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2차 1번입니까."
지금은 KBO리그를 대표했던 2루수로 기억되는 정근우(44) TVING 해설위원에게도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정근우 위원은 부산고 시절 팀의 주장으로 두 차례 전국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키 172㎝로 체구가 작았던 탓에 고교 졸업 당시에는 프로 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했다.
야구를 포기할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정근우 위원은 고려대 진학을 택했고 다시 4년을 달렸다. 그리고 2004년 시행된 2005 KBO 신인드래프트에서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의 2차 1라운드 전체 7순위 지명을 받았다.
그날의 기억은 22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당시 정 위원은 고려대 4학년 선수로 이천에서 두산 베어스와 연습경기를 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선수들은 드래프트 현장에 가지 않고 결과를 나중에 들었다.
정 위원은 "원래 경기가 있을 땐 휴대전화를 버스에서 가지고 내리면 안됐다. 하지만 그날은 드래프트 지명이 걸려 있으니 너무 궁금했다. 오후 1시쯤 발표됐던 것 같은데, 갑자기 휴대전화 진동이 계속 울렸다. 'SK 지명 축하한다'는 연락이 쏟아졌는데, 정확히 몇 번째로 뽑혔는지는 알 수 없었다"고 떠올렸다.
그때 결과를 알려준 것이 이종도(74) 당시 고려대 감독과 박철홍(56) 고려대 투수코치였다. 정 위원은 "그때 박철홍 코치님께서 '축하한다. SK 2차 1번이다'라고 하시길래 '거짓말 마십시오. 제가 어떻게 2차 1번입니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이종도 감독님께 직접 확인하라고 하셨고 그때서야 알았다. 그 말을 듣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웃었다.

단순히 프로 지명을 받았다는 기쁨만은 아니었다. 고교 졸업 당시 한 차례 좌절한 뒤 다시 4년을 버텨온 시간이 함께 떠올랐다. 정 위원은 "고등학교 때는 당연히 지명받을 줄 알고 있었는데 실패했다. 대학에서도 '이번에도 이렇게 흘러가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다행히 지명을 받고 나니 그동안 4년 동안 노력했던 것들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야구를 준비했던 것이 생각났다. 프로 하나만 바라보고 버텨온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을 버텨준 나 자신에게 너무 감사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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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의 선택은 정 위원뿐 아니라 한국 야구의 미래를 바꿨다. 정 위원은 SK에서 2007·2008·2010년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고, 리그 정상급 2루수를 넘어 국가대표 주전으로 성장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 WBC 준우승, 2015 프리미어12 우승을 함께했고 KBO리그에서는 통산 1747경기 타율 0.302, 1877안타, 121홈런, 371도루를 남겼다. 2루수 골든글러브도 세 차례 품었다.
고교 졸업 당시 자신을 선택하지 않았던 프로 무대에서 결국 KBO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선정될 정도의 선수로 올라섰다. 그래서 정 위원은 지금 프로의 선택을 기다리는 어린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리고 이제 막 프로에 발을 디딘 어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정 위원은 "스포츠는 이기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겨야 팬들도 열광한다"라며 "예전에는 상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 1년 동안 무엇을 준비하고 어떤 작전을 세울지를 많이 생각했다. 선수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맞춰 더 노력해야 한다. 포지션마다 빈틈 없는 팀이 만들어져야 상대가 쉽게 들어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뛰었던 시절의 '끈끈함'과 '헝그리 정신'도 떠올렸다. 그는 "물론 '그땐 그랬지'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포츠라는 본질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혔다.
정 위원에게 '헝그리 정신'은 단순히 과거 선수들이 더 힘들게 야구했다는 의미만은 아니었다. 프로의 선택을 한 차례 받지 못하고도 4년을 더 준비했던 자신처럼, 당장 자리가 보이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찾아 준비하고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에 가까웠다.
한 번 선택받지 못했다고 끝은 아니다. 정 위원은 4년 뒤 1라운드 지명을 받았고, 한국을 대표하는 2루수가 됐다. 그래서 지금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한 어린 선수들에게 정 위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메시지가 된다.
44세의 정 위원에게 고교 졸업 후 프로의 선택을 받지 못했던 자신을 다시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정 위원은 "키가 작다고 지명을 못 받았고 정말 야구를 포기하려고 했던 정근우였다. 그래도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대학을 선택하고 그 시절을 잘 버텨준 나 자신에게 너무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다시 돌아가도 마음 아프고 힘든 시간이겠지만, 야구를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달려갈 것 같다. 그런 너의 모습을 칭찬해주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