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서 왔지" 지하철역 노인들 털썩…서울 무더위쉼터 4133곳인데, 왜?

"더워서 왔지" 지하철역 노인들 털썩…서울 무더위쉼터 4133곳인데, 왜?

최지은 기자
2023.08.17 05:00

[르포] 뙤약볕 피해 지하철역으로 가는 노인들...무더위쉼터 존재 몰라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환승구간에는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16일 종로3가역에서 만난 이모씨(84)가 다른 노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환승구간에는 더위를 피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노인들이 많다. 16일 종로3가역에서 만난 이모씨(84)가 다른 노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사진=최지은 기자

"무더위쉼터? 어딨는지 몰라. 여기 오는 게 맘이 더 편해."

뙤약볕이 내리쬐는 16일 오후 1시. 서울지하철 1호선 종로3가역 환승구간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이모씨(84)는 '무더위 쉼터에 대해 들어보셨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씨는 더위를 피해 아침 일찍부터 경기 김포시에서 종로3가역을 찾았다. 더위가 한풀 꺾이는 오후 4시가 돼서야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고 했다. 같은 시각 이씨 주위에는 노인 10여 명이 앉아 손 선풍기를 켜거나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면서 정부가 전국 6만여 곳을 무더위쉼터로 지정해 운영하고 있다. 폭염 취약계층과 함께 일반 시민들도 더위를 피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이날 무더위쉼터를 무작위로 방문한 결과 일부 무더위쉼터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행정안전부의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세종마을경로당을 무더위쉼터로 안내하고 있다. 16일 '카카오맵'을 열어 위치를 검색했으나 세종마을경로당은 나오지 않았다. '네이버지도'에서는 세종마을경로당 뒤 무더위쉼터까지 입력해야 상세주소가 검색됐다./사진=최지은 기자
행정안전부의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세종마을경로당을 무더위쉼터로 안내하고 있다. 16일 '카카오맵'을 열어 위치를 검색했으나 세종마을경로당은 나오지 않았다. '네이버지도'에서는 세종마을경로당 뒤 무더위쉼터까지 입력해야 상세주소가 검색됐다./사진=최지은 기자

무더위 쉼터를 찾아가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행정안전부 국민재난안전포털에 안내된 종로구 통인동 세종마을경로당은 지도 앱에서 '세종마을경로당 무더위쉼터'를 정확히 검색해야 상세 주소가 나왔다. 원래 이 장소를 알던 노인들이 아니라면 쉽게 찾아가기 어려워 보였다.

세종마을경로당 관리실장으로 일하고 있다는 이홍종씨(79)는 "일반 시민들도 지나가다 들릴 수 있지만 경로당에 가입한 어르신들이 주 이용자"라고 했다.

비용 문제도 있다. 이씨는 "무더위가 지속되는 기간에 경로당 운영시간을 늘리라고 하는데 한 달에 45만원 정도 쓸 수 있는 지원금에서 수도비, 가스비, 식비 등을 모두 감당해 운영비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경로당에 등록된 분만 60여명에 고정으로 방문하시는 분이 20명 가까이 된다"고 밝혔다.

16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위치한 또 다른 무더위쉼터 '청운경로당'은 오후 12시가 다 되도록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경로당 운영시간에 따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출입이 가능해야 했다. 문을 두드리고 문 손잡이를 당겨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사진=최지은 기자
16일 서울 종로구 신교동 위치한 또 다른 무더위쉼터 '청운경로당'은 오후 12시가 다 되도록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경로당 운영시간에 따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출입이 가능해야 했다. 문을 두드리고 문 손잡이를 당겨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사진=최지은 기자

서울 종로구 신교동의 다른 무더위쉼터 청운경로당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곳은 정오가 다 되도록 문이 굳게 잠겨있었다. 경로당 운영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문을 두드리고 문손잡이를 당겨봤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무더위쉼터를 이용하기 위해 방문했더라도 문이 잠겨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상태였다.

15분 정도 기다리자 청운경로당 부회장 김모씨(90)가 도착했다. 김씨는 "오후 2시쯤 돼야 사람이 제법 모인다"며 "에어컨 온도 제한 같은 건 없어 자유롭게 틀 수 있지 지원금이 부족해 경로당 운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가장 큰 문제는 무더위쉼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시민들이 많다는 점이다. 이날 통인시장 인근에서 만난 주민 배모씨(58)는 "무더위쉼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이 동네에는 무더위 쉼터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통인시장에서 세종마을경로당까지는 불과 도보 5분 거리다.

서울시에 있는 무더위쉼터 4133곳 중 경로당 등 노인시설로 분류된 곳은 3180곳에 달한다. 무더위쉼터 대부분이 노인시설이라 일반 시민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인시장 인근 정자에서 만난 최석태씨(65)는 "지나가다 무더위쉼터라는 안내를 보면 잠시 쉬어갈 수 있겠지만 노인정이라고 하면 선뜻 방문하기 쉽지 않은 것 같다"며 "차라리 노약자 공간이라든지 명칭을 바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느낌을 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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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 기자

안녕하세요. 산업1부 최지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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