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년의 기다림이 끝났다. 정규시즌 2위 삼성 라이온즈가 정규시즌 1위 KT 위즈를 꺾고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 개장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KS) 정상에 올랐다. 박진만(50) 감독은 지도자로서 첫 우승을, 강민호(41)와 구자욱(33)은 오랜 기다림 끝에 선수로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의 기쁨을 맛봤다.
삼성은 8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6 신한 SOL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7전 4선승제) 5차전에서 KT를 12-1로 대파하고 우승을 차지했다. 3-1로 앞선 5회말 KT 내야진의 연쇄 실책을 놓치지 않고 무려 8점을 뽑아낸 것이 결정적이었다.
2011~2014년 통합 4연패 이후 12년 만의 우승이자 구단 통산 9번째 정상이다. 1985년에는 전·후기리그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던 만큼, 한국시리즈를 치르고 거둔 우승은 8번째다.
정규시즌 2위 팀이 1위 팀을 꺾은 업셋 우승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8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가 정규시즌 1위 두산 베어스를 4승 2패로 제압한 것이었다. 삼성은 8년 만에 정규시즌 1위 팀의 우승을 저지한 구단이 됐다.
1989년 단일시즌제 도입 이후 1999~2000년 양대리그를 제외하면 정규시즌 2위 팀이 1위 팀을 꺾고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것은 1989년 해태 타이거즈와 2018년 SK에 이어 역대 3번째다.

박진만 감독에게도 뜻깊은 우승이다. 현역 시절 2006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비롯해 6개의 우승 반지를 손에 끼웠던 박 감독은 사령탑으로서도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박 감독은 이강철(60) KT 감독과 함께 한국시리즈 MVP 출신 우승 감독이라는 진기록도 남겼다. 이 감독은 1996년 해태 소속으로 한국시리즈 MVP를 차지한 뒤 2021년 KT를 이끌고 감독으로서도 우승했다.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이기도 하다. 삼성은 2015년 한국시리즈를 준우승으로 마무리한 뒤 2016년 새로운 홈구장인 라이온즈파크로 이사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새 구장 개장과 함께 암흑기가 시작됐다. 2016년 9위, 2017년 9위, 2018년 6위, 2019년 8위, 2020년 8위로 하위권에 머물렀다. 2021년 3위로 잠시 흑역사를 멈췄으나, 2022년 7위와 2023년 8위로 다시 추락했다.
그러나 2022년 입단한 어린 선수들이 차츰 자리를 잡은 2024년부터 달라졌다. 202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했고, 지난해에도 정규시즌 4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올해는 정규시즌 83승 3무 58패로 2위에 오른 뒤 KIA 타이거즈와 플레이오프를 3승 2패로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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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에서는 1차전 7-8 패배로 출발했지만, 2차전 3-2, 3차전 5-1, 4차전 10-5 승리로 기세를 뒤집었다. 결국 5차전까지 12-1 대승을 거두면서 1차전 패배 후 4연승으로 12년 만의 우승을 완성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한국시리즈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본 선수도 많다. 대표적인 선수가 맏형 강민호와 캡틴 구자욱이다. 강민호는 포철공고를 졸업하고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해 데뷔 23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2018년 삼성으로 이적한 뒤에도 한동안 한국시리즈와 인연이 없었다. 2024년 생애 처음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지만 준우승에 그쳤고, 재도전 끝에 마침내 정상에 섰다.

구자욱도 만만치 않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2012년 삼성에 입단한 구자욱은 첫 1군 풀타임 시즌이었던 2015년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다. 하지만 당시 준우승에 그쳤고, 2024년에도 정상 문턱에서 좌절했다. 2026년 세 번째 한국시리즈 도전에서 마침내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반면 정규시즌 1위 KT는 업셋 우승을 허용했다는 불명예를 안고 시즌을 마무리했다. 1989년 이후 단일시즌 체제에서 정규시즌 1위 팀이 한국시리즈 우승에 실패한 것은 양대리그 시기를 제외하고 36차례 중 6차례로 늘었다. 비율은 16.7%다.
약 3주의 휴식에도 주전 야수들의 부상이 속출했고, 데이비스 대니엘과 고영표, 마무리 박영현을 제외한 마운드가 좀처럼 안정감을 찾지 못한 것이 뼈아팠다. 2021년 이후 5년 만의 통합우승 도전도 무산됐다. 데뷔 23년 만에 처음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라 우승을 노렸던 베테랑 우규민(41)의 도전도 아쉽게 끝났다.
한편 이날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는 2만 3550명의 만원 관중이 몰리면서 포스트시즌 51경기 연속 매진 기록이 쓰였다. 2023년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시작된 기록으로, 한국시리즈만 따지면 2022년 1차전부터 26경기 연속 매진이다. 올해 포스트시즌에서는 와일드카드 결정전부터 14경기 연속 매진으로 누적 관중은 29만 9600명이 됐다.
이날 삼성은 김지찬(중견수)-박승규(우익수)-구자욱(지명타자)-르윈 디아즈(1루수)-최형우(좌익수)-김영웅(3루수)-이재현(유격수)-류지혁(2루수)-강민호(포수)로 타선을 꾸렸다. 선발투수는 원태인(26)이었다.
이에 맞선 KT는 최원준(지명타자)-장진혁(우익수)-김현수(1루수)-샘 힐리어드(중견수)-김민혁(좌익수)-류현인(2루수)-허경민(3루수)-한승택(포수)-권동진(유격수)으로 타선을 구성했다. 선발투수는 대니엘(29)이었다.

