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美 회계스캔들의 본질

[광화문]美 회계스캔들의 본질

강호병 이코노미스트
2002.07.11 16:36

[광화문] 美 회계스캔들의 본질

엔론, 제록스, 타이코, 월드컴, GE, 머크.... 올들어 미국기업의 회계부정 스캔들이 도미노처럼 터지고 있다. 스캔들의 내용은 한결같이 매출은 부풀리고 비용은 줄여 이익을 크게 낸 것처럼 장부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미국 2위의 장거리전화회사로 MCI를 인수했던 월드컴은 비용으로 지출된 것을 설비투자를 한 것처럼 만들어 비용을 적게 계상했고, 세계최대의 복사기 제조업체인 제록스는 미래 매출을 현재의 매출로 당겨 계상, 매출을 부풀렸다.

그러나 한가지 이상스러운 것은 회계스캔들에 연루된 기업들이 “장부를 조작한 것이 아니며 법을 위반한 것도 없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기업들이 닭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것만은 아니다.

지난 3년간 무려 124억달러의 매출을 부풀렸다고 해서 문제가 된 머크의 경우 “제약업체의 회계관행을 이해하지 못한 오해일 뿐 가공, 허위매출이 아니며, 일반회계기준(GAAP)를 위반한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의약소비자가 처방전에 따라 약국에서 약을 살 때 지불하는 돈은 바로 제약회사로 들어가지 않고 소비자분담금 펀드에 들어갔다가 제약회사로 귀속된다. 소비자분담금을 수령, 머크 본사에 넘겨주는 회사가 메드코라는 자회사인데 이 회사가 3년간 지급받지 못한 소비자분담금 124억달러를 매출이 발생한 것으로 계상했다는 것이 머크 스캔들의 골자다. 그러나 이는 우리나라로 치면 외상매출을 계상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매출을 발생시점으로 인식하느냐, 현금유입시점에서 잡느냐하는 관행의 문제일 뿐이나 경쟁사가 소비자분담금을 지급받을 때 매출로 잡는 것과 달랐다고 해서 의혹이 생겼다.

이번 회계스캔들 중에서 가장 악명높은 엔론도 명시적으로 불법을 저질렀다기 보다 펀더멘탈을 잘 반영하는 믿을만한 회계를 하지않았다는 것이 더 문제다. 엔론이 어떤 공장이나 시설이 필요하면 특수목적회사(SPV)라는 종속계열사를 만들어 엔론 본사가 낮은 비용으로 독점이용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종속회사는 막대한 시설비와 금융비용으로 막대한 손실을 봤지만 연결재무제표를 만들지 않고 모회사와 자회사간의 설명을 누락시켜 엔론 본사만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으로 현혹했다. 그 덕택에 엔론 주식값이 크게 오르고 경영진은 막대한 성과급과 스톡옵션을 받아챙겨 10년간 잘먹고 잘산 것은 물론이다.

이렇게 보면 이번 미국회계부정의 스캔들의 본질은 불법적으로 장부를 마구조작했다기 보다 `경제적으로 믿지 못할'회계, 곧 기업들이 회계상의 구멍을 교묘히 악용하여 ‘경제적 실체’에 부합되지 않는 회계를 해서 기업의 참된 가치를 잘못 평가하도록 만든 데 있다. 법규정이 없어도 가치평가를 위해 보여주고 말해줘야 하는 것을 안한 것이다. 이런 관행은 오래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사안이지만 정보통신 버블 붕괴후 기업을 대하는 투자자들의 태도가 강경해지면서 이곳저곳에서 파열음이 생기고 있는 것뿐이다.

투명한 회계란 경제적 실체에 맞는 정직한 회계이지 회계기준을 잘 준수한 회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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