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민 신부 "투병 중 열정 놓지 않고 한국 가톨릭 소설 준비"
(서울=뉴스1) 권혜정 기자 =

"임종 직후 최인호 선생의 표정은 한없이 편안했다."
교통사고와 암 투병에도 종교적 신념이 담긴 글을 계속해 써내려간 '하늘이 낸 작가' 고(故) 최인호.
1970년대 문학계의 선두 주자였던 소설가 최인호는 등단 50주년을 맞는 해에 침샘암 투병 끝인 25일 오후 7시10분 별세했다. 향년 68세.
2011년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발표해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던 고인의 투병 생활 중 늘 곁에 함께 했던 이가 있다. 바로 고인이 생전 영적 스승으로 여긴 곽성민 베네딕도 신부다.
고인과 각별하게 지낸 곽 신부이지만 고인에 대해 "그저 편하게 만나는 사제와 교우였다"며 "그가 힘들 때마다 나를 찾는, 그런 사이였다"고 말했다.
고인이 생전 투병했던 병원에 마침 함께 입원해 있던 곽 신부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운명 직전까지 고통스러워했었다"며 "그러나 임종 직후 그는 아주 편안한 얼굴이었다"고 전했다.
임종 소식을 듣자마자 고인의 병실을 찾은 곽 신부는 고인의 가족들과 함께 고인을 위한 마지막 영구 기도를 올렸다.
곽 신부는 5년 이상 혹독한 병고에 시달려온 고인을 위해 "긴 세월 병고를 이겨내실 수 있을 만큼 장한 분으로 인생을 마감하셔서 축하드립니다"라고 가족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그의 편안한 얼굴에 '구원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라며 '하느님 품에 안기기 위해 또 다른 정화과정으로서의 고통은 이미 다 치르셨습니다. 복 되십니다'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올렸다.
독실한 불교 신자로 반 평생을 살아온 고인이 가톨릭에 귀의한 것은 1987년의 일이다. 고인은 당시 "풍요로움 속에서 오히려 황폐해지는 내면이 종교로 이끌었다"고 고백했다.
고인과 곽 신부가 인연을 맺기 시작한 것은 1995년 곽 신부가 서울 서초동성당에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부터다. 곽 신부는 "당시부터 고인을 만나기 시작해 평소 가깝게 지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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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은 나이에 가톨릭에 귀의한 그였기에 신앙심은 누구보다도 각별했다. 고인과 같은 병동을 사용하며 가장 가깝게 고인을 지켜본 곽 신부는 "고인은 '참 신앙인'이었다"며 "하느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굉장한 열정이 그에게는 있었다"고 회상했다.
어느 때고 병원 입원실 바닥에 엎드려 작은 성모마리아 상을 앞에 두고 열심히 기도를 올리던 모습이 곽 신부가 기억하는 고인의 잔상이다.
"다른 환자는 신경쓰지 않고 그는 기도를 드렸다"며 "이는 아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오직 나와 하느님, 나와 성모만이 있는 순간이다. 그 속에서 고인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투병 중 고통이 밀려오는 그 순간에도 작품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았다. '환자가 아닌 작가로 죽고 싶다'며 작품 세계에 대한 열정을 보였던 고인에 대해 곽 신부는 "마지막 순간에 살고자 했던 이유는 '생존에 대한 집착'이라기보다 '소설을 쓰고자 한 열정'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인은 임종 직전까지 '한국 천주교'를 주제로 한 소설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곽 신부는 밝혔다. 유교 소설, 불교 소설을 모두 써낸 고인의 마지막 목적은 '가톨릭 소설'이었다.
곽 신부는 "소설을 쓰기 위한 모든 자료를 다 준비했었다"며 "건강만 여력이 된다면 소설에 손 대고 싶어했는데 그러지 못해 굉장히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고인과 생전 가깝게 지낸 소설가 김홍신씨 역시 자신은 '인간 부다'를, 고인은 '인간 예수'를 제목으로 각각 소설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신앙생활과 투병생활을 지탱하게 해준 성경말씀은 특히 요한복음이었다. 고인은 임종 며칠 전 정진석 추기경이 병실을 찾았을 때도 "요한복음은 최고의 문원이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곽 신부는 "건강악화로 인해 말 한마디 하기 어려운 순간임에도 고인은 요한복음을 끊임없이 칭찬했다"고 말했다.
고인이 또 생전 각별하게 여겼던 말씀은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남아서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는 마태복음 26장38절이었다.
2009년 9월 암이 재발했고 1차 항암치료가 끝난 직후 체중이 5㎏이나 훌쩍 빠져버렸다. 고인은 이때 곽 신부에게 "항암치료를 포기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이 이처럼 극한의 고통을 느낀 순간 마음의 위로가 된 구절이 바로 마태복음 26장 38절 말씀이다.
또한 고인이 생전 작성한 '엿가락의 기도'에 따르면 고인은 '기적을 베풀어 달라'는 자신의 기도가 잘못이었음을 깨닫고 하느님을 믿고 마음대로 하시라는 식으로 내맡긴다. '주님, 이 몸은 목판 속에 놓인 엿가락입니다. 그러하오니 저를 가위로 자르시든 엿치기를 하시든 엿장수이신 주님의 뜻대로 하십시오. 우리 주 엿장수의 이름으로 바라나이다, 아멘'이라며 온전히 자신을 맡겼다.
고인의 마지막 순간을 포함해 긴 세월을 함께 한 곽 신부는 자신도 몸 상태가 좋지 않아 28일 오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리는 영결 미사에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곽 신부는 "운명 직후 영구 기도와 시신을 모실 때 인사를 드렸다"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다.
곽 신부는 1995년 서초동 성당 주임신부 겸 서울대교구 초대 12지구장 신부, 서울 대교구 사무처장 등을 맡았다. 현재 천주교 석촌동성당 주임신부로 있다.
IMF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에는 고인과 함께 고 김수환 추기경을 모시고 나라 사랑 금 모으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고인은 2008년 5월 침샘암이 발병해 5년간 투병했다.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서울중·고등학교,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등을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 2학년 재학시절인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벽구멍으로'로 등단한 뒤 소설 '별들의 고향', '상도' 등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고인의 발인은 서울성모병원에서 28일 오전 7시30분이다. 고인의 영결 미사는 우리나라 가톨릭의 본산인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이날 오전 9시 정진석 추기경이 직접 집전한다.
고인의 세례명은 베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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