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에 여러명"… '썸'타는 남녀의 심리

"동시에 여러명"… '썸'타는 남녀의 심리

황보람 기자, 김유진
2014.03.23 06:04

[자유연애의 종말①] "소비주의 연애, 대인관계도 효용성 따져"

가수 정기고와 그룹 씨스타 멤버 소유가 7일 발표한 '썸'의 앨범아트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가수 정기고와 그룹 씨스타 멤버 소유가 7일 발표한 '썸'의 앨범아트 사진=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사랑이 처음으로 뿌리는 씨앗은 공포라고 했던가. '모태솔로'나 '썸타기'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대신한지 오래다. 연애를 두려워하고 피하며 심지어 거부하는 현상은 트렌드다. 지구에는 자신을 '무성욕자'라고 소개하는 남자와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냉소하는 여자가 함께 산다. "연애세포가 죽었다"는 선언은 씁쓸한 자조라기보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 남자소개팅 한시간 전, 어김없이 귀찮은 마음이 솟는다. 어렵게 소개받았건만 A씨(29)는 '소개팅을 취소해야 하나'라는 이상한 고민에 빠져 있다. "만나서 호구조사를 하는 일련의 과정이 지겹다"는 A씨. 잘 모르는 여성에게 2만원 가까운 파스타를 사는 것도 아깝다. 연애는 하고 싶으나 만남 자체에는 의욕이 안생기는 불일치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그 여자1년에 3번은 해외여행을 간다. 연봉은 6000만원이 넘지만 다달이 모으는 돈은 수십만원 남짓. "미래보다 현재, 우리보다는 나"라고 말하는 B씨(33)가 연애를 끊은지도 4년이 넘었다. B씨도 물론 럭셔리한 여행을 함께할 남자를 꿈꾼다. 마초같지 않고 쿨한, 허세는 없지만 취향은 뚜렷한. 혹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는 낳지 않을. "없어요. 그런 남자".

◇"연애하니 썸타고 싶다", 소비주의 연애의 정점

'썸타기'의 유용성은 동시에 여러명을 상대할 수 있음은 물론 '직접·자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시간과 돈을 연애에 쏟기에는 너무나 바쁘다. 그렇다고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간질간질한 연애 상대는 필요하지만 구질구질한 관계는 사양할 때 '썸타기'가 시작된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에너지가 투자되는 대인관계에서도 '효용성'을 따지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SNS처럼 쉽고 편리한 '간접적 대인관계'에 익숙한 사람들이 구태여 감정소모와 갈등을 일으키는 직접적 만남을 추구하지 않게 됐다는 분석이다.

'감정 자본주의'의 저자 에바 일루즈는 이를 '차가운 친밀성'이라고 칭했다. 감정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애 등 사적 관계는 탈육체화·탈낭만화 된다.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사실상 무한한 파트너 시장은 효율적인 소비를 요구한다"며 "짧은 시간 안에 마음에 드는 파트너를 골라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남도 두 사람 사이 상호 매매라는 '소비주의' 아래 있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우리가 소비하는 건 '프로필 사진'에 있는 서로의 이상화된 모습이지 '진짜'가 아니다.

소비주의 연애에서 어린왕자가 말하는 '서로 길들이는 과정'은 지극히 비효율적으로 여겨진다. 오히려 카톡방 여러 곳에서 실시간으로 썸을 타는 게 효율적인 관계맺기 방식이다. "연애해 보니 썸타고 싶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우리는 그렇게 길들여지고 있다.

◇낭만적 연애의 종말, "연애란 지저분한 것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것"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거나 내면 속에 열등함과 추함이 노출되면 힘들어한다. 항상 겉으로 화려하고 행복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애라는 건 가장 속속들이 지저분한 것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저자 김혜남씨는 '개인주의'를 연애의 화두로 던졌다. 그는 "사람들이 대인관계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내가 애써서 번 돈을 왜 남을 위해서 쓰느냐는 극단적 개인주의까지 만연해 있다"고 평가했다. 인간관계는 '내 것을 내어주고 타인을 받아들이는 과정'인데 사람들은 자기 것을 내놓는 순간 모두 잃는다고 착각한다는 것.

감정의 굴곡을 느끼며 함께 비를 맞는, 상처받는 연애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전문가들이 짚는 것도 이 지점이다. 실패를 감수하는 연애는 비현실적인 객기가 아니라는 조언이다.

한상덕 문화평론가는 "우리들은 온라인상 대화를 지나치게 용인한다"며 "카톡이나 페북을 '대화'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대화는 감정의 교류이지 짤막한 의사전달이 아니라는 것. 온라인 대화로 축약되는 커뮤니케이션은 '관계맺기'라기 보다는 '혼자놀기'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김 작가는 "SNS나 동호회는 '좋아하는 것만 공유'하는 특성"이 있다면서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자기중심적이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부분이 아니면 배척하고 심지어 적이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개인의 역사는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라면서 "역사성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