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계모들'의 사회와 '양들의 침묵'

[광화문] '계모들'의 사회와 '양들의 침묵'

이승형 사회부장
2014.04.15 05:51

“아직도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소설이자 영화 ‘양들의 침묵(The Silence of The Lambs)’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연쇄살인 사건이 해결된 뒤 박사 한니발 렉터(안소니 홉킨스)는 FBI(미국연방수사국)요원 클라리스 스털링(조디 포스터)에게 이렇게 묻는다.

도살당하는 양들을 구하지 못했다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던 스털링에겐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과연 ‘양들’은 누구이며, ‘침묵’과 ‘울음소리’는 무엇인가.

제목 자체가 성경 구절에서 유래했기에 종교적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여기서 ‘양들’은 살인사건의 피해자들, 나아가 무지하고 선량한 대중을 의미하는 게 일반적이다. 스털링은 들리지는 않지만 실재했던, 피해자들의 울음소리를 늘 의식하며 살았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런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란 죄의식이다.

‘두 계모’의 행위와 그에 대한 처벌이 또 한번 우리 사회 구성원들을 피해자이자 공범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는 ‘양들’이요, ‘스털링 요원’이다. 여기에서는 대통령도, 판사도, 기자도, 그 어느 누구도 단 한 발짝도 자유로울 수 없다. 계모들의 학대가 가능했던 사회, 고의성이 없기에 살인이 아니라는 사회는 양들이 침묵해서 만들어 낸 결과다.

뭐가 어찌됐든 이번 사건과 판결은 우리에게 몇 가지 과제를 남겼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우리 전통의 습관이 재현된다.(이 칼럼도 그렇다) 아동학대 예방시스템에 대한 반성, 양형 기준 강화, 관련법 개정….

곁들여 이번 판결은 의도하지 않았던 위험한 조언도 던져줬다. 극단적으로 말해 사람을 때려 죽였다 해도 “죽일 마음이 없었다”고 주장하면 형량이 줄어든다는.

피해자들은 아동이었다. 8살 된 여아들이었다.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들이었다. 성인이 힘껏 내려치면 죽을 수도 있는 연약한 아기들이었다. 누군가 자신을 죽을 만큼 때린다 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할, 그리고 그 하소연을 받아 줄 공간이라곤 눈씻고 찾아보기 힘든 세상을 살아가던 아이들이었다.

판사들은 피해자가 아동이라는 점을 좀더 들여다 봤어야 했다. 수많은 외국 법정에서 폭행과 학대로 아동을 숨지게 할 경우 고의성이 없더라도 왜 살인죄가 적용되는지를 좀더 이해해야 했다.

하지만 판결은 그렇게 끝났다. 검찰이 두 사건 모두 항소할 방침이라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결과에 대한 희망을 갖기는 어렵다.

스털링은 렉터의 질문에 "아니요"라고 말했다. 이제는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각고의 추적 끝에 연쇄살인마를 붙잡았으니 마음 속에 있던 죄의식이 사라졌고, 환청 또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범죄자들을 잡아 낼 용기를 얻었다. 그녀로 인해 그 사회에서 범죄의 피해자들이 줄어들 가능성이 조금은 더 커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스털링 요원처럼 '그 자리'를 지킬 준비가 되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여전히 사회적 죄의식을 떨쳐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매년 10명, 한달에 1명꼴로 아이들이 학대받다 숨지고 있다.

14일에도 2살배기 아들을 방치해 숨지게 한 게임 중독 아버지가 붙잡혔다. 한 아버지의 탓으로만 돌리기엔 우리는 너무 멀리 왔다. 여기저기서 양들의 슬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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