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미국의 ‘신뢰위기‘
요즘 경제든 금융시장이든 그 향배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기 쉽지 않다. 특별히 위기상황이라고 할만한 요소가 눈에 띄지 않는데도 경제국면이 실타래처럼 풀기 힘든 매듭처럼 느껴지는 적도 드문 것 같다. 지난해 9.11테러 직후처럼 누가봐도 위기상황임이 분명한 시기에서는 오히려 앞날을 전망하기 쉽다. 그 영향이 어디서 어디로 파급될 것인지 뚜렷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통적인 경제적 상관관계가 깨어진 듯 대부분의 경제지표가 뒤죽박죽이다. 세계경제가 바닥을 치고 회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하는데도 미국 뉴욕시장을 비롯, 전세계 주가는 상승탄력을 받지 못하고 내리막길을 향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이 불안하면 안전자산으로서 미달러화표시 고정금리자산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 달러화가 강세로 갔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미달러화 약세는 미국이 세계경기 회복을 위해 희생하던 채널 하나를 포기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세계경기의 회복에 찬물을 끼얹는 요인이 아닐 수 없다.
지금의 어지러운 상황은 미국의 ‘신뢰위기(confidence crisis)’로부터 비롯되는 현상이다. 90년대 후반 정보통신(IT)버블기에 미국기업들이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했던 죄에 대한 벌은 웬만큼 받았다고 판단되나 분식회계 등 잘못된 관행에 대한 벌은 충분히 받지 못했다. 올초부터 엔론에서 최근의 월드컴에 이르기까지 증시의 ‘더러운 폭탄(dirty bomb)'이라고 할 회계스캔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은 IT버블기에 미국기업들이 저지른 관행에 대한 응징에 불과하다.
회계는 기업을 담는 그릇이다. 그것이 틀렸다고 판단되면 기업에 대한 가치평가를 처음부터 다시해야한다. 종전 기업실적에서 거품을 빼고 기업가치를 다시 계산하면 미국기업의 주가가 크게 고평가된 것으로 나타나 주가가 추가로 하락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S&P500지수의 경우 전통적인 회계잣대를 들이대면 주가수익비율(PER)가 현재 20정도로 거의 역사적 평균치에 접근해있지만 스톡옵션 등을 비용을 처리하여 다시 PER를 계산하면 40까지 올라간다.
게다가 지난해 9.11테러 이후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추가 테러위협은 안전자산으로서의 미달러화의 자산의 메리트를 더욱 떨어뜨리고 있다. 미달러화 금융자산에 보안문제라는 위험 프리미엄이 붙어 국제투자자들이 미국을 버리고 유럽이나 아시아같은 다른 투자처를 찾아나서게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달러약세도 이 과정에서 산출된 것이다.
희망적인 것은 미국주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의 소비심리가 기대이상으로 잘 버텨내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시장의 불안이 글로벌 리세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아져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신뢰위기 자체는 ‘미국의 이벤트’이지 ‘글로벌 이벤트’가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뉴욕주가 하락의 위력이 크지않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 증시가 형편없이 저평가돼 있는 만큼 미국의 영향권을 어느정도 벗어나는 디커플링의 희망은 분명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