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폭염은 계절 현상을 넘어 노동자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산업재해'가 되고 있다. 온열질환 산재 승인 건수는 최근 5년 새 6배 가까이 증가했고, 정부는 올해 폭염특보를 3단계로 개편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였다. 폭염 시 휴식 기준을 강화하고 작업 중지 권고도 마련했다.
그러나 현장 노동자들은 '쉬면 임금이 줄어든다'는 현실에 폭염 속으로 내몰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를 맞아 해외 각국이 폭염 노동권을 법으로 구체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제도는 대부분 '권고' 수준에 머물러 있어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보완이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기상청은 지난 6월 폭염특보 체계를 기존 '주의보·경보' 2단계에서 '주의보·경보·중대경보' 3단계로 개편했다. 2008년 폭염특보 제도 도입 이후 18년 만이다. 새로 도입된 '폭염 중대경보'는 최고 체감온도 38도 이상 또는 최고기온 39도 이상으로 생명과 안전에 중대한 위험이 예상될 때 발령된다.
고용노동부도 지난 5월 폭염 대응 기준을 강화했다. 체감온도 33도 이상(폭염주의보)에서는 사업주가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의무를 지키지 않아 노동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적용된다.
체감온도 35도 이상(폭염경보)에서는 1시간마다 15분 이상 휴식 제공과 오후 2~5시 옥외작업 중지가 권고된다. 체감온도 38도 이상(폭염 중대경보)에서는 긴급 작업을 제외한 모든 옥외작업 중지가 권장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체감온도 38도에서는 65세 미만의 전체 사망위험이 4%, 심혈관질환 사망위험이 7% 증가한다. 65세 이상에서는 전체 사망위험이 19%, 심혈관질환 사망위험이 14%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고 단계인 폭염 중대경보에서도 작업 중단은 법적 의무가 아니다. 정부는 현장 감독을 통해 권고 이행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폭염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빠르게 늘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온열질환 산재 승인 건수는 2020년 13건에서 2021년 19건, 2022년 23건, 2023년 31건, 2024년 51건, 2025년 77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노동계는 현행 제도의 실효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민주노총은 최근 폭염 중대경보 발령 시 야외 작업과 활동 중지가 권고에 그치고 있다며 노동자의 휴식권 보장을 촉구했다. 또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도 '급박한 위험' 기준이 모호하고, 작업 중지를 이유로 한 불이익 처우를 막을 장치가 없어 현실에서는 행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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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법이 보장하는 작업중지권도 사측과 관리자의 불이익 처분이 두려워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특히 플랫폼 노동자와 특수고용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 적용이 제한돼 폭염 보호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산업계에서는 구조적 한계를 제기한다. 폭염으로 작업을 중단하면 공정이 지연되고 노동자는 임금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체감온도를 현장에서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렵고, 하청·도급 구조에서는 휴식을 요구하기 쉽지 않다는 점도 제도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폭염 휴식권을 여전히 노동자의 생존권보다 기업에 대한 규제와 부담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해외에서는 폭염을 산업안전 문제로 보고 노동자 보호 의무를 법으로 구체화하는 추세다. 온도 기준을 명확히 정하고 사업주 의무와 제재 규정을 마련하는 등 폭염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열사병 예방 규정을 강화했다. 기온 31도 이상 또는 습구흑구온도(WBGT·더위체감지수) 28도 이상인 작업장에서 연속해서 1시간 이상 또는 하루 4시간 초과 근무하는 경우 사업주는 2인 1조 등 위험 징후를 즉시 보고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열사병이 의심되면 즉시 작업을 중단시킨 뒤 응급조치를 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6개월 이하 징역 또는 50만엔(약 47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프랑스도 올해 폭염 대응 의무를 법제화했다. 폭염 관련 황색·주황색·적색경보가 발령되면 사업주는 근무 시간 조정과 식수 제공, 휴게공간 확보, 냉방시설 운영 등 조치를 시행해야 한다. 의무를 다하지 않아 피해가 발생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
독일은 실내 작업장 온도를 단계별로 관리한다. 26도 이상이면 환기와 작업시간 조정, 복장 완화 등 8개 조치가 권고된다. 30도 이상에서는 해당 조치가 의무화되며 35도를 넘어서면 냉방시설 등 보호조치가 없는 경우 작업장을 '일할 수 없는 장소'로 지정한다. 그리스는 폭염 예보 시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야외 노동자와 배달 종사자에게 의무 휴식을 부과하고 있다.
스페인은 2023년 관련 법령을 개정했다. 폭염 관련 주황색경보(기온 37~40도)나 적색경보(40~44도)가 발령되면 사업주는 작업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가장 더운 시간대에는 쉬고, 밤이나 새벽에 일하는 등 작업 시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해 소득 감소 우려를 줄였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폭염 기준은 없지만 일부 주에서 폭염 안전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는 90°F(32.2도) 이상 시 실외 노동자에게 2시간마다 10분 이상의 휴식을 보장한다. 해당 시간은 근로 시간으로 인정돼 임금을 삭감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8월 3일부터 2주간 폭염에 취약한 사업장을 중심으로 현장 감독을 실시하고 폭염 안전 5대 기본 수칙(물·바람·그늘·휴식·보냉장구) 준수 여부를 집중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5대 기본 수칙은 △시원한 물 제공 △냉방장치 설치 △2시간마다 20분 이상 휴식 △보냉장구 지급 △온열질환 발생 시 119 신고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