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학년도 수능]

"엄마도 대학 간다!"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하루 앞둔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일성여자중·고등학교. 학교 입구에 중장년 여성 70여명이 줄지어 모였다. 이들은 학교로 들어서는 두 여성을 향해 큰 목소리로 응원을 쏟아냈다. 제기와 피켓도 흔들었다. 두 여성은 오는 13일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이다. 일성여고는 여성 만학도들이 다니는 학력 인증 평생교육시설이다. 올해 총 60명의 만학도가 수능을 치른다.
응원단으로 나선 고2 이동숙씨(76)는 "(선배들을 보니) 부러운 마음이 든다"며 "옛날에 학교를 못 다녀서 한이 있었는데 내년 수능이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중3 이순여씨(72)는 "진심으로 선배들이 다 붙으면 좋겠다"며 "저도 대학 갈 건데 내후년 수능이 떨릴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만학도 수험생들은 후배들의 응원에 미소로 화답했다. 이들은 지하 1층 다목적실에 모였다. 수험표를 받기 위해서다. 교사들은 수험생 60명 이름을 부르며 직접 자리로 찾아가 수험표를 건넸다.

학교에서 최고령 수험생인 유금선씨(77)는 "수험표를 받으니 너무 떨린다"며 "수능날 김밥을 가져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등단 시인인 유씨는 프로필을 쓸 때마다 학력의 대학 부분을 비워두는 게 늘 아쉬웠다. 유씨는 "집안 형편으로 기회가 없었는데 (일성여고를 알게 된 후) 공부를 더 해보고 싶었다"라고 했다.
그는 "제일 재밌는 과목은 과학"이라며 "다른 과목들도 나름의 매력이 있고 우리 생활에 필요한 과목들"이라며 "나이가 들어 수학은 다 잊어버려서 공부가 어려웠다. 문인협회 일도 챙기고 집안일을 하면서도 집에서 틈틈이 공부했다"라고 말했다.

최연소 수험생은 베트남에서 태어나 한국에 귀화한 이하은씨(25)다. 이씨는 "중1 때 학교를 더 나가지 못했는데 어느 날 남편이 '당신 몰래 학교에 등록해놨다'고 말했다"며 "그 순간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5살인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가게 될 테니 배움의 본보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육아와 학업을 병행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공부할 때는 아이가 놀아달라고 한다. 그러면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5분 후에 놀아준다고 하면 금세 또 온다"며 "공부가 아예 되지 않으니 포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그러나 나중에 아이에게 엄마도 해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며 "옆에 공부 노트를 두고 한 번 읽고 놀아주다가 또 한 번 읽고를 반복하며 외웠다"라고 했다.
이씨의 목표는 사회복지학과 통·번역을 배워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통역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더 깊이 배우고, 언어와 문화의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함께 공부한 언니들에게 '수능 날 서로를 믿고, 웃으면서 시험장에 들어가자'라고 말하고 싶다"며 "함께 '화이팅'을 크게 외치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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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수험생 김순자씨(73)는 "국민학교 6학년까지 다니다가 이사와 이민으로 학업을 마치지 못했다"며 "미국에 이민 갔을 당시 알파벳도 모르고 가니까 들리는 게 없었다. 못 배운 한이 컸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95세인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귀국했다. 아픈 남편을 위해 요양사 자격증을 따러 간 학원에서 일성여고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어서 학교에 오기 싫었는데, 점차 성적이 올랐다"며 "영어를 배우고 싶은 욕망이 커졌다"라고 했다. 이어 "나를 잘 찾아가서 결실을 맺고 싶다. 풋풋한 사과에서 지금 불그스름하게 익었으면 빨갛게 더 익고 싶다"라고 했다.
일성여고 교장과 교사들은 수능 당일 홍대부속여고로 향한다. 만학도 수험생들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영어 교사 나경화씨(39)는 "수능 응시 자체가 축하받을 일"이라며 "그런 일을 도왔다는 거에 대해서 보람차고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수험생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씩 주고, 안아드릴 예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