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당시 반바지는 신성모독에 풍기문란 행위


한국에 유관순이 있다면 프랑스엔 이 여성이 있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졌던 백년 전쟁(1337~1453년) 마지막 시기에 등장한 프랑스 구국 소녀 잔 다르크다.
잔 다르크는 1412년 프랑스 동레미의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열세 살이 된 어느날 그녀 앞에 천사장 미카엘이 나타나 "프랑스 왕을 구하고 오를레앙의 포위망을 풀도록 하라"는 계시를 듣고 전장에 나서게 됐다는게 역사 속 설명이다.
당시 프랑스는 백년 전쟁에서 영국군에 계속해서 밀리고 있었고 전쟁의 주 무대였던 프랑스 국민들은 고통에 시달려야만 했다.
왕세자의 허락을 받은 잔 다르크는 군대와 식량을 싣고 오를레앙으로 향했다. 백마를 타고 선두에 선 잔 다르크는 흰 갑옷에 망토를 걸치고 손에는 깃발을 들어 병사들을 진두지휘했다.
영웅을 기다리던 프랑스 병사와 시민들은 치솟은 사기로 똘똘뭉쳐 싸웠다. 그녀는 프랑스 병사들에게 승리의 여신이자 최고의 전략가였다. 일부 귀족들은 잔 다르크의 무모한 전략을 반대할 때도 있었지만 그녀는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끌어 내며 프랑스 영토를 되찾았다.
영국군은 그녀를 막을 길이 없었고 점점 후퇴하기 시작했다.
역대 프랑스 왕들의 즉위식이 치러졌던 랭스 지역까지 차지한 후 잔 다르크는 샤를 왕세자의 대관식을 추진했다. 그동안에는 북부 프랑스 영토 대부분을 영국 왕 헨리 6세가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왕의 즉위식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를 7세는 즉위하자마자 돌변했다. 잔 다르크 덕에 프랑스 왕으로 즉위할 수 있었지만 그녀의 높은 인기는 왕권을 높이는데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 사이 전열을 갖춘 영국군은 재공격에 나섰다. 잔 다르크는 다시 갑옷을 입었지만 샤를 7세는 잔 다르크를 지원하지 않았다.
결국 잔 다르크는 콩피에뉴 전투에서 패했고 영국과 동맹한 부르고뉴 군대에 포로로 붙잡혔다. 부르고뉴는 잔 다르크를 영국군에 팔아 넘겼고 영국군은 다시 샤를 7세에게 잔 다르크의 몸값을 흥정했다. 하지만 샤를 7세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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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 다르크는 영국과 부르고뉴의 주도하에 일곱 번의 재판을 받았고 마녀·이교도·우상숭배라는 죄를 뒤집어썼다. 사제가 아닌 그녀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주장은 마녀이자 이교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1431년 5월30일 19살 소녀는 루앙 광장 화형대에 올랐다.
잔 다르크의 죄목에는 한가지가 더 있다. 여자인 몸으로 남자의 옷을 입었다는 죄명이다. 구약성경 신명기에는 '여자는 남자의 의복을 입지 말 것' 이라고 써있는데 잔다르크가 전장에서 남자 반바지 위에 갑옷을 입었다는 게 문제가 됐다.
당시에는 여성이 다리를 보여준다는 게 선정적인 의미였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드레스를 입을 수도 없는 노릇. 잔 다르크는 당시 반바지를 고정하는 끈이 7개였음에도 끈을 20개나 묶는 등의 노력을 하기도 했다.
수감 생활 중에도 지급된 드레스를 거부하고 반바지를 고수했는데 이는 감옥 안에 같이 들여보내진 영국 경비병들이 그녀를 겁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잔 다르크가 반바지를 입는 행위는 신성모독이며 풍기문란 행위였다. 잔 다르크가 계속해서 반바지를 고집한 것은 종교 재판관들에게 좋은 증거가 됐다.
그녀는 죽어서야 명예를 회복할 수 있었다. 샤를 7세는 1453년 백년전쟁이 끝난 후인 1456년이 돼서야 잔 다르크의 마녀 혐의를 풀어줬다. 잔 다르크를 죽음으로 몬 주범인 교회는 1920년에야 그녀를 성녀로 시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