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불 나서 일찍 나갔으니 환불해달라는 손님도"…강릉 펜션촌 울상

[르포]"불 나서 일찍 나갔으니 환불해달라는 손님도"…강릉 펜션촌 울상

강릉(강원)=정세진 기자
2023.04.13 16:42
13일 오후 강원로 강릉시 안현동 소재 안모씨가 운영하는 펜션. 최근 화재로 객실 6개가 전부 타버렸다./사진=정세진
13일 오후 강원로 강릉시 안현동 소재 안모씨가 운영하는 펜션. 최근 화재로 객실 6개가 전부 타버렸다./사진=정세진

"전소 판정 받아도 빠르면 6~7개월 걸릴 텐데 허물고 다시 짓고 영업하려면 내년에도 어렵지 않을까요…막막합니다."

강원 강릉시에 대형 산불이 난 지 이틀째인 13일 오후, 펜션들이 다닥다닥 모여있는 강릉시 사근리 해변 일대는 이맘때쯤 늘어나야 마땅할 관광객들을 대신해 손해사정사들이 모여들었다. 영업 재개를 위해 철거·수리 등에 필요한 '견적'을 뽑아야한다. 당장 영업이 막막한 숙박업주들은 보험사로부터 화재피해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선다고 입을 모았다.

안모씨는 이날 오후 안현동 자신의 펜션에서 불타버린 가재도구들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지난 11일 발생한 화재가 진화된 뒤로 부인과 함께 매일 펜션으로 돌아와 쓸 만한 물건이 남아있는지 찾고 있다. 9년 전 약 10억원을 투자해 펜션을 지었다. 지상 2층, 객실 6개 규모의 펜션은 이번 화재로 1층 전체가 탔다. 건물 외장재는 녹아내렸고 1층 내부는 기존에 놓여 있던 가구가 무엇인지 추측할 수 없을 정도로 불탔다.

안씨는 초등학생 자녀들을 일단 친척집에 보냈다. 안씨는 당장 생계를 어떻게 이어갈지가 막막하다고 했다. 그는 "마을 전체가 타버려서 우리만 복구한다고 영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안씨를 찾아온 손해사정사는 10여명이 넘는다. 명함을 건네는 이들은 '사장님 편에서 최대한 전소 판정을 받아주다'며 안씨를 설득한다고 했다. 안씨도 화재 보험에 가입해 있지만 보험사가 전소 판정을 해줄지 걱정이 앞선다. 완전히 불에 탔다는 의미인 전소 판정을 받아야 보상금이 커지고 새로 펜션을 지을 여유가 생긴다. 그렇지 않으면 수리비 정도만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 안모씨 펜션의 1층 내부 객실 모습. /사진=정세진 기자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안현동 안모씨 펜션의 1층 내부 객실 모습. /사진=정세진 기자

사근진 해변을 바라보는 강릉시 해안로길 변 호텔·펜션·민박 등 숙박업소의 피해규모는 천차만별이다. 이날 오전 기준 산림청과 강원산불방지센터 등에 따르면 화재로 주택 40동, 펜션 28동, 호텔 3동 등이 피해를 봤다.

'ㅍ호텔' 직원 이모씨는 "지난 화요일 오전 8시쯤 밖이 너무 시끄러워 호텔 6층 직원방에서 자다 나와보니 이미 연기가 자욱해 호텔 밖은 하나도 안 보이는 상황이었다"며 "투숙객들에게 대피를 안내했지만 호텔 앞뒤로 빨간 화염과 연기가 둘러싸 앞뒤를 구분할 수 없었다. 로비로 손님 20여명을 모아 수건에 물을 적셔 코와 입을 가리게 했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사근진 해변가에 위치한 숙박업소들. /사진=정세진 기자
13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사근진 해변가에 위치한 숙박업소들. /사진=정세진 기자

화재 당시 4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던 이 호텔은 투숙객의 차량과 직원 차량을 이용해 투숙객 전원을 대피시켰다. 이씨는 오전 10시쯤 마지막으로 호텔을 떠나기 직전 투숙객이 남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30여개의 객실을 일일이 마스터키로 열어 확인했다. 이때 객실 3곳에서 잠들어 있던 고객을 발견해 대피시켰다.

현재 이 호텔은 화재 복구를 위해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이씨는 "'체크아웃이 11시인데 화재 때문에 일찍 나갔다'며 숙박비 전액을 환불해 달라는 고객이 3~4명 있었다"며 "어떤 고객들은 연기를 많이 마셔서 폐가 아프다며 치료비를 요구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지난 11일 오전8시쯤 강릉 원주시 ㅍ숙박업소 맞은편 펜션이 불에 타고 있다. ㅍ호텔 직원 이모씨는 "화염과 연기로 오전 8시임에도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숙박업소 내부에서 촬영한 영상. /영상=독자 제공
지난 11일 오전8시쯤 강릉 원주시 ㅍ숙박업소 맞은편 펜션이 불에 타고 있다. ㅍ호텔 직원 이모씨는 "화염과 연기로 오전 8시임에도 밖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숙박업소 내부에서 촬영한 영상. /영상=독자 제공

이번 화재로 일반 주택도 40여 채가 불에 탄 것으로 조사됐다. 고향 마을 안현동의 화재소식에 인천에서 회사를 다니던 전모씨(53)는 지난 11일 오전 회사에 휴가를 내고 강릉으로 내려왔다.

전씨는 "여든세살의 아버지와 일흔아홉의 어머니를 여동생이 모시고 살았는데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 밖으로 나와 보니 이미 동네 곳곳이 불타고 있었다고 한다"며 "아버지와 어머니가 애완견을 챙길 틈도 없이 돈 한 푼 안 가지고 논을 가로질러 도망쳐 다행히 다치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13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전모씨 주택./사진=정세진 기자
13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전모씨 주택./사진=정세진 기자

전씨는 "태어나고 자란 안현동에 이런 화재 피해는 처음"이라며 "길 건너편 펜션 다섯채는 전소됐는데 다행히 우리집은 외부만 그을려서 전기만 들어오면 다시 살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안현동에서 피해 현장 조사차 나온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당초 예상보다 피해규모가 늘어나고 있다"며 "화재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대피하면서 정확한 피해 상황 집계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3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한 펜션. 전기와 인터넷 등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진=정세진 기자
13일 오후 강원 강릉시 안현동의 한 펜션. 전기와 인터넷 등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사진=정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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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기자

안녕하세요. 정책사회부 정세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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