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자 4·16" - '안전이 복지다' <2부>'안전은 시스템이다'>]<1-2>건설현장 가보니

#서울 지하철 9호선 2단계 연장공사가 한창인 송파구의 한 현장. 안전모, 안전화 등을 착용하고 건물 2층 높이의 '지하세계'로 내려갔다. 지하로 내려가는 문을 열리자마자 가파른 계단이 눈에 들어왔다.
안전장구를 중무장했지만 지하로 한 계단씩 내려갈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쇠로된 계단은 가파른데다 폭도 좁고 지하수 등으로 인한 습기를 제거하지 않아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몇 계단을 내려가자 복잡한 철골 구조물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모습이 보였다.
철골 구조물은 내려가는 계단 사이사이로도 설치돼 있어 내려가는 내내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가파른 계단과 구조물 탓에 무릎이 가슴에 닿기도 수차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숨이 가빠왔다.

#서울 구로구 천왕도시개발지구에 지하 1층~지하 9층, 96가구 규모의 도시형생활주택 건립공사가 진행중인 공사현장에 건축자재들이 발디딜 틈없이 쌓여있다. 전체 1140㎡ 부지 가운데 절반 가량인 567㎡의 땅에 공사를 진행하다보니 매우 비좁아 보였다.
작업자들이 지나갈 통로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모습이었다. 내부로 들어가자 좁은 공간이 마치 미로처럼 복잡했다. 철근을 비롯해 시멘트와 파이프 등 자재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있었다.
해당 사업지는 주택가와 인접한 곳에서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내부에서만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 건축 초기 1~2층 기둥 등을 세우고 시멘트를 굳히기 위해 설치한 철골 구조물도 철거공간이 부족해 해체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모든 공정이 인력으로 이뤄지는 건설공사현장은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 중 한 곳이다. 특히 공사현장 안전사고는 자칫 대형 인명사고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안전사고에 대비한 관련법을 비롯해 안전매뉴얼과 훈련·교육 등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만 일선 현장에선 이같은 규정이 제대로 지키지지 않고 있다. 공사기간이 늘어지고 추가비용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의 인식이 문제다.
취재차 찾은 지하철 9호선 공사현장의 경우 작업인원이 130~140여명에 달해 매일 이를 관리하는 것 자체가 일이다. 추락방지시설 등을 곳곳에 설치해 두기도 했지만 매일 오전 7시 체조와 공정에 따른 당일 위험작업에 대한 팀별미팅을 진행한다고 현장 관리자는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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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기본적인 보호구 착용을 비롯해 △위험물 △전기피복 △토압 등을 모두 확인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아침마다 교육을 진행해도 현장에서 100% 사고를 막기는 어렵다고 현장 관계자는 밝혔다. 한 관계자는 "관리감독에도 한계가 있다. 작업자 스스로 안전을 지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설기계의 경우 사용 전·후에 따른 점검표가 있다. 천왕지구 건축현장엔 건설기계의 최대 중량기준을 비롯해 운전자의 음주여부까지 확인하도록 하는 매뉴얼이 비치돼 있다. 감리업체는 매번 이를 확인하지만, 그에 따른 작업시간 지연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비용문제도 있다. 공사비 1377억원 규모의 지하철 9호선 현장에 투입되는 안전장구와 설비 등 안전관련 비용은 전체의 1.3% 수준인 18억원에 불과하다. 계단난간 설치, 비상등 설치비용과 교육 등에 투입되는 모든 비용을 합한 금액이다.
공정과 안전 등을 관리·감독하도록 한 감리인원 등도 턱없이 적어 제대로 된 감시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1.3㎞ 구간을 공사는 지하철 9호선 현장의 경우 72개월의 공사기간이 소요되지만 감리인원은 고작 5명에 불과하다. 14개월이 걸리는 천왕지구 건물공사의 경우 감리인원은 1명뿐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건설업계 재해자수는 2만3600명으로, 전체 재해자수(9만1824명)의 26%에 달한다. 사망자수는 전체(1929명)의 29.4%에 해당하는 567명이다. 이중 질병을 제외한 사고 관련 사망자수는 516명으로 전체(1090명)의 47.3%가 넘는다.


건설업계는 일선 공사현장에 정해진 비용과 공사기간에 맞춰 매뉴얼대로 진행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현장에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만 강조하다보니 피로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건설현장에선 작업자들의 인식개선이 가장 필요하다"며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많이 나아졌다곤 하지만 사실상 크게 달라진 것은 없고 법과 기준만 높아졌다"고 말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비용 부담에 대해 "발주처가 공사금액만 줄이려다보니 당연히 안전비용도 줄여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 안전규정이 지켜지기 위해선 근로자들이 스스로 지키게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적정공사비 등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심규범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건설업계 특성상 현장인력이 계속 바뀌고 이에 따라 계속 투입되는 비용낭비를 막는 게 관건"이라며 "동시에 발주처나 현장감시자들에게 사고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