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법질서 존중과 경찰의 역할

[기고]법질서 존중과 경찰의 역할

이석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장(총경)
2013.12.06 07:02

서울지방경찰청 생활안전과장 총경 이석

20세기 중반까지 잘사는 나라였던 남미국가들이 아직도 선진국 문턱을 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은 공공·민간분야를 막론하고 만연해 있는 법질서 문란과 치안불안 때문이다.

지난 40여 년간 줄기찬 노력으로 소중한 경제성장을 달성한 우리는 남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각 분야에서 성숙한 선진사회로 발전해야할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더구나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최근 군비를 강화하거나 재무장에 나서고 있는 주변 강대국사이에서 우리사회가 어떤 모습을 갖춰야 할 것인지 생존권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본다.

아마도 평화·안전·인권·자유·환경 등 인류 보편적 가치와 이상이 존중되는 사회, 구체적으로 스웨덴·노르웨이 같은 복지국가나 열강사이에서 굳건히 서있는 스위스 같은 강소국을 추구해야한다고 판단된다.

이 나라들은 복지로 유명하지만 강력한 국방력과 아울러 엄격한 법질서 존중문화가 공고히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완벽한 복지제도가 묵묵히 소득의 절반을 세금으로 내는 국민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듯, 지상 낙원이라고까지 불리는 그 사회의 밝고 정갈한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자유민주주의가 몸에 밴 시민들의 철저한 공동체 의식과 법질서 존중문화에서 비롯한 것이다.

단속이 없으면 당연시되는 도로에서의 각종 법규위반, 나에게만 유리하면 사회에 미칠 해악은 생각지도 않는 각종 속임수와 편법, 관련 없는 시민의 불편은 아랑곳없이 소음과 쓰레기를 쏟아내는 공공장소에서의 집회 등등. 이런 풍경은 선진국에서 보기 힘들다.

하물며 법질서를 유지하는 제복 경찰관이 욕설과 멱살 잡힘을 일상으로 감내해야하고, 외국인마저 흉기를 들고 경찰관에게 덤벼들 만큼 법질서 수호자를 무시하고 애써 깎아내리려는 사회 분위기는 선진국에서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어떤가?

지난 10월에는 음주단속을 하던 경찰관의 뼈를 부러뜨린 만취운전자에 대한 구속영장이 ‘증거인멸·도주 우려가 없다’며 기각된 일이 있고, 주위사람에게 난동을 부리는 마약투여 용의자가 출동한 경찰관 얼굴에 손찌검을 해도 사안이 중요하지 않다며 영장이 기각된 일이 있었다.

6월에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싸움을 제지하는 경찰관의 행동은 정당한 공무가 아니므로 말리는 경찰관을 때려도 공무집행방해가 아니라는 어처구니없는 1,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비로소 바로잡힌 일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인접 특정 국가에서는 한국에 가려는 사람들에게 ‘한국에선 경찰관에게 단속되면 우선 폭력경찰·인권경찰하며 시비와 트집부터 걸어라’는 조언을 준다고 한다.

우리사회 내부에서 조차 경찰관의 직무가 보호받지 못하니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얘기다. 공동체 이익을 수호하고 선진국 진입의 전제인 법질서 존중문화 구현을 임무로 하는 경찰의 역할은 그 의미와 가치로 인해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한다.

사실, 법질서 존중문화는 잘 살아보기 위해 또 민주화를 향해 치열하게 내달렸던 우리사회의 관성이나 정서와 약간은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그렇더라도 이제는 중·후진국 속성인 새치기·속임수·폭력·억지·조급함을 극복해야할 시점이며 그 대신 국제사회와 세계 시민들로 부터 ‘한국은 질서 있고 살기 좋은 나라’로 인정받고 이를 바탕으로 주변 열강들이 함부로 하지 못하는 스위스 같은 선진 강소국이 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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