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전했다" 동승자 거짓말 안 말린 음주운전자…대법 "범인도피방조 유죄"

"내가 운전했다" 동승자 거짓말 안 말린 음주운전자…대법 "범인도피방조 유죄"

양윤우 기자
2026.06.18 15:21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구글에서 머니투데이 추가하기
[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 있다. 대법원은 이날 운전자 바꿔치기 제안에 응해 음주 측정을 피한 운전자(전직 경찰)의 범인도피방조 혐의 사건에 대한 선고를 내린다. /사진=머니투데이 DB
[조희대(가운데)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8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대법원 전원합의체 선고에 참석해 있다. 대법원은 이날 운전자 바꿔치기 제안에 응해 음주 측정을 피한 운전자(전직 경찰)의 범인도피방조 혐의 사건에 대한 선고를 내린다. /사진=머니투데이 DB

음주운전 차량에 타고 있던 동승자가 '자신이 운전을 했다'는 취지로 주장하는 사건에서, 동승자의 거짓말을 방관하기만 한 진범을 범인도피방조 혐의로 처벌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진범이 스스로 자신의 범행을 회피하는 행위를 자기방어권의 행사로 보고 원칙적으로는 처벌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을 가짜 범인으로 내세우는 행위는 자기방어권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대법원장 조희대)는 18일 범인도피방조 및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찰관 A씨 사건에서 상고를 기각하고 유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2023년 5월 전북 전주시 완산구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에서 면허취소 수준인 혈중알코올농도 0.097% 상태로 차를 몰다 신호 대기 중인 승용차를 들이받는 사고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또 조수석에 타고 있던 친구 B씨가 경찰에게 '내가 운전했다'고 허위로 말하는 것을 도운 혐의도 받았다. B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자신이 운전자인 것처럼 진술하고 음주 측정에도 응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관이었던 A씨는 이 사건으로 해임된 것으로 전해졌다.

재판에서는 진범인 A씨가 다른 사람의 허위 자백을 직접 시킨 경우가 아니라 그 거짓말을 쉽게 하도록 돕거나 방조한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형법상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숨겨주거나 도망가게 도와준 사람을 처벌하는 조항이다. 다만 범인 본인이 스스로 도망가는 행위는 범인도피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자기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80시간을 선고받았다. B씨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심과 대법원도 1심 판단을 유지했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 8명은 "범인을 위해 타인이 허위로 자백해 범인도피죄를 범하는 것을 범인 스스로 방조하는 경우 방어권 남용으로 범인 도피방조죄가 성립한다"고 밝혔다. 진범이 단순히 침묵하거나 도망간 수준을 넘어 다른 사람을 가짜 범인으로 세워 경찰 수사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행위는 형사사법 절차에 큰 장애를 주기 때문에 처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진범이 친구에게 먼저 '너가 했다고 말해달라'고 시킨 경우뿐 아니라 친구의 허위 진술을 도운 경우도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취지다.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가담 방식이 교사인지 방조인지에 따라 처벌 여부가 갈리는 것이 아니고 진범이 가짜 범인을 내세워 수사를 방해했는지 여부가 본질이라고 판단했다.

또 방조 행위까지 처벌하지 않으면 진범이 '내가 먼저 시킨 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수 있고 결국 가짜 범인을 내세운 행위 자체를 제대로 처벌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오경미·이흥구·서경환·권영준·박영재 대법관 등 5인은 이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의견을 냈다. 반대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범인도피죄는 범인을 비호하려는 범인도피죄 본범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일 뿐 스스로 도피행위를 한 범인을 처벌하는 규정이 아니다"라며 "자기 도피 행위는 범인도피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범인의 방조 행위는 교사행위와 달리 타인을 타락시키거나 새로운 범죄자를 창출하는 행위반가치가 없다. 본질적으로 자기방어와 이익을 위한 인간 본성에 따른 자기 도피행위의 연장선에 있는 행위"라며 "범인의 방조 행위에 대해서까지 예외적 방어권 남용 법리를 확대 적용해 범인도피죄 처벌 영역을 넓히는 것은 법리 적용 한계를 벗어난다"고 했다.

거짓말을 시키는 행위인 교사와 달리 친구의 거짓말을 도운 방조까지 처벌하는 것은 형법상 처벌 범위를 지나치게 넓히는 것이고 범인의 방조 행위는 자기방어의 연장선에 있는 행위로 볼 여지가 있다는 취지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양윤우 기자

안녕하세요. 사회부 양윤우 기자입니다.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