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히딩크 큰일났네

[광화문] 히딩크 큰일났네

홍선근 부국장
2002.06.17 12:42

[광화문] 히딩크 큰일났네

그러니까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기던 날, 밤 11시가 넘은 시각에 40대 후반의 아주머니 2명은 아직 거리에 있었다. 맥주 집에서 경기를 관람한 듯 걸음걸이가 흔들렸다. “이젠 집에 가야지”하는 말에 “이 마당에 무슨, 벌써 집이야”라는 말이 오갔다. 그들은 인파에 섞였다.

축구 응원열풍이 출발의 소박성에 비해서는 점차 광적인 색채를 얹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에만 한정된 열기도 아니고 특정 지역에만 나타나는 현상도 아니다. 저 에너지 분출의 끝은 어디일까를 벌써 생각하게 된다. 다시 일상으로의 복귀, 종전으로의 회귀일까. 아니면 이미 달라진 세상에 와 있는 우리를 발견하게 될까.

최근의 월드컵 일화와 유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히딩크의 운명’이다. 16강에 탈락하면 냄비언론의 히딩크 죽이기, 16강에 들면 귀화설 속에 네덜란드로의 금의환향, 8강이면 강제 귀화조치, 4강이면 ‘정몽준’과 함께 축구당을 만든 후의 정계진출 등. 그 다음은 생략. 8강에 들면 집에도 못 돌아갈 처지니 히딩크감독으로선 정말 큰일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도 최근의 한국 스케치 기사에서 히딩크를 위해 한국의 국적법과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 이대로 가면 대선에 나와도 당선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할 정도이다.

외국인 감독이라서 가능했을 것이다. 한국인 감독이라면 어려웠을 것이다. 왜 외국인 감독 히딩크만이 이 열풍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대표선수 23명의 출신학교를 따져 보면 특별하게 치우친 데가 없다. 14군데 학교가 등장한다. 강릉상고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동아대 명지대 부평고 소년의집 숭실대 아주대 연세대 인천대 한양대. 명문이고 나발이고 학연을 확실하게 뿌리친 모습이다. 같은 인연에 묶여 있는 국내 감독이 빠져 있는 함정에서 히딩크는 비껴날 수 있었다, 쉽진 않았지만.

실력이란 또 무엇인가. 그릇에 담긴 물처럼 한 인간에게 담긴 정적인 능력인가. 선수선발 과정을 보면 그는 실력중에서 열심히 뛰는 열정을 최고로 쳤다. 잘난 척 하고 거들먹거리는 재주보다야 공만 바라보고 죽도록 뛰는 열정이 척도였다(옛날엔 공이 아니라 감독을 바라보고 뛰었다는 유머도 있다). 그것은 흘러가는 물과 같아서 그릇에 담겨 머무는 순간 이미 열정이 아니라 자만으로 변한다.

이는 사람을 정지된 자산(Stock)이 아니라 동태적 흐름(Flow)으로 평가한 것이다. 국내의 기업, 정치 조직 중에서 이런 곳은 매우 드물다. 우리의 한계이자 허점이다. 축구를 보면서 할일이 많다거나 자기 한계를 느끼는 기업인 정치인이 많아야 한다. 인연과 자산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변화는 없다. 외국인이라도 수입하는 게 낫다. 정치인 수입 OK다.

88올림픽이 한국을 바꿨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첫 단추였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도 크게 바꿨다. 시련의 두번째 단추였다. 월드컵을 처음엔 만만하게 봤는데 세 번째 단추가 이미 됐다고 본다. 그 아주머니들도 변화의 좋은 혜택을 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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