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주기 맞은 '뮌헨 참사'가 이집트에 던지는 메시지

54주기 맞은 '뮌헨 참사'가 이집트에 던지는 메시지

이효석 인턴기자
2012.02.06 16:52

# 1

1958년 2월 6일.

하얗게 눈이 쌓인 독일 뮌헨 공항 활주로에 비행기 한 대가 들어섰다. 비행기 안에는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과 코칭 스탭, 구단 직원들, 언론사 기자들이 타고 있었고 저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맷 버스비 감독의 지휘 하에서 유럽 축구계를 호령하며 '버스비의 아이들(The Busby Babes)'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맨유 선수단은 이틀 전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열린 레드스타와의 원정 경기에서 유러피언컵(현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진출을 확정 짓고 뮌헨을 경유해 영국으로 귀국하려던 중이었다.

"뭔가 잘못됐다."

기장 제임스 타인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비행기는 이미 두 번이나 이륙을 실패했다. 오후 3시 4분, 그는 세 번째로 이륙을 시도했다.

천천히 땅으로부터 멀어지던 비행기는 갑자기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곧장 땅으로 추락했다. 굉음을 내며 불시착한 비행기는 그대로 주인 없는 민가에 들이 받았고, 기체 오른쪽은 기름이 가득 채워진 트럭과 충돌했다.

트럭은 폭발했다. 불시착의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탑승자 44명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고 그 중 21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나머지 23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2명은 끝내 목숨을 잃었다.

'뮌헨 참사'는 축구계 최악의 비극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뮌헨 참사'는 축구계 최악의 비극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 2

그로부터 약 54년이 지난 2012년 2월 1일, 이집트의 연안 도시 포트사이드에서는 축구 경기가 열렸다. 치열한 응원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홈팀 알 마스리가 원정팀 알 아흘리에게 3-1 승리를 거뒀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알 아흘리 원정팬들은 응원하는 팀이 경기에서 패배하자 알 마스리 팬들을 조롱하는 글귀가 적힌 걸개를 내걸었고, 이에 격분한 알 마스리 팬들이 알 아흘리 응원단을 공격하면서 비극이 시작됐다.

폭력은 순식간에 그라운드 안까지 번져 선수들과 경기장 직원들에게까지 위험에 처했고, 경찰의 미적지근한 대응까지 겹쳐 결국 79명이 사망하고 1000여 명이 부상당하는 끔찍한 결과를 낳았다.

둘레 68.5cm의 자그마한 축구공에서 시작된 유혈 사태는 초록색 잔디 그라운드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이집트는 최악의 축구 관중 난동 사건으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집트는 최악의 축구 관중 난동 사건으로 인해 홍역을 치르고 있다.

뮌헨 참사 54주기, 조용히 이어지는 추모 물결

2012년 2월 6일, 오늘은 축구계의 대표적인 비극 '뮌헨 참사'가 발생한지 54년 째 되는 날이다.

1950년대 당시 유럽 축구의 강호로 자리매김하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유래 없는 비극으로 인해 던컨 에드워즈를 비롯한 8명의 주축 선수들을 잃었고, 그해 남은 리그 경기에서 단 1승만을 거두는 데 그치며 암울한 나날들을 겪었다.

1960년 2월 25일, 올드 트래포드에는 세 개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관중석 입구 앞에는 서포터와 선수들의 추모를 상징하는 액자가 걸렸고, 기자석에는 사고 당시 사망한 8명의 기자들을 위한 청동 추모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경기장 앞에는 사고 당시의 시각에 멈춰있는 시계가 세워졌다. 지나는 이들은 그 앞에 서서 명을 달리한 23명의 넋을 기렸지만, 아픔은 쉬이 달래지지 않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장 올드 트래포드 외벽에 설치된 추모 조형물. 뮌헨 참사가 벌어진 날짜와 시각에 멈춰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장 올드 트래포드 외벽에 설치된 추모 조형물. 뮌헨 참사가 벌어진 날짜와 시각에 멈춰 있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오늘, '뮌헨 참사' 54주기를 맞이해 조용한 추모 물결이 이어졌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는 붉은색이던 메인 배너를 검정색 바탕의 추모 글귀로 대체하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FEB 6th 1958, FOREVER REMEMBERED(1958년 2월 6일, 영원히 기억될)'라는 제목의 섹션에서는 비극적인 역사를 소개하며 "우리는 이를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We will never forget)"라고 다짐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트위터를 통해 애도의 심경을 드러냈다.

(사진출처=트위터 화면캡쳐)
(사진출처=트위터 화면캡쳐)

웨인 루니는 "우리가 뮌헨 비행기 참사로 잃은 이들 모두, 편히 잠들기를. 우리는 그들을 잃었지만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라는 멘션을 적으며 조의를 표했다.

