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속 부실한 안전관리…'대형복합상가'의 위험한 비밀

화려함속 부실한 안전관리…'대형복합상가'의 위험한 비밀

신희은 기자, 고양(경기)=김유진·신현식
2014.05.28 06:51

["잊지 말자 4·16" - '안전이 복지다' <2부>"안전은 시스템이다">]<1-1>규정만 있는 현장

- 색다른 공간연출 '아트리움' 건축양식 화재엔 취약

- 사전 안전관리로 보완 안할 땐 대형참사 부를 수도

26일 오전 9시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56명이 부상을 입었다.
26일 오전 9시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종합터미널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56명이 부상을 입었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두고 엘리베이터로 건물 로비에 들어가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1년내내 쾌적한 공기속에 눈도, 비도, 바람도 상관없이 쇼핑, 외식, 영화부터 거주까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지하주차장부터 옥상 하늘정원까지 연결해주는 에스컬레이터는 건물 중앙부를 시원하게 뚫고 올라간다. 미로처럼 복잡한 공간이지만 에스컬레이터만 찾으면 이리저리 이동할 수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대형복합상가는 현대 도시인들의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이다.

이 크고 견고한 대형복합상가에서 예기치 못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있다. 채 30분이 안되는 화재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편리하고 화려하기만 한 대형복합상가가 화재 등 돌발사고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불이야" 소리에 돌아보니 천장이 순식간에…

근로자 A씨는 지난 26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지하 1층 공사현장에 있었다. 푸드코트 매장 인테리어가 한창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현장은 오전 9시2분 인근에서 LNG(액화천연가스) 가스배관 용접공사를 하던 한 인부의 용접기에서 불꽃이 튄 순간 아수라장이 됐다.

불꽃은 5분만에 큰 불로 번졌고 "불이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작업중 뒤를 돌아본 A씨는 천장에 불이 1㎡쯤 타고 있던 모습을 발견했다. 10초 가량 소화기를 찾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불은 천장 전체로 번져 있었다. 검은 연기가 자욱해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다.

화재 발생 직후 순식간에 지하 1층을 가득 채운 검은 연기는 건물 바닥에서 천장까지 연결된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는 불꽃과 연기를 실어나르는 통로로 돌변했다. 지하 1층 방화셔터도 작동하지 않았다. 지하 5층~지상 7층으로 이뤄진 터미널은 순식간에 연기로 가득찼다.

A씨는 건물에 입주해 있던 상점, 영화관, 대형마트, 버스터미널 등 이용객 700여명속에 섞여 밖으로 대피했다. 화재는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오전 9시29분 출동한 소방차에 의해 완전히 진압됐지만 지하 1층에서 1명, 지상 2층에서 5명, 병원으로 이송됐던 환자 1명 등 총 7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가운데 대부분은 2층 화장실과 계단 등지에서 연기를 마신 채 질식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상자 6명을 비롯한 56명이 부상을 입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다.

◇시원하고 색다른 공간으로 인기, 화재엔 '취약'

과거엔 대형복합상가들이 많은 상점들을 입점시키기 위해 공간을 촘촘하게 배치했다. 최근엔 대형복합상가가 단순히 소비를 위한 곳이 아니라 도시인들의 문화생활공간으로 떠오르면서 실내에서 소비는 물론, 휴식도 병행할 수 있는 공간 설계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대형 건축물 가운데가 뻥 뚫리도록 해 색다른 공간감을 제공하는 '아트리움'(atrium) 건축 양식이 각광받고 있다.

아트리움 양식을 도입하면 자연채광을 실내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일 수 있고 아래에서 올려다 보면 웅장함이 배가된다. 쇼핑몰이나 박물관 등의 경우 복잡한 내부 구조로 길을 잃을 수 있는데 중심공간이 있어 길찾기가 쉬워진다는 실용적인 장점도 있다.

소리 울림이 발생할 수 있고 온도차가 발생하거나 화재에 취약하다는 단점도 있지만 이같은 점을 보완할 수 있다는 이유로 새로 건축되는 대형복합상가들이 대부분 아트리움 양식을 채택하고 있다.

김용승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는 "기존에 천장이 3~4미터 수준으로 있다가 하늘이 뚫리면 심리적으로 전혀 다른 느낌을 가질 수 있다"며 "물론 취약점이 있고 모든 부분을 다 충족하는 건축물은 없기 때문에 화재 발생에 대비해 벽면에 스프링쿨러를 설치하거나 천장도 열릴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등 보완하는 방식을 시도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에스컬레이터도 방화셔터도 있지만 안전관리가 관건"

문제는 새로운 형태의 대형복합상가의 이같은 취약점이 안전의식과 사전관리로 보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데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건물 양식이나 구조를 떠나 규정과 매뉴얼을 지킨다면 화재로 인한 대형 인명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방화시설이 아무리 제대로 갖춰졌더라도 사고시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성은 호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에스컬레이터 주변에는 방화셔터를 설치하고 셔터가 내려왔을 때 문을 열고 대피할 수 있는 통로가 다 설치돼 있는데 방화셔터가 화재감지기와 연동해 작동하도록 제대로 설치됐는지, 화재시 실제 잘 작동을 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화재발생시 연기의 통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장치는 다 돼 있지만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영섭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도 "백화점이나 대형쇼핑몰들에 가보면 에스컬레이터 주변에 적체물을 쌓아놓거나 비상전원을 꺼두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며 "이때 불운이 덮치면 연기를 감지하는 방화셔터가 작동하지 않아 피해가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전에 대한 의식수준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세홍 가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이번 고양시외버스종합터미널 화재사고는 그 정도 규모면 화재심의 절차를 다 밟았을텐데 계속해서 검사하고 관리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세월호도 처음엔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며 이슈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이같은 문제가 반복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의식 수준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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