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취재진 둘러싸인 자택서 괴한 2명에게 칼에 찔려 사망해


일본 오사카시의 한 아파트 복도. 취재진들이 카메라를 들고 빼곡히 대기 중이다. 대기 중인 아파트의 깨진 유리창 속으로 남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줘!"
하지만 이 취재진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얼마가 지났을까. 두 남성이 다시 그들이 취재진들 앞에서 깨고 들어간 유리창을 다시 넘어 복도로 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길고 가느다란 칼이 들려 있었다. 손과 옷가지에는 피가 흥건히 적셔져 있었다.
이들은 "우리가 살인한 범인이다! 체포해가라!"라고 당당히 말하고 아파트 앞에서 경찰에 연행됐다.
이날 살해된 사람은 일본에서 희대의 사기꾼으로 꼽히는 나가노 카즈오 도요타상사 사장. 두명의 남성은 취재진이 몰려있는 복도에 당당히 들어서 나가노 카즈오를 죽이겠다고 선언한 후 복도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그를 무참히 살해했다.
31년 전 1985년 6월18일, 이 살인사건으로 일본은 큰 충격에 휩싸이게 된다.
이 사건은 나가노 카즈오가 벌인 '도요타상사 사기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카즈오는 1981년 도요타상사를 설립하고 투자자들에게 금에 투자하라고 설득한 뒤 돈을 위탁받는 식으로 사기를 벌였다. 투자자들로부터 돈을 받고 '순금패밀리증권'을 발행해 줬다. 카즈오는 투자자들에게 금을 산 뒤 금값이 오른 뒤 되팔아 수익을 다시 투자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속인 것이다.
이때 나가노 카즈오가 끌어모은 돈만 해도 약 2000억엔. 투자한 사람만 5만명이 넘었다. 대부분 노인들이 자신의 노후를 걱정하며 내놓은 쌈짓돈이라 피해는 더욱 컸다. 이후에는 주로 독거노인 집에서 진을 치고 있거나 집에 드러눕는 형식으로 '강매'도 서슴치 않았다.
나가노 카즈오가 '도요타'라는 이름을 사용한 것도 다분히 의도적이었다. 마치 도요타자동차 회사의 계열사인양 자신의 회사를 소개했고, 도요타자동차 모델을 그대로 기용해 회사를 홍보하는 방법으로 노인들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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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사기수법은 4년만에 덜미가 잡혔다. 도요타상사 상법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경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선 것이다. 살해 당한 날도 경찰이 그를 체포하기로 한 날이었다.
이 사건으로 희대의 사기꾼은 '척결'됐지만 사건에 대한 피해자들은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다. 사기사건의 주동자가 사망하면서 돈의 사용처와 흐름을 알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특히 살인에 가담했던 괴한 2명으로 밝혀진 쿠라타 아프로(당시 56)와 야노 마사카즈(당시 30)는 이번 사기사건과는 큰 연관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탓에 이 사건을 입막음을 해야 하는 누군가로부터 사주를 받아 나고야 카즈오를 살해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편 이 사건으로 비난의 화살은 엉뚱한 곳으로 쏟아졌다. 바로 나가노 카즈오의 비명소리에도 그를 도와주지 않았던 취재진들. 일본 국민들은 이들이 취재열기에만 사로잡혀 위급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다며 크게 비판했다.
이들의 행동은 군중끼리 몰려있을 때 어려운 사람을 지나치는 '방관자 심리'를 설명할 때 자주 소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