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론' 책 한 권 때문에…'억울한 옥살이' 서울대생, 42년만에 '무죄'

'자본론' 책 한 권 때문에…'억울한 옥살이' 서울대생, 42년만에 '무죄'

이현수 기자
2025.10.28 11:24

"범죄자 굴레 벗어 다행"

서울남부지법./사진=뉴시스.
서울남부지법./사진=뉴시스.

40년 전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불법 구금돼 옥살이를 했던 70대 남성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4단독(판사 김길호)은 28일 오전 정진태씨(72)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재심 선고공판을 열고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마르크스의 서적 내용이 국가 안정을 위협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자본론뿐만 아니라 칼 마르크스 사상 저서는 국내에서 공식 출판되고 널리 읽혔다"며 "서적 내용이 북한 활동에 동조하거나 국가의 존립, 안정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또 "사상과 학문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권리로 가급적 폭넓게 인정돼야 한다"며 "(피고인은) 민주주의 열망 등으로 이같은 서적을 소지하고 탐독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피고인에게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등 이적 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수사 과정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검거 당시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는데 사법경찰관이 영장 없이 불법 연행했으며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까지 한달 동안 영장 없이 수사했다"며 "압수물, 압수조서도 형사소송법상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수집된 것으로 증거 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선고 후 취재진과 만난 정씨는 "40년 동안 짓눌러왔던 범죄자라는 굴레를 벗게 돼서 정말 다행"이라며 "이제서야 정식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된 기분이다. 진실 규명을 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보안법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신 분들 중 재심을 못 받은 분들도 많다"며 "이분들도 속히 소명할 수 있는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씨 측 변호인은 국가 배상 관련해 "정씨는 3년 구금을 당했기 때문에 형사 보상 절차를 거칠 수 있다"며 "불법 구금과 가혹 행위, 처벌 이후 사찰 과정 등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 부분까지 국가 배상을 청구한다면 배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983년 2월 당시 서울대 학생이었던 정씨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등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혐의로 검거된 후 재판에 넘겨져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올해 초 해당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보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 정씨가 당시 경찰 수사관들에 의해 23일간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조사받고 가혹행위 속에 허위자백을 강요당한 사실이 확인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결심공판에서 정씨에게 무죄를 구형했다. 당시 검찰은 "증거 기록과 피고인의 주장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불법으로 체포됐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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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기자

사회부 사건팀 이현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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