선제점은 이날도 원정팀 KT의 몫이었다. 3회초 선두타자 한승택의 타구를 유격수 이재현이 잡지 못해 좌전 안타가 됐다. 권동진이 좌전 안타, 최원준이 희생번트로 2, 3루를 만들었고 장진혁이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선취점을 뽑았다.
홈팀 삼성도 곧바로 반격에 나섰다. 3회말 1사에서 김지찬이 스트레이트 볼넷으로 출루했고 구자욱의 우익선상 1타점 적시 2루타로 1-1 균형이 맞춰졌다. 뒤이어 디아즈가 우측 폴대 근처 담장을 맞히는 대형 타구로 구자욱마저 홈으로 불러들였다. 삼성의 2-1 역전이었다. 최형우가 우전 안타로 흐름을 이어갔고 김영웅이 유격수 키를 넘기는 중전 1타점 적시타를 터뜨리면서 삼성이 3-1로 달아났다.
KT는 좀처럼 따라붙지 못했다. 5회초 1사에서 권동진이 중전 안타, 최원준이 볼넷으로 나갔으나, 장진혁이 헛스윙 삼진, 김현수가 2루 땅볼로 물러나 점수를 추가하지 못했다. 그러자 삼성은 5회말 빅이닝으로 사실상 우승을 확정했다. 시작은 실책 하나였다. 선두타자 박승규의 땅볼 타구를 유격수 권동진이 앞으로 달려오며 포구하려다 실패했다. 구자욱이 우전 안타를 쳤고 디아즈가 내야 뜬공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최형우가 우전 1타점 적시타로 치고 나갔고, 김영웅의 타구를 2루수 류현인이 잡지 못하면서 점수가 5-1로 벌어졌다. 삼성은 한 번 잡은 고삐를 놓지 않았다. 최형우 대신 대주자로 들어온 김성윤은 이재현의 좌익선상 1타점 적시 2루타 때 홈을 밟았다.
류지혁이 자동고의4구로 나가 모든 베이스를 다시 채웠고 강민호가 땅볼 타구를 쳤다. 하지만 또다시 2루수 류현인이 병살을 처리하려 2루로 송구한 것이 제대로 향하지 못하면서 주자 2명이 홈을 밟았다. 뒤이어 김지찬이 우중간 외야를 가르는 2타점 적시 3루타를 치면서 삼성은 11-1로 크게 앞서갔다. 이후 한 점을 더 추가하며 점수 차를 12-1까지 벌렸다.
한 이닝 8득점은 한국시리즈 역사를 돌아봐도 보기 힘든 기록이었다. 역대 한국시리즈 한 이닝 최다 득점은 12점이다. 2001년 10월 25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두산이 삼성에 3회말에만 12점을 뽑았다.
당시 같은 경기에서 삼성도 2회초 8점을 올렸다. 2004년 11월 1일 한국시리즈 9차전에서는 현대 유니콘스가 삼성에 2회초 8점을 뽑았다. 이번에는 삼성이 KT를 상대로 한 이닝 8득점이라는 역대 공동 2위 기록을 작성했다.
마운드에서는 원태인과 크리스 페덱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합작했다. 삼성은 이날 선발 원태인이 5이닝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자 6회부터 2차전 선발이었던 페덱을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페덱은 6회부터 9회까지 남은 4이닝 동안 단 한 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고 삼진 4개를 솎아내는 퍼펙트 피칭으로 경기를 끝냈다. 원태인과 페덱이 KT 타선을 합계 4피안타 1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삼성의 12년 만의 우승을 완성했다.
원태인은 승리투수가 되는 동시에 한국시리즈 5차전 데일리 MVP에 선정돼 상금 100만원을 받았다. 지난 4일 2차전에서 구원 등판해 1⅔이닝을 던졌던 원태인은 사흘 휴식 후 선발로 복귀해 우승을 확정하는 승리를 따냈다.
타선에서는 구자욱이 5타수 3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김영웅은 5타수 4안타 3타점, 최형우는 3타수 2안타 1타점, 박승규는 4타수 2안타 2득점으로 힘을 보탰다. 결승타를 친 디아즈는 '포테토칩 선정 오늘의 타격감 상'을 수상해 상금 100만원과 포테토칩 5박스를 받았다.
한국시리즈 MVP의 영예는 캡틴 구자욱에게 돌아갔다. 구자욱은 이번 한국시리즈 5경기에서 타율 0.500(20타수 10안타), 1홈런 6타점 5득점으로 맹활약했다. 기자단 투표 97표 가운데 72표를 얻어 득표율 74.2%로 MVP에 선정됐다.
박승규가 19표로 뒤를 이었고, 원태인과 이승민이 각각 2표, 강민호와 후라도가 각각 1표를 받았다. 구자욱에게는 MVP 트로피와 함께 기아 EV4 차량이 부상으로 주어졌다.
반면 KT는 선발 대니엘이 3이닝 5피안타 2볼넷 4탈삼진 3실점으로 일찌감치 무너졌다. 1차전 승리투수를 다시 내세워 마지막 반격을 노렸지만 이번에는 삼성 타선을 막지 못했다.
뒤이어 2차전 선발 고영표까지 구원 등판하는 총력전을 펼쳤으나 1⅓이닝 5피안타 1볼넷 1탈삼진 8실점(2자책점)으로 무너졌다. 수비 실책까지 연달아 나오면서 경기를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정규시즌 90승을 거두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던 KT는 5차전에서도 단 4안타에 그치며 시리즈 전적 1승 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