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환급적립금, 지난해 누적 500억원 넘어
수혈 보상 비용 줄면서 매해 10억~50억원씩 적립
건보 재정과는 별도로 관리… "잠자고 있는 돈, 활용처 찾아야"

지난해 '헌혈환급적립금' 누적액이 처음으로 500억원을 돌파했는데 이 돈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고 예금계좌에 예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헌혈환급적립금은 헌혈자가 헌혈할 때마다 건강보험(건보) 재정에서 1500원씩 나와 쌓이는 돈이다.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에서 별도로 빠져나와 사용되지도 못하고 쌓인 금액이 500억원이나 되는 셈이다.
주된 용도는 헌혈 증서를 제출한 수혈자의 수혈 비용을 보상하는 것이지만, 수입 대비 수혈 보상 비율이 낮아 해마다 적립금이 늘고만 있다. 헌혈 증진 TV 광고에 수십억 원을 사용했음에도 여전히 돈이 남는 실정이다. 건보 재정 환원 등 500억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용처를 찾아야 하는 지적과 함께 헌혈 1건당 적립되는 1500원 예치금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3일 이종성 의원(국민의힘)이 보건복지부에 요청해 제출받은 최근 5개년 '헌혈환급적립금 사용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헌혈환급적립금 누적액은 506억9000만원을 기록했다. 헌혈환급적립금은 헌혈자가 한 번 헌혈할 때마다 헌혈 기관이 내는 1500원의 예치금이 쌓인 돈이다. 헌혈자가 향후 헌혈 증서를 내고 수혈을 받을 때 그 비용을 무상으로 지원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1999년 헌혈관리법 개정으로 헌혈환급적립금이 탄생한 이후 누적액이 500억원을 넘어선 건 지난해가 처음이다.
헌혈 한 건당 적립되는 1500원 예치금은 건보 재정에서 충당된다. 이렇게 쌓인 헌혈환급적립금은 대한적십자사가 독립된 계좌를 개설해 관리한다. 별도로 자금을 운용하지는 않고 예금 계좌에 넣어두고 있다. "국민이 내는 건강보험료가 환자를 위해 사용되지 않고 은행에 쌓여만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헌혈환급적립금은 예치금과 이자 수익 등을 합쳐 매해 50억~80억원 수입을 기록했다. 2018년 86억6200만원에 달했던 수입이 이듬해 54억5700만원으로 줄었는데 헌혈 한 건당 적립되는 예치금이 2500원에서 1500원으로 줄었기 때문이다. 2018년 당시에도 헌혈환급적립금이 지나치게 쌓였다는 비판이 제기됐고, 이에 보건복지부 혈액관리위원회가 주요 수입원인 예치금을 인하한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도 헌혈환급적립금은 해마다 50억원 안팎의 수입을 올렸다.
문제는 벌어들이는 50억원 안팎의 수입에 비해 지출이 적어 해마다 10억~50억원씩 적립됐다는 것이다. 헌혈환급적립금 누적액이 500억원을 넘어선 이유이기도 하다. 자금의 주된 용도가 헌혈 증서를 제출한 환자의 수혈 보상 비용인데 이 금액이 매해 20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헌혈환급적립금 총수입에서 수혈 비용 보상에 사용된 금액의 비율은 지난해 기준 31.4%에 그쳤다.
수혈 비용 보상액이 적은 까닭은 수혈의 건보 급여가 확대되면서 환자 본인 부담이 줄었기 때문이다. 수혈의 본인 부담이 싸기 때문에 환자 입장에서는 굳이 헌혈 증서를 사용해 무상으로 수혈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이종성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헌혈 증서 발급 건수는 264만9007건이다. 이 중 수혈 비용 보상에 사용된 증서는 20만4321건으로 환급률은 7.7%에 불과하다.
독자들의 PICK!
이종성 의원은 "전자 헌혈증서 도입 등 헌혈증서 사용률 제고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적십자사는 쌓인 헌혈환급적립금을 각종 연구 사업과 헌혈 증진을 위한 TV 광고에도 사용했다. 2018년 희귀혈액 공급 구축에 5억8600만원, 2020년에 말라리아 핵산 증폭 검사에 4억500만원, 2022년 헌혈증서 재발급 관련 시스템 구축으로 5억3000만원을 사용했다. 2020년은 최근 5개년 중 처음으로 헌혈환급적립금 수입보다 지출이 많았는데 해당 연도에 '헌혈 증진 캠페인(TV 광고) 및 효과성 조사' 비용으로 46억8000만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2021년에도 같은 명목으로 15억7000만원을 사용했다.
물론 이같은 사용처는 법에 규정돼 있기 때문에 위법은 아니다. '혈액관리법' 제15조 3항에 따르면, 헌혈환급적립금은 수혈 비용의 보상 외에도 △헌혈의 장려 △혈액 관리와 관련한 연구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그럼에도 본래는 환자 의료 비용에 사용됐을 건보 재정이 각종 연구나 캠페인 광고에 사용되는 게 맞느냐는 비판은 가능하다. 헌혈환급적립금을 건보 재정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회장(백혈병환우회 대표)은 "헌혈환급적립금이 500억원씩 쌓이다 보니 다른 곳에다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 것"이라며 "TV 광고에 사용한 수십억 원도 적립금이 없었으면 안 썼을 돈이지 않나. 시행령으로 이 돈을 연구나 시스템 구축에 사용할 수는 있지만 건보 재정이 원래 이런 데다가 쓰는 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 회장은 "500억원의 건강보험료가 은행 계좌에서 그냥 잠자고 있는 것인데 이를 건보 재정으로 환원하거나 적극적으로 활용할 다른 용처를 찾아야 한다"며 "헌혈 한 건당 충당되는 1500원 예치금이 여전히 높게 측정됐다면 이를 더 줄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헌혈환급적립금은 어떤 용도로 사용돼야 한다고 법에 정확하게 명시가 돼 있다"며 "이걸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는 없다. 건보 재정으로 환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법의 취지랑 맞지 않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