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남자 양궁의 세대교체는 맏형이 내려오고 막내가 그 자리를 물려받는 방식이 아니다. 34세 김우진(청주시청)이 여전히 세계 최정상에서 버티는 사이 이우석(29·코오롱)은 완성형 궁사로 성장했고, 막내 김제덕(22·예천군청)은 어느덧 선발전에서 맏형을 넘어설 만큼 치고 올라왔다. 세 사람이 서로를 밀어내야 태극마크를 달 수 있으면서도 국제무대에서는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가 됐다.
김우진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양궁의 간판이다. 올림픽에서만 금메달 5개를 따냈고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남자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 단체전을 모두 석권하며 3관왕에 올랐다.
그러면서도 해마다 다시 국내 선발전을 통과해야 했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줄곧 평가전 정상에 섰던 김우진에게 올해 작은 변화가 생겼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최종 평가전에서 김제덕이 종합 1위를 차지하며 가장 먼저 출전권을 거머쥔 것이다.
김우진은 오히려 반겼다. 최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만난 김우진은 김제덕을 두고 "거의 5년 넘게 성장하는 과정을 계속 지켜봤다. 옆에서 피드백도 해주고 좋은 조언도 많이 해줬다"며 "(김)제덕이는 지금보다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배의 덕담에서 끝나지 않았다. 김우진은 "선수들이 잘해주는 만큼 나도 보람이 있지만, 나 역시 이 선수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더 노력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서로 윈윈(WIN-WIN)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대표 선발전에서는 그 관계가 더욱 적나라해진다. 최근 김제덕과 맞붙던 김우진이 "너도 징하다"고 말하는 모습이 중계 화면에 잡혀 화제가 됐다. 김우진은 당시를 떠올리며 "선발전에서 워낙 자주 만나는데 나만 만나면 또 잘 쏜다. 내가 편한가 보다. 그래서 '너도 참 징하다'고 했다"고 떠올리며 웃었다.
2020 도쿄 올림픽 당시만 해도 김제덕은 패기 넘치는 10대 막내였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그 사이 도쿄 올림픽 2관왕, 파리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세계선수권 단체전 금메달 3개 수확 등으로 차세대 에이스로 성장했다. 올해는 급기야 국내 평가전에서 형들을 제치고 종합 1위를 차지했고, 국제무대에서도 개인전 메달을 수확하며 더 이상 '유망주'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는 선수로 성장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이우석이 있다. 이우석 역시 파리 올림픽에서 남자 단체전 금메달과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올해 안탈리아 월드컵에서는 개인전 결승까지 오르며 은메달을 따냈다. 김우진의 뒤를 잇는 세대라기보다 이미 자기 시대를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궁사다. 김우진도 "이우석 선수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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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석과 김제덕 역시 맏형을 어려워하기보다 함께 경쟁하는 동료로 받아들인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면서는 김우진이 던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도전하는 사람이 되자"는 말을 함께 공유했고, 세 선수는 상대국보다 "우리 것만 하자"는 말에 뜻을 모았다.


내부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하다. 아시안게임 개인전에는 세 사람 가운데 예선 성적 상위 2명만 출전할 수 있다. 세계 최강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개인전을 밖에서 지켜봐야 한다. 김제덕은 "어떤 선수가 뛰든 최상의 결과가 나올 것이고 그렇게 준비하고 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맏형은 언제까지 후배들과 이 경쟁을 이어갈까. 김우진은 은퇴 시기를 묻자 "그건 모른다. 그냥 열어놓고 가고 있다"며 "내가 경쟁에서 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한은 계속할 것 같다"라면서도 "여기 있는 두 선수가 나를 뽑아내면 어쩔 수 없다"라며 옆에 있는 두 후배를 향해 웃었다.
막내는 어느새 맏형을 넘어 선발전 1위에 올랐고, 중간 세대는 세계 정상급 경쟁력을 갖췄다. 그런데 정작 맏형도 아직 내려갈 생각이 없다. 김우진은 "이 두 선수를 포함해서 다른 좋은 선수들이 나를 뽑아내지 못하면 나는 계속 뿌리를 내리고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것"이라고 후배들 못지않은 열의를 보였다.
누군가 자리를 비워줘야 이뤄지는 세대교체가 아니다. 후배들이 선배를 끌어내리기 위해 강해지고, 선배는 그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다시 강해진다. 오랜 시간 한국 양궁이 세계 최정상급 기량을 유지하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