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는 내 탓이오" 대한민국에서 피해자들이 사는 법

"참사는 내 탓이오" 대한민국에서 피해자들이 사는 법

이원광 기자
2014.10.23 05:02

유가족 책임공방에 무력감 "우리나라에선 스스로 지켜야 한다"

"대학까지 나온 녀석이 그곳엔 왜 올라가."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 직후 사고의 책임을 숨진 희생자들에게 묻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대형 참사에서 보여준 당국의 소홀한 후속 조치에 따른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지붕 붕괴사고, 세월호 침몰사고 등에서 책임 공방에 매몰되는 당국과 정치권에 대한 무력감을 반영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22일 각종 온라인 게시판 등에는 이번 참사로 숨진 이들을 비판하는 다수의 글이 게재된 상태다. 900여개의 댓글이 달린 한 토론방에서 아이디 우*는 "관람석도 아니고 길거리도 아니고 시설물에 올라가서 사고난 걸 왜 나라탓으로 돌릴까? 나무 위에서 떨어지면 나라탓?"이라며 참사의 개인적 책임을 강조했다.

또 아이디 부******는 "딱 봐도 올라갈 곳이 있고 안 올라 갈 곳이 있지 올라간 사람이 잘못없냐"며 "그럼 무단행단도 잘못 아니라고 우기겠다. 무단횡단 못하게 터널식으로 도로 만드나"라고 지적했고, 아이디 송**는 "의식 수준 고치는 건 돈도 안 드는데 저런 데 수백억씩 들여야 하나? 그 돈으로 좋은데 쓸 곳도 많을 것 같은데, 그냥 안올라가면 되는데"라며 개인들의 안전 불감증을 꼬집었다.

이같이 참사를 개인의 탓을 돌리는 모습은 유가족들의 자책에서도 엿보였다. 판교 환풍구 추락사고로 숨진 A씨(24·여)의 유가족은 "우리나라에선 스스로 지켜야 한다. 국가가 뭐든 다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우리나라는 미국도, 유럽도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이 희생자들을 향한 누리꾼들의 비난과 유가족들의 자책은 잇따른 참사의 '학습효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국이 유가족들과의 대화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무력감을 느낀 유가족들이 문제 제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자책에 빠진 다는 설명이다.

권해수 조선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당국이 앞장서 대책마련에 나서면 기대감이 생기기 마련"이라며 "그러나 세월호 참사 때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으나 피부로 느껴지는 제도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무력감에 빠졌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이어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범위의 사건을 맞닥뜨리는 등 통제감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심리적으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며 "연이은 참사를 자신과 분리시키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환풍구에 올라간 개인적 실수도 있었으나 환풍구 주변 펜스 설치나 무게 하중 기준 등 사회 구조적으로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다"며 "당국이 정당한 문제 제기를 사회 갈등 비용으로 여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번 참사도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이례적인 빠른 합의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무력감의 원인으로 참사를 정치 쟁점화시켜 정쟁으로 몰아가는 정치권의 행태를 꼽았다.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에 나서야할 정치권이 책임 공방에 매몰돼 본질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임 교수는 "정치는 사회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규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참사 때마다 책임 공방과 정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참사를 지나치게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싸우기만 하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히 잊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겸훈 한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당국은 원인 규명을 위한 문제 제기를 마치 비난으로 받아들여 여론 확산을 막는 등 방어하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 며 "규정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등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데 책임 공방 속에 이런 건강한 문제 제기는 사라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처럼 국가적 참사를 개인화시키고,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원인 규명에 소홀하면서 참사가 재발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게 된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정부의 역할 중 하나는 안전 관리 등 반드시 해야하는데 아무도 하지 않는 영역을 책임지는 것"이라며 "참사는 사회 구조적 문제가 임계치에 도달했을 때 발생하는 만큼 이를 계기로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밝혀 재발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 교수는 "합의가 빠르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참사 유가족들이 이익집단으로 호도되고, 진단과 처방이 없이 합의를 종용하는 분위기가 계속돼 자칫 관행으로 굳어질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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