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의날]전화교환기 역사
제 1 장 전화 교환기의 역사
제 1 절 전화(電話 : Telephone)의 변천
1876년 벨이 전화기를 발명한 후 전화는 이제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벨(A.G.Bell)에 의해 발명된 전화는 복잡한 기호의 조합에 의해서만 소통이 가능했던 모스전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일반대중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전기통신의 새 지평을 열었습니다.
벨이 발명할 당시 1:1 통신에 불과했던 전화는 신소재의 개발, 교환기술의 발달, 호출방식의 변화, 컴퓨터와의 결합 등을 거치면서 근대 기계문명의 발달과 그 괘를 같이 하며 급격히 성장하여 오늘날에는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사회요소가 되었습니다.
초기의 전화기는 교환수를 불러 내기 위한 벨을 울리는 작은 발전기와 상대방과 이야기를 하기 위한 전지로 구성되어 있는 자석식 전화기로, 손으로 자석발전기를 돌려 교환원을 불러 상대방을 호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 후 1877년 에디슨(T.E.Edison)에 의해 탄소송화기가 발명되고, 유도 코일이 이용되면서 통화거리가 연장되었으며, 같은 해 훅 스위치의 발명에 이어 1880년에는 수화기만 들면 곧바로 교환원과 연결되는 공전식 전화기가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891년에는 스트로우져(A.B.STROWGER)에 의해 자동식 다이얼 전화기가 발명되기에 이릅니다.
우리나라에는 1882년 상운이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것이 최초로, 1896년 궁내부에 자석식 교환기가 설치되면서 최초로 전화통화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1902년 3월에 한성-인천간 전화가 개설되고, 한성 전화소에서 전화업무를 개시함으로써 비로소 일반인들도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1908년 공전식방식, 1935년 자동식(기계식)방식이 도입되는 등, 우리나라의 전화는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지만, 당시에는 여전히 일제의 행정용과 일부 특권층의 사치품으로만 사용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암울한 식민지시대 도입된 일제전화기와, 미군정기 도입된 미제 전화기들이 주종을 이루던 우리나라 전화기의 역사는, 1962년 체신 1호 시리즈가 개발되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됩니다.
자석식, 공전식, 자동식 3가지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체신1호 전화기들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최초의 국산 전화기로 그 의의가 매우 높습니다
1973년 체신1호를 개선한 체신70호 시리즈가 개발되면서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기의 기본을 이루게 되고, 드디어 1981년 국가에서 보급하던 전화기의 구입절차가 개인이 직접 구입하는 자급제로 바뀌면서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과 화려하고 개성화된 전화기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80년대 들어 전자식교환기가 개통되면서, 이제 전화기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기능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편리한 다기능의 정보통신기기로 탈바꿈했습니다
제 2 절 전화 교환기(電話 交換機 : Telephone Exchange)
2.1 개 요
전화 교환기는 다수의 가입자 장치들을 상호 연결시켜서 소기의 통신로들을 설정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이때 상호 연결을 경제적으로 해준다는 점이 교환의 주안점이 된다. 이것은 n개의 가입자들이 교환기 없이 상호 연결되려면 n(n-1)/2개의 전송로가 필요 하지만, 교환기가 있는 경우에는 n개의 전송로 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결기능이 교환기의 주 기능 이지만 교환기는 그 밖에도 통신망의 운용이나 가입자 서비스 등에 연관 된 기능들도 수행한다.
교환은 교환방식에 따라 수동식, 기계식, 전자식 등으로 분류된다.
교환기는 교환 회로망의 형태에 따라서 공간분할(Space Division) 교환기와 시분할(Time division) 교환기로 구분되고, 제어방식에 따라서 포선 논리제어(Wired-Logic Control)와 축적프로그램 제어(Stored Program control)로,
제어기능의 분산 정도에 따라서 집중제어 방식과 분산제어 방식으로 각각 구분 된다.
현재 사용되는 전자교환기들은 모두 축적프로그램 방식을 사용하며, 그 중 공간분할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반전자식 교환기, 시분할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디지털 교환기 또는 전전자식 교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근의 디지털 교환기들은 대부분 분산제어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2.2 수동식 교환기(手動式 交換機)
가. 자석식 교환기(磁石式 交換機)
한국에서 전화 교환이 처음 시작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1990년 초에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1896년 8월 23일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 날이 서울에서 인천까지 궁 내부 전용 전화가 개통된 날이라고 백범 김구 선생의 일지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교환기가 없는 단순 전화 회선인지 분명하지는 않지만 궁 내부 전용 전화가 궁 내뿐만 아니라 각 아문(亞門)에 연결되고 인천 감리까지 연결된 것으로 보아 교환기에 수용된 전화일 것이며, 만약 교환기가 사용되었다면 이때의 교환기는 자석식으로 추정된다.
