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나홀로 소송이 못하는 진짜 위로와 공감

[광화문]나홀로 소송이 못하는 진짜 위로와 공감

이학렬 사회부장
2026.04.03 05:50

시간은 금이다. 함부로 쓰지 말라고 한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하루는 24시간이다. 부자이든 가난하든. 가치 있고 부족하니 더 갖고 싶다. 하지만 하루를 25시간으로 늘릴 수 없다. 일을 더 해야 한다고, 시험공부를 한다고 내일의 1시간을 미리 당겨서 쓸 순 없다.

원칙적으론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살 수 없다. 다만 다른 사람의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쓰게 할 수 있다. '고용'이다. 고용주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출퇴근 시간과 구체적으로 해야할 일들을 정한다. 고용하는 사람이 많으면 관리하는 사람도 고용한다. 사람도, 돈도 직접 관리하고 싶지만 시간이 부족하다.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비전과 목표도 세운다. 한마음 한뜻으로 일하게 하기 위해서다.

반면 시간을 판 피고용인은 삼체인(류츠신의 SF소설 '삼체' 속 외계인으로 속임수를 모른다)이 아니기에 고용주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없다. 사람이기에 충전의 시간도 필요하다. 임금이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등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비용으로 정해진다는 논리가 여기서 생겼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선 임금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용주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싸게 사고 싶어한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법이 생겼다. 최저임금이 생겼고 일하는 시간이 주 52시간을 넘기지 못하도록 했다.

부족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노력도 필요했다.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계와 기술의 힘을 빌렸다. 1명이 1시간에 100원의 부가가치를 생산한다고 하면 200원의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위해선 2명을 고용하거나 2시간을 일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기계 등을 쓰면 적은 시간을 써도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 R&D(연구개발)에 기업들이 돈을 쓰는 이유다. 혁신적인 '증기기관'과 '컴퓨터' 등은 산업혁명을 이끈 기술·기계로 역사에 남았다.

AI(인공지능)가 새로운 산업혁명을 이끌고 있다. 노동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1시간에 100원, 200원이 아닌 몇 천원, 몇 만원의 부가가치도 생산할 수 있다.

무엇보다 AI는 기존의 시간 개념을 뿌리채 바꾸고 있다. AI를 활용하면 더 이상 다른 사람의 시간을 살 필요가 없다. 나와 닮은, 적어도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아는 AI가 가능해진다. AI에게도 하루는 24시간이지만 나와 완전히 같은 AI가 있다면 나의 시간은 48시간으로 늘어난다. 나와 50%만 비슷해도 나의 시간은 36시간으로 늘어나는 셈이다. 마음만 먹으면 '내 시간'을 무한히 늘릴 수 있다.

AI는 사람이 아니니 의식주를 해결해줄 필요도 없다. 전기만 충분히 주면 된다. '나'랑 같아서 내 생각이 잘못 전달될 위험도 없다. 사실상 혼자 일하니 조직문화도 필요없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일도 없다. 뜻을 함께 하는 패거리도 필요없다.

변호인 없는 '나홀로 소송'이 늘어나고 있다. 법원행정처가 발행한 '사법연감 2025'에 따르면 소액 민사사건의 경우 양쪽 모두 변호사를 선임한 비율이 2.3%(2024년 기준)에 불과하다. 변호사 비용이 높고 믿을만한 변호사를 찾을 수 없어서다. AI 활용도가 높아지면 나홀로 소송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AI로 판례를 찾고 의견서를 작성하는 게 법조계에서 일상이 되고 있다. AI가 신입 변호사를 대체하면서 신입 변호사가 갈 곳이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AI 도움을 받은 나홀로 소송이 만족스러울까. 변호사들이 소송을 진행하다보면 '의뢰인은 잘못한 게 없어요'라는 위로와 공감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복제한 AI가 해주는 가짜 덕담 말고 진짜 사람이 하는 진짜 위로와 공감을 바라는 것이다. 혼밥, 혼술이 편하고 좋을 때가 있다. 하지만 진짜 사람하고 오순도순 얘기하면서 밥을 먹고 술을 마실 때가 더 좋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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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학렬 사회부장

머니투데이에서 사회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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