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비정상의 정상화'와 교학사 교과서

[광화문]'비정상의 정상화'와 교학사 교과서

이승형 부장
2014.01.17 06:16

만 30세로 생을 마감한 조선 10대 왕 연산군은 여전히 사극의 단골 주역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재위 시절 보여줬던 여러 드라마틱한 사건들이 지금도 이야기의 소재로 손색이 없기 때문이지요.

연산군은 시쳇말로 ‘섹스 스캔들’의 장본인이었습니다. 희대의 요부인 장녹수와의 연애 행각은 말할 것도 없고, 기생들도 모자라 종친과 신하의 첩, 아내, 딸까지도 탐했습니다.

브레이크 없는 정치권력의 제왕. 두 차례의 사화(士禍)를 통해 자신에 반한다 싶은 인물들을 모조리 살해하거나 귀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런 연산군도 무서워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역사’입니다. 그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폭군이었던 그조차 역사의 그 진중한 무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왜 두려워했을까요. 무엇이 두려웠을까요.

조선이 남긴 빛나는 유산 가운데 하나가 ‘조선왕조실록’입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 아시아에서 왕조의 기록을 세계적인 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조선 왕들은 실록이 만들어진 과정에 절대 개입할 수 없었습니다. 무려 472년간 그 어느 왕도 실록에 손을 댈 수 없는 것은 물론, 그에 관한 어떠한 외압성 발언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도는 몇 차례 있었으나 그 때마다 실록을 만드는 사관들은 물론이고, 신하들로부터 퇴짜를 맞았습니다.

당시 사관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실록을 지켰습니다. 아무리 폭군이라도 해도 그 모든 반대와 저항을 힘으로 다스릴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기록의 순수성을 세계도 인정한 것이지요.

최근 한국사 교과서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역사학계, 교육계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나서서 훈수를 뒀지요.

그런데 이것은 의외로 단순한 문제이며, 애당초 논란거리도 되지 말아야 했던 사안입니다. 교학사 교과서 중에서 다른 내용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넘어갑시다. 오직 이 한 문장, ‘한국인 위안부는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이 괴상망측한 문장만 봐도 이것은 이미 역사도, 교과서도 아닙니다.

일본 정부가 교과서에 독도는 자기들 땅이라며 명기하는 마당에, 일본 총리가 전범들이 있는 곳에 가서 절을 하는 판국에, 미국에 세워진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해달라고 일본인들이 우기는 와중에 우리는 교과서에 이렇게 쓰다니요. 조선 사관들이 무덤에서 나와 통곡을 할 일이지요.

각계의 반발과 저항에 부딪혀 막판에 ‘강제로 끌려 다녔다’로 수정이 됐습니다만, 그 과정이 또 이상합니다. 우선 그 반발과 저항을 교육부는 외압이라고 규정합니다. 총리와 여당 대표는 이 ‘외압’이 학교 자율성을 침해했다며 교육부를 거듭니다.

누구 말대로 편식하지 말라며 준 음식이 불량식품인데 이걸 먹지 않겠다고 버티는 걸 외압이라고 하는 꼴이지요. 역사 상식의 문제에 이념의 잣대를 들이대니 벌어지게 된 한 편의 블랙코미디입니다. 이 앞에 대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외치는 것도 왠지 공허해 보입니다. 연산군은 괜히 역사를 두려워했나 봅니다. 다들 이렇게 잊어버리는데 말이지요.

최근 화두 중 하나가 ‘비정상의 정상화’입니다. 그런데 그 ‘비정상’을 규정하는 주체는 누가 돼야 할까요. 교과서 논란을 지켜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동의 없이는 그 어느 누구도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지 함부로 규정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것을 규정하는 주체는 대통령도, 정부도, 국정원도 아닌, 국민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정도는 상식이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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