리오 퍼디난드 역시 "버스비의 아이들, 편히 잠들길. 그들은 떠났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라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맨유의 팬들은 선수들의 멘션을 리트윗하는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서 조용히 추모를 이어갔다.

뮌헨 참사 당시 선수단과 코칭 스탭. 붉은 빛 유니폼의 8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뮌헨 참사 당시 선수단과 코칭 스탭. 붉은 빛 유니폼의 8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이집트 축구장 관중 난동, 반정부 시위로 번져

반면, 영국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아프리카 이집트에서는 축구로 인한 또 다른 비극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비극은 앞서 언급한 관중 난동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다. 축구장에서 시작된 소요 사태는 반(反) 경찰 폭동으로 이어지더니 삽시간에 반 정부 시위로 확대됐다.

이집트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아랍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민주화 운동에 의해 퇴진한 이후 군부가 일시적으로 통치하는 상태다. 그러나 시민들은 군부 통치가 길어지고, 민주화 진전이 지지부진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고, 이는 반 정부 시위로 이어졌다.

이집트 보건부는 6일, 근 3일 간의 시위로 인해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약 250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 정부 시위대와 무장경찰 간의 충돌이 수도 카이로를 넘어서 수에즈, 알렉산드리아 등 주요 도시로 번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사상자는 당분간 늘어날 전망이다.

이집트의 축구장 관중 난동은 반정부 시위로 이어져 더 큰 희생을 낳고 있다.
이집트의 축구장 관중 난동은 반정부 시위로 이어져 더 큰 희생을 낳고 있다.

맨유와 버스비 경이 이집트 축구에 던지는 메시지

이집트의 소요 사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비극적인 역사를 동시에 바라보는 지금, 그 둘이 오버랩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뮌헨 참사' 이후 전력의 손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한동안 침체에 빠졌다. 참사 이전에 던컨 에드워즈를 위시한 '버스비의 아이들'을 이끌며 유럽 축구를 호령하던 버스비 감독은 사고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아 1년 만에 팀에 복귀했고, 다시 지휘봉을 잡았다.

버스비 감독은 함께 생존했던 보비 찰튼을 필두로 '버스비의 아이들 2기'를 꾸렸고 참사로부터 꼭 10년 만인 1968년, 유러피언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이 됐다.

그리고 버스비의 정신을 물려받은 알렉스 퍼거슨 현 감독은 '버스비의 아이들'의 뒤를 잇는 '퍼거슨의 아이들(Fergie's Fledglings)'을 꾸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세계적인 빅클럽으로 만들었다.

반면 이집트 축구는 수십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주범'으로 낙인찍혀 한동안 고초를 겪을 전망이다. 이집트를 통치하고 있는 군부 정권은 이집트의 프로축구 응원단 연합 '울트라스 타흐리르 광장(Ultras Tahrir Square, UTS)'을 반 정부 소요 사태의 근원으로 지목했다.

UTS는 이집트 프로축구팀 응원단끼리의 연합이다. 그들은 젊은 층으로 이루어진 축구 응원단이지만 시민 단체로써의 성격이 강하며,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퇴진시켰던 민주화 운동의 주역으로 활약한 데 이어 현 군부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도 주도하고 있다.

군부 정권은 이번 축구장 난동이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프로축구리그를 무기한 중단시키고 UTS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이에 UTS는 조직적인 운동으로 무장 경찰에 강력 대응하며 시위를 전개하고 있는 양상이다.

세계 축구팬들은 이집트의 소요 사태를 지켜보며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강호였던 이집트 축구의 몰락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집트는 현재 적도 기니와 가봉에서 열리고 있는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도 일찌감치 예선탈락하며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 2006년, 2008년, 그리고 지난 2010년 대회까지 세 번 연속으로 네이션스컵 정상에 올랐던 이집트였기에 이변의 충격은 더했다.

'뮌헨 참사'의 아픔을 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 정상으로 이끈 맷 버스비 경. 그가 지금의 이집트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뮌헨 참사'의 아픔을 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유럽 정상으로 이끈 맷 버스비 경. 그가 지금의 이집트에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대표팀의 부진에 이어 국내 프로리그까지 무기한 중단된 상황에, 이집트 축구가 언제쯤 다시 일어설 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게 됐다. 이와 같은 이집트의 현 상황에, 비극의 눈물을 기적적인 웃음으로 뒤바꾼 맨체스터의 기적은 모종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뮌헨 참사 당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회장이었던 해럴드 하드만은,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회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다시 일어날 것이다(United will rise again.)"

뮌헨 참사 54주기를 맞이하여, 축구가 평화의 매개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축구팬들의 염원이 이집트로 향하고 있다.

"Egypt will rise ag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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