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오늘… 42년 독재 카다피, 시민군 총에 최후

5년 전 오늘… 42년 독재 카다피, 시민군 총에 최후

이재윤 기자
2016.10.20 06:02

[역사 속 오늘]'최악의 독재자' 카다피 고향서 사망… 리비아 여전히 내전으로 '홍역'

5년 전 오늘(2011년 10월 20일)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시민군의 총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AFPnews=뉴스1
5년 전 오늘(2011년 10월 20일)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가 시민군의 총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AFPnews=뉴스1

42년 간 이어진 '피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 5년 전 오늘(2011년 10월 20일) 시민군에 쫓기던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가 69세 나이로 자신의 고향 시르테에서 최후를 맞았다.

독재자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2011년 3월 본격 시작된 리비아 혁명(내전)에서 정부군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시민군의 기세에 무너졌다. 시민군은 그해 8월 수도 트리폴리를 장악했고 카다피의 고향까지 진격해 끝내 사살했다.

외신 등에 따르면 당시 하수구에 숨어있던 카다피는 시민군과 맞닥뜨린 후 '쏘지마'라고 두 번 외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를 부흥시킨 '아랍의 체 게바라'에서 독재자로 돌아선 카다피의 마지막은 참담했다.

당시 리비아 국민들은 카다피에 지칠 만큼 지쳐있었다. 그는 1985년 로마·빈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1988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270여명이 탑승한 미국 팬암기를 폭파하는 등 테러를 저지르며 악명을 떨쳤다.

부정축재에도 일가견이 있는 카다피는 1500억 달러가량(약 170조 원)의 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악의 독재자'로 이름을 올렸다. 돈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들들을 정부의 각종 요직에 앉혔다.

또 자신을 '아프리카 왕 중의 왕'이라며 황금관을 쏘고 황금 권총까지 가지고 다니는 등 기행까지 보이기도 했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그를 '중동의 미친 개'로 불렀을 정도다.

1961년 쿠데타에 성공한 카다피는 달랐다. 27살 청년 카다피는 꺼져가는 리비아의 불씨였다. 그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조직한 '자유장교단'을 중심으로 수도를 장악하며 유혈사태 없이 정권을 장악했다. 쿠데타 당시 대위였던 계급은 대령으로 수직 상승했다.

공화정을 세운 그는 석유와 도로, 항만 등을 국영화 시키고 기간산업을 늘리며 당시 외국 자본의 손에 있던 국부를 되찾았다. 국민들에게 교육과 의료 혜택을 늘리고 정치참여 기회도 제공 받도록 각종 제도를 손질하며 인기를 끌었다.

아랍 단일 민족주의을 주장하며 반미·반유대 노선을 고수했고 반체제 단체 등에 적극 지원하기도 했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을 강조하며 음주를 금지하고 독자적인 직접민주제를 구상했다. 그의 정치사상을 담은 책 '그린북'도 나왔다.

이 같은 입장은 2003년 원유수출 금지라는 국제연합(UN)의 극약 처방으로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게 되기까지 미국 등 서구국가들과 오랜 갈등의 원인이 됐다. 2000년대 초 카다피는 미국 등에 화해의 손짓을 보내며 개방을 하기도 했다.

그는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면서도 1970년 국가 원수와 총리, 국방장관 등을 겸직하며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9년 뒤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고 '혁명지도자'란 명예직으로 남았지만 모든 권한은 그가 갖고 있었다.

독재 조짐의 시작은 1977년 공화국을 '대 사회주의 인민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민중에 의한 정부)' 체제로 만들면서다. 그는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도 없애 이슬람과 사회주의를 혼합한 '아랍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정치를 펼치겠다고 밝혔다.

오랜 권력에 취한 카다피는 결국 독재자가 됐다. 1980년대 중반 그는 혁명동지 등을 비롯해 자신의 뜻에 반하는 사람은 모두 숙청하는 등 공포정치를 했다. 그 사이 막대한 부정축재 규모 등이 드러나면서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등 돌린 시민들은 결국 카다피에게 총을 겨눴다. 군주를 제외하곤 세계 최장기 집권자인 그는 아들들에게 정권을 물려주고자 정부 요직에 자리를 내주기도 했지만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카다피 사망 이후 리비아는 홍역을 치르고 있다. 수도인 트리폴리에 기반을 둔 이슬람계 정부와 동부 토브루크에 기반을 둔 비이슬람계 정부가 양분돼 내전을 벌이면서 수천명의 리비아인들이 국제 난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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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윤 기자

안녕하세요. 스토리팀 이재윤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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