지했나.

"2005년부터 술 때문에 일으킨 문제들이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학교에 휴직계를 내고 알코올 중독 전문치료시설 카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병원에서 나온 뒤에 또 사고를 쳤다. 음주 운전 등에 대해 내부 징계를 받게 됐고 시말서를 여러 번 썼다. 결국은 사직서를 쓰게 됐다. 당시에는 알코올 중독 때문에 손이 떨려서 그것 조차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였다"

15년간 서울 한 고등학교에서 체육교사로 재직했던 민씨는 서울대 사범대 84학번으로 입학해 대학원까지 진학했었던 소위 '엘리트'였다.

그러나 술에 발목을 잡혔다. 서슬퍼랬던 1980년대 민씨는 운동권에 몸담았다. 시위 중 공안당국에 잡혀가 고문도 많이 당했다. '광주사태'의 진실을 알게 됐던 당시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온 몸을 덮쳐왔다. 고통을 술로 달랬다.

또 워낙에 내성적인 성격 탓에 힘든 일이 있으면 홀로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다. 교사 시절에는 일 때문에 술을 마셔야 하는 일도 많았다.

이런 것들이 쌓여 어느 순간 '알코올 중독자'가 돼 있었다. 술 취해 행패를 부리는 일이 많았고 가정에서도 폭력을 휘둘렀다. 음주운전, 업무방해 등 사회적으로도 문제를 일으켰다. 술냄새 풍기며 교단에 서는 일이 잦았다.

2005년 알코올 중독 치료 시설에 들어가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나온 뒤 또 다시 술을 마셨다. 병원에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학교를 그만 두게 됐고 가족들은 그런 민씨에게 지쳐 곁을 떠났다.

가족들과 결별이 민씨에게는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민씨는 "가장 믿었던 사람들이 나를 버렸구나 하는 절망감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고 당시에는 그런 절망감 때문에 술을 더 마셨다"고 회고했다.

그 뒤로 노숙생활을 했다. 2007년에는 한 차례 손목도 그었다. 주변 사람들이 빠르게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 목숨을 잃진 않았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나날들이었다. 대부분 알코올 중독자들이었던 서울역 노숙자들은 소주를 마시다 갑자기 '픽'하고 쓰러져 죽기도 했다. '저게 언젠가 내 모습이겠구나'하면서도 술을 끊을 수 없었다.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던 중 카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안면이 있었던 한 직원이 민씨를 알아봐 민씨는 2008년 한 노숙자 재활시설에 들어가게 됐다. 재활시설과 치료시설 등을 거쳐 민씨는 지난해 9월 6일 '감나무집'에 들어오게 됐다. 이날은 민씨의 생일날이기도 했다.

-감집(감나무집)에서 알코올 중독을 가장 잘 극복해낸 사례로 꼽힌다. 어떤 부분이 도움이 많이 됐나.

"감집에 들어오기 전에는 패배자, 실패자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큰 자괴감과 죄책감에 빠져 살았다. 감집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사고의 대전환'을 겪게 됐다. 회복감을 느끼게 됐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조금씩 쌓여가고 있다. 사고가 바뀌니까 행동도 바뀌게 되고 의지력도 조금씩 강해졌다.

-감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것 같다. 하지만 운영상 어려움도 있다고 들었는데.

"주류협회에서 약속한 출연금이 중단되면서 현재 질적인 프로그램, 직업재활 연계 등이 비용 문제로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술 회사에서 술 문제를 해결하게 둔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이다. 보건복지부가 나서 공공의료 측면에서 접근해서 감나무집과 알코올 중독자 치료 시설인 카프 병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알코올 중독자 문제는 개인이 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재활·치료시설에 들어와 까다로운 규정지키면서 흐트러진 생활 바로세우면서, 같은 경험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크게 개선될 수 있다. 알코올 중독, 극복할 수 있는 병이다. 개인보다는 그런 '치료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사회'에 조언하고 싶다.

민씨는 "내가 스스로 더 자신감을 찾고 떳떳할 수 있을 때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얼굴을 공개하고 싶다"고 했다. 뒷모습이라도 찍겠다고 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연출해달라고 하자 "누구 머리가 더 큰지"를 두고 농담을 나누고 있는 민씨(왼쪽)과 감집 스탭 신현태씨(오른쪽)  News1
민씨는 "내가 스스로 더 자신감을 찾고 떳떳할 수 있을 때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얼굴을 공개하고 싶다"고 했다. 뒷모습이라도 찍겠다고 하고 자연스럽게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 연출해달라고 하자 "누구 머리가 더 큰지"를 두고 농담을 나누고 있는 민씨(왼쪽)과 감집 스탭 신현태씨(오른쪽) News1

민씨는 인터뷰 하기 1주 전부터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했다. 1급 지체장애를 가진 분의 생활도 돌보고 같이 이야기도 나누며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민씨는 방송통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 사회복지사로서의 꿈을 더 키워가고 싶다고 했다.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6일에는 민씨의 생일을 맞아 7년 동안 연락이 끊겼던 어머니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민씨는 "추석·설 명절이면 항상 다른 가족들이 부럽고 혼자서 외롭고 했었는데 어머니가 최근 추석과 생일을 앞두고 나를 찾아오셨다"며 "30년간 술을 마시며 어머니 가슴에 피멍 들게 했는데 지금부터 정말 똑바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노숙생활을 하고 있었으면 어머니와 만남이 힘들었을테지만 감집에 들어와 주민증이 살아나고 직계가족 위치를 알아낼 수 있게 되면서 만남이 이뤄질 수 있었다"고 감집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추석을 앞두고 민씨는 초등학교 5학년 이후 만나지 못한 아들이 정말 보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 추석이었던가요. 시설에 홀로 앉아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내가 멍하니 현관문만 바라보고 있더라구요. '아버지'하면서 아들이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 같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도 문을 열고 아들이 들어올 것만 같아요"

민씨는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아들에 대해 말하는 민씨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사춘기를 아빠 없이 보내게 해 너무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런데 잘 자라준 것 같아 대견해요. 지금 고3인데 공부잘해서 교육부장관상도 받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아들을 만나면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하고 싶어요. 그 다음에 고맙다, 사랑한다 말하고 싶어요. 이제 아들도 다 컸으니까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로 생각하고 서로 힘이 되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해요. 아들 생각하면서 더 힘을 낼 겁니다"

민씨는 "30년을 술 때문에 가족을 힘들게 했는데 고작 2년 술 안마시고 재활하고 있다고 가족 입장에서 받아들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욕심"이라면서 "가족들이 받아들여 줄 때까지 정말 열심히 치료받으면서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아들과 하루라도 빨리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 곁에서 느껴졌다.

민씨는 "올해 추석은 자원봉사활동 하시는 분들이 집에 내려가시면 그 분들을 대신해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돌보며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씁쓸함이 배어있었다.

"희망은 어려움 속에서 더 빛을 발한다. 어렵게 얻은 희망을 꼭 지켜나가겠다"고 말하던 민씨가 내년 추석은 꼭 아들과 함께 보낼 수 있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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