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옥에서 만납시다

[광화문]지옥에서 만납시다

박종인 기자
2002.07.08 12:37

[광화문]지옥에서 만납시다

"머니투데이가 창간 한돌을 맞아 '지옥에서 만난 경제학자들'이란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 존 M 케인스 등 지옥에 있을지 모르는 '죽은 경제학자'들을 기자들이 직접 찾아가 만납니다. 그들이 아직도 생전의 견해를 유지하고 있는지, 사후에도 여전히 그런 문제들 때문에 계속 논쟁을 벌이고 있는지 등등 독자들의 궁금증을 시원스레 파헤쳐 생생하게 전해 드리겠습니다. 만에 하나 이들이 지옥에 없다면(글쎄 천당에 있을까) 그 이유도 취재하겠습니다. 모쪼록 많은 격려와 성원 부탁드립니다."

 어느 신문사나 마찬가지겠지만 머니투데이에서도 창간을 앞두고 기획취재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나는 판에 박힌 기획물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옥에서 만난 경제학자들'이란 창간기획을 생각해 냈다.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토드 부크홀츠 지음, 김영사 1994년 펴냄)란 책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다. 아이디어를 제출할 때 '10명 이상을 인터뷰한 뒤 책으로도 묶을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는 단서도 달 생각이었다. 그래야 채택될 확률이 더 높아질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 아이디어를 제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강호병 기획부장과 기획부 기자들을 미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대목은 좀 설명이 필요할 듯 한데, 사정은 이렇다. 만약 내가 이 아이디어를 냈다고 치자. 그러면 당연히 편집회의에서 채택될 것이다. 왜냐하면 신문이 좋아하는 몇 가지 요소들을 빼놓지 않고 갖추고 있으니까. 예컨대 선정성과 계몽주의, 적당한 지식욕, 거기에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재미까지.

 다음은 누가 쓸 것인지를 논의한다. 아이디어를 낸 쪽에서 맡는게 원칙이지만 나는 처지가 좀 다르다. 온라인총괄데스크를 맡고 있는데, 부원이 없다. 기사를 쓸 손과 발이 없다는 얘기. 그럼 경제부와 기획부 등이 대상이 될 터인데 아무래도 기획부로 낙찰될 공산이 크다. 어느 신문사나 경제부는 늘 바쁘니까.

 상황이 여기까지 몰리면 기획부에서 "지옥에 가려면 어디서 어떤 차를 타야 하고, 돌아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의 반대의견을 내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칫 "해보지도 않고 못한다고 뻗는다"는 호통만 듣기 십상이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터라 나는 한국 언론역사에(아니 세계 언론사에) 길이길이 남을 희대의 기획취재 하나를 아이디어 단계에서 접어야 했다.

 그런데 혹, 이 글을 읽고 '역시 신문사는 어쩔 수 없어'라고 남의 일처럼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내가 제안한 말도 안되는 사업계획이 내 동료를 죽인 적은 없는지, 또는 남이 낸 아이디어의 함정에 걸려 지금 지옥행 열차를 기다리는 딱한 처지는 아닌지.

 머리만 잘 쓰면 이처럼 상대방을 도와주는 척 하면서 그가 제 발로 지옥행 열차를 타도록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시간이 문제일뿐 대개의 경우 지옥에서 만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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