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L] 법제처 '협회 취업' 관련 공직자윤리법 첫 법령해석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특정 ‘협회’에 취업하려 할 경우 퇴직 전 업무가 ‘협회 자체’와 관련이 없더라도 그 협회의 회원인 민간기업과 업무상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경우 해당 협회에 취업이 제한될 여지가 있다는 법령 해석이 처음으로 나왔다. 협회 등 유관단체에 취업하려던 고위 공무원들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제처는 최근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관련 질의에 대해 이 같은 내용의 법령 해석을 내놨다. '협회 취업'에 대해 법제처가 해석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퇴임을 앞둔 고위공직자 A씨는 기업체들이 공동이익과 상호협력 등을 위해 설립한 'OO협회'에 취업하려 했지만 인사혁신처에 의해 제지당했다. 인사혁신처가 공직자윤리법을 근거로 "공무원의 퇴직 전 직무가 협회와 관련이 없더라도, 해당 협회 회원인 사기업체와의 관련성도 함께 고려해 (취업제한사유를) 판단할 수 있다"고 하자 A씨는 반발했다.
근거조항인 공직자윤리법 제17조는 4급 이상의 공무원을 비롯한 등록의무자(취업심사대상자)는 퇴직일부터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기관에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관업체와의 유착고리를 차단하고 재직 중 직무 수행의 공정성과 공직윤리를 확립하려는 취지다.
A씨는 그러나 "취업제한 제도는 퇴직공직자의 직업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여서 관련 규정은 엄격하게 해석해야 하는데,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제한기관은 '사기업체'와 '사기업체를 회원으로 하는 협회'로 각각 구분해 규정하고 있다"며 "협회와 취업심사대상자의 퇴직 전 소속 부서의 업무와의 밀접한 관련성 여부를 해당 협회와의 관련성뿐만 아니라 해당 협회의 회원인 사기업체와의 관련성까지를 함께 고려해 판단할 수 있다고 보는 건 법령의 지나친 확대해석"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인사혁신처는 올초 법제처에 '퇴직 공직자가 특정 협회에 취업하려는 경우 해당 협회의 회원인 사기업체와의 밀접한 관련성이 취업제한 사유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질의했다.
법제처는 이에 대해 "입법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협회와 취업심사대상자의 퇴직 전 소속 부서의 업무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 해당 협회 자체와의 관련성뿐만 아니라 협회의 회원인 사기업체와의 관련성을 함께 고려해 판단해야만 한다"고 지난달 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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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는 회원사(사기업체)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곳이다. 회원사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업무를 담당했던 부서에 근무했던 퇴직공직자가 해당 협회에 아무 제한 없이 취업하는 것은 회원사에 직접 취업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다.
법제처는 "퇴직 후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해당 사기업체의 이익을 도모하거나 퇴직 후 해당 협회에 취업할 목적으로 재직 중에 협회의 회원인 사기업체에 부당한 특혜를 주는 등 직무 수행의 공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직접 인가·허가 등을 받거나 생산 업무 또는 공사, 용역 등을 직접 수행하는 곳은 회원사인 사기업체이지 협회가 아니다. 법제처는 그러나 취업 심사 대상자의 퇴직 전 밀접한 업무 관련성을 해당 협회 자체만으로 국한 시켜 취업제한 기관에서 제외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봤다.
법제처는 "취업심사대상자가 퇴직 전에 협회의 회원인 사기업체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는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서 근무한 경우에도 해당 사기업체의 이익을 위한 단체인 협회에 자유롭게 취업할 수 있게 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후 퇴직 공직자들의 취업제한 범위가 확대되는 쪽으로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됐다.
최근엔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구상엽)가 김학현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을 2013년 한국공정경쟁연합회 회장으로 가면서 취업심사를 제대로 거치지 않은 혐의와 현대·기아자동차그룹 계열사에 자녀의 채용을 청탁했다는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또 중소기업중앙회에 취업했다 공정위로 돌아온 지철호 현 부위원장을 조만간 소환해 '불법 재취업'(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공정위 퇴직자들의 불법 재취업에 관여한 혐의로 최근 김동수·노대래·정재찬 전 공정위원장을 소환해 조사하고 정 전 위원장을 구속했다.
이번에법제처의 해석으로 협회 취업에도 제동이 걸리는 등 퇴직 공무원들에 대한 취업제한 심사가 더욱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