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개원 20년, 누적 수련원 100만 돌파…"인간성 상실·사회갈등, 선비정신 절실한 때"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지만 자살률은 OECD에서 가장 높고, 갈등과 반목은 어느 때보다 심해요. 인간관계를 자기중심적이고, 물질적 이해득실로만 따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반대된 시대가 조선시대예요. 배려와 공감정신이 있는 선비정신이 절실한 때죠."
요즘 MZ(밀레니얼+제트)세대 사이에서 '선비'는 '꼰대', '예민충'과 함께 일종의 멸칭(蔑稱)으로 쓰인다. 학교나 사회에서 '너 선비같다'란 말을 듣고 달가워하는 10대나 20대를 찾기 어렵다. 고루하고 꽉 막힌, 융통성 없는 사람을 일컫는 표현으로 통하면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선 누굴 조롱하는 데 동참하지 않고 정색하는 사람에게 '유교 탈레반'이라고 비하하거나, '씹선비질 하지 말라'고 욕할 정도다.
선비란 말이 갖는 가치가 땅에 떨어진 오늘날, 역설적이게도 '선비정신'을 외치는 곳이 있다. 옛 선비의 마음가짐이 공동체 붕괴를 막을 수 있단 뜻에서다. 평생의 꿈을 '소원선인다(所願善人多·착한 사람이 많아지길 바란다)'라고 했던 퇴계 선생이 제자들을 길렀던 안동 도산서원이다. 벌써 전국 곳곳에 100만 선비를 키웠다고 한다. 말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히는 선비정신이 어떻게 사회난제를 풀 수 있다는걸까.

27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연 간담회에서 내달 초 누적 수련생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김병일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은 "시골의 작은 기관에서 출발해 20년 만에 수련생 100만명을 배출하게 됐다"며 "잊히고 사라지는 선비정신 교육을 통한 인성 교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이하 수련원)은 조선시대 대학자 퇴계 이황(1501~1570)을 모신 경북 안동 도산서원의 부설기관이다. 2001년 설립, 이듬해부터 선비정신을 가르쳤다. 첫 해 227명의 교육자들이 들른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99만8700명이 선비가 돼 돌아갔다. 코로나19(COVID-19)인 이전 2019년 한 해에만 18만6000여명이 찾았다.

시골의 선비양성소가 100만 선비를 길러낸 데엔 두 명의 노인의 역할이 컸다. 수련원은 퇴계 선생의 16개 종손인 이근필 선생이 직접 주창해 설립했다. 사비를 털어 수련원을 만들고, 당시만 해도 금녀(禁女)의 구역이었던 서원을 여성에 개방해 남녀노소 모두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구순(90세)에 이른 최근에도 직접 수련생을 가르친다고 한다.
김병일 이사장은 수련원 대중화를 이끌었다. 조달청장, 통계청장에 이어 기획예산처 장관까지 역임한 김 이사장은 2008년 이사장을 맡았다. 경제성장을 이끈 관료로서 정신적 풍요와 인문학적 가치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이후 선비정신 교육과정을 정비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경상북도, 안동시의 수련원사 건립와 수련 교육비용 지원을 받으며 연간 수련생 규모를 크게 확대했다. 현재 수련원은 정부·지자체 지원과 자체 수입으로 재원을 마련해 연간 46억원의 예산으로 운영하고 있다.

수련원이 제시하는 선비정신의 요체는 배려와 공감이다. 융통성 없는 훈계가 아니라 공동체적 마음가짐과 존중을 강조한다.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부각되기 시작한 인문학적 소양과 맥이 닿아 있다. 학생 인성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재조명 된 이유다. 이에 2015년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한 정부가 매년 20~30억원씩 지금까지 292억원의 국비를 투입하며 수련원 진흥을 돕고 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최근 수련원과 인성교육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독자들의 PICK!
선비정신 교육은 전국 초·중·고교 교장으로 퇴임한 교육원로 175명이 지도한다. 입소수련 뿐 아니라 '찾아가는 학교 선비수련'도 진행한다. 세대차이, 노사갈등으로 고민이 큰 대기업까지 수련원을 찾는다. 포스코 그룹의 경우 2015년부터 신입사원 뿐 아니라 부장, 임원까지 매년 수련에 참여했고, 최근엔 노사간부가 동반입소하기도 했다.

수련원은 향후 대규모 수련 뿐 아니라 가족을 대상으로 한 인성교육·힐링 프로그램인 '서원행(行)' 등 소규모 교육을 확대할 계획이다. 김병일 이사장은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관계자 옛날 같지 않고, 직장에서도 세대 차이가 커진 상황에서 진정한 교육이 일어나기 힘들어졌고 (선비정신을 통해) 이를 치유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왔고, 세상에서 내가 쓸모 있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커진다"며 "AI가 결코 따라할 수 없는 공감능력을 가진다면 필요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