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도심 환경 개선됐지만…청계천 상인, 유적, 인공하천 문제 남아

㎡

"600년 고도 서울이 잃어버렸던 맑은 물과 시원한 바람 길을 이제야 다시 찾게 됐다."
2005년 10월1일 오후 6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에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청계천의 개통을 알렸다. 47년간 복개로 덮여 있던 청계천(중구 태평로 1가에서 성동구 신답철교까지 5.84km 구간)이 물이 흐르고 시민들이 걸을 수 있는 하천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세계 30여개 도시 시장 등 6000여명의 주요인사와 2만여명의 시민들도 청계광장에 모여 청계천의 재탄생을 축하했다.
이날 청계천에는 전국 각지에서 담아온 물이 한데 모였다. 백두산 천지, 한라산 백록담, 두만강, 압록강, 전남 영산강, 전북 금강, 경북 낙동강, 강원 소양강, 서울 한강, 그리고 청계천 시점부인 인왕산 등 10곳에서 담아온 물은 한 항아리에 합쳐져 민족의 통일과 번영을 기원하며 청계천으로 흘려보내졌다.
조선시대 개천(開川)으로 불린 청계천은 평소 건천이었지만 큰비가 내리면 범람해 집이 떠내려가는 일이 잦았고 생활오수 문제도 심각했다. 청계천 치수작업은 태종 때부터 시작됐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은 지금의 '청계천'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일부 구간을 복개했다.

한국전쟁 이후 청계천은 서울의 대표적 빈민촌이었다. 청계천 복개사업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됐다. 1958년 본격적으로 시작된 공사는 1977년 마무리돼 광교부터 신답철교 구간이 콘크리트로 덮였다. 복개된 청계천에는 광교에서 동대문구 용두동까지 청계고가도로가 만들어졌다. 청계고가도로는 교통흐름을 원활하게 만들며 현대화의 상징이 됐다. 복개도로 주변에는 세운상가, 평화시장, 동대문시장 등이 들어섰다.
그러나 복개된 청계천 일대는 시간이 갈수록 흉물이 돼갔다. 외부와 차단돼 순환이 안되는 청계천은 하수구처럼 변했고 악취가 올라왔다. 청계고가 아래 청계천로는 주변 도매상가에 오가는 차량들로 항상 교통 정체가 일어났다. 그 결과 청계천 일대는 심각한 대기오염 지역이 됐다. 군사정부 시절에는 복개도로 안에 찬 가스가 터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은 자국민들에게 청계천 복개도로 주변에 가지 말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청계고가는 점점 노화돼 2002년 7월에는 대형차량의 진입이 통제됐다.
독자들의 PICK!
2002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청계천 복원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1990년대부터 흘러나온 청계천 복원 주장을 본격적으로 공약화한 것이었다. 이명박 후보는 이 공약으로 많은 지지를 얻어 민선 3기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03년 7월1일 청계고가가 철거되면서 청계천 복원이 시작됐다. 2년3개월간 3867억원을 들인 공사 끝에 2005년 9월30일 청계천 복원공사가 완공됐다.

오염된 도심의 상징이었던 청계천은 도심 속 생태공원으로 거듭났다. 복원 전에 비해 미세먼지와 이산화질소가 줄어 대기질이 개선됐고 소음도 줄었다. 주변 지역보다 온도가 낮아져 열섬현상이 완화됐다. 복원 4년을 맞은 2009년에는 청계천에 서식하는 생물종도 복원 전보다 6.4배 늘어난 626종에 달했다. 보호종인 도롱뇽도 나타났다.
‘새물맞이‘를 한 이래 청계천은 항상 산책과 데이트를 즐기는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3만여 건의 행사가 청계천에서 열렸고 900여차례 영화·드라마 등의 배경으로 쓰였다. 10주년이던 지난해까지 청계천에 다녀간 사람은 2억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청계천 복원은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서울시는 2004년 베니스국제건축비엔날레 최우수시행자상, 2006년 일본토목학회 환경상, 2009년 UN 헤비타트 특별대상도시 등을 수상했다.
청계천 복원에는 어두운 면도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이명박 전 시장이 임기 내 완공을 위해 청계천 복원을 무리하게 진행했다고 지적했다. 청계천은 빠른 복원을 위해 자연 하천이 아닌 인공 하천으로 복원됐다. 바닥에 콘크리트를 깔고 한강물과 지하수를 끌어다 쓰기 때문에 '인공어항'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때문에 큰비가 올 때마다 침수돼 출입통제를 하고 어류가 집단 폐사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물을 끌어오는 등 유지·관리 비용은 연간 75억원에 달한다고 알려졌다.
복원 당시 발견된 유적들이 예산과 공사 기간을 이유로 원래대로 복원되지 않은 것 또한 문제로 지적됐다. 복개를 뜯어냈을 때 발견된 석축, 효경교, 하량교, 오간수문 등은 중랑구 하수종말처리장에 보관되고 있다. 수표교 자리에는 실제 모양을 본떠 만든 다리가 설치됐고 진짜 수표교는 아직도 장충단공원에 남아 있다.

청계천 복개로 제자리를 잃은 것은 유적뿐만이 아니었다. 청계천 상인들도 삶의 터전을 잃었다. 2003년 서울시는 청계천 상인의 이주대책으로 송파구 문정동에 들어설 '가든파이브' 23㎡(약 7평) 규모 상가를 7000만~8000만원에 분양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분양가는 2배를 넘는 1억5000만~2억원에 이르렀다. 때문에 서울시가 6만여명의 청계천 상인 중 입주 의사가 있는 6097명에게 특별분양권을 줬지만 계약한 사람은 1028명에 그쳤다.
가든파이브상권은 활성화되지 않았고 임대료를 못 내고 쫓겨나는 상인이 늘어갔다. 일부는 청계천으로 돌아가 노점을 하거나 일용직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2015년 말 가든파이브에 남은 청계천 상인은 10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2013년 '청계천 재복원 로드맵'을 내놓았다. 2014년부터 2050년까지 청계천을 자연 하천화하고 직선화된 물길을 곡선화하는 계획이다. 곳곳에 흩어진 청계천 유적들을 원위치로 돌려놓는 방안도 담았다. 그러나 청계천 복원사업의 가장 큰 피해자인 청계천 상인들에 대한 피해 복구책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