전용이 아닌 일반 공중용 전화가 도입되어 가입 전화에 의한 교환이 이루어진 시기는 6년후인 1902년 3월 20일로써 지금부터 100여 년 전의 일이다.
1935년 3월 나진 우편국의 400회선 기계식 자동 교환기가 개통되고, 같은 해 10월에 서울 중앙 전화국에서 수동식 1000회선이 스트로우저식으로 교체되었고, 80년대 이르러 전자 교환 방식이 본격적으로 공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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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사용된 교환기(분전기라고 부름)는 자석식 100회선 단식 교환기와 20, 15, 10회선의 소형 벽걸이 형의 교환기 2종류였다. 일본에게 강탈 시 총 12대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림 1-1]의 자석식 100회선 단식 교환기는 80회선으로는 가입자를 수용하고 20회선은 중계용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다. 접속코드가 24개로 되어 있으며 외부회선과 내부 회선용으로 각각 12회선씩 사용하였다. 자석식 100회선 단식교환기의 제조 회사는 스웨덴의 '에릭슨' 제품이거나 일본이 수입하여 개량하여서 생산한 미국형 웨스턴 전기' 제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나. 공전식 교환기(共電式 交換機)
공전식 교환기의 도입은 통신 권이 일본의 손아귀에 강탈당한 후인 1907년 서울 중앙우편국(현 KT중앙지사 전신)에서 실시되었다. 가입자 수가 663명이 되어 자석 단식 교환기로는 교환 운용이 안되었기 때문에 복식 교환으로 방식을 변경하게 되었다. 복식 교환기는 자석식 직렬 복식과 공전식이 있는데 대한민국은 공전식을 채택했다. 그 당시 경성부 행정구역에는 용산분국(현 KT 용산지점)이 있었는데, 이 곳은 일본 군대의 주둔 지역으로 자석식 교환기를 여러 대를 설치하였고, 경성국과 15 회선의 시외 전화회선을 구성하여 시외통화를 운용하였다. [표1-1 참조]
그 다음에 공전식 교환기로 변경한 국은 경성 국의 용산분국과 광화문분국이고 네 번째가 전국의 네 개 분당우편국(경성, 부산, 평양, 원산)의 하나인 원산 국이었다. 용산분국은 광화문분국보다 큰 면적에 1921년 11월 공전식 교환기 4대 12석을 설치하였다. 광화문분국은 일본인 거주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1923년 6월에야 공전식으로 교환기를 설치하게 되었는데, 교환대는 5대 15 좌석이고, 경성 본국에 수용되었던 종로, 서대문의 가입자를 분산 수용하였다. 이로써 경성국은 복국지(複局地)가 되었으며, 교환대는 A대, B대로 2분화시켜 운용하였다가 A대는 자기 국 가입자 발신용, B대는 다른 국 가입자 착신용으로 운용하였다.
1924년에는 원산국, 1911년에는 부산국, 1920년에는 평양국을, 1936년에는 국경 도시 신의주국에 공전식 교환기 5대 15좌석을 개통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도 수동식 교환 방식이 본격화 되었다. 그 후 1945년 8월 15일 광복까지 공전식(共電式)으로 방식이 변경된 국은 없었다. 공전식이란 모든 가입자의 통화 전류를 전화국(현 KT지사 또는 지점)의 축전지에서 공급하는 공동 전지식을 말한다.
2.3 기계식 자동 교환기(機械式 自動 交換機)
가. 스트로우져(STrowger) 교환기
1935년 3월 나진우체국의 400회선 기계식 자동 교환기가 개통되고, 일제는 제 2차 전신전화확장 5개년 계획에 따라 같은 해 10월 1일에 현 서울중앙지사 (당시 경성우체국 소속)에서 공전식 6,000회선이 스트로우져식으로 대체되는 등, 기계식 자동전화가 개통되었으나 대한민국의 필요성 보다는 대륙 침략의 전초기지 구축이나 일본의 산업전략의 목적으로 설치하였다.(그림 1-6 참조)
기계식 자동 교환기는 공전식 교환기에 비교하여 가입자가 직접 자동교환기를 조작하여 착신가입자를 호출하여 통화를 하기 때문에 교환원이 필요 없고, 발/착신 가입자에게 공급하는 통화 전류가 직류 24볼트인