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하나은행의 `空言`
하나은행은 은행권에서 가장 시장지향적인 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지난주 잇따라 이같은 평가를 무색케 하는 사건을 터뜨렸다.
지난 18일 오전 생명보험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다가 밤늦게 이를 연기한다고 번복했다. 21일에는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그동안 호언장담했던 4300억원에 무려 1000억원이나 미달했다고 발표했다.
거대한 은행을 경영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시장과 약속을 어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과정을 살펴보면 하나은행이 과연 시장지향적인 기업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먼저 하나은행이 생보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했던 18일 오전에는 합작파트너인 알리안츠그룹과 아직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이었다. 특히 생보사 설립 이후 은행과 보험사간 수수료 배분이라는 가장 민감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시장에 생보사 설립을 선언함으로써 서로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마지노선을 그어놓고 협상에 임한 것이다. 결국 ‘시장과의 약속’을 담보로 협상을 벌인 셈이었고 하나은행은 시장을 속이고 말았다.
지난해 실적도 마찬가지다. 김승유 하나은행장은 4300억원의 순이익을 낼 수 있다고 장담했었다. 이 발언이 나온 것은 지난해 회기마감이 한달도 채남지 않은 12월초에 열렸던 기자간담회장 자리였다. 그러나 정작 지난해 실적은 3236억원 정도에 그쳤다. 불과 한달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시장에 공언(空言)을 한 셈이다.
하지만 하나은행은 이처럼 시장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왜 생보사 설립이 연기됐는지 쉬쉬했다. 또 서울은행과의 합병비용, 출자전환주식 평가손을 모두 반영함으로써 당기순이익이 예상치에 못미쳤을뿐 이를 제외할 경우 목표치를 초과달성한 셈이라고 강변했다.
하나은행처럼 지난해 실적이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이사회로부터 ‘미’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김승유 행장은 이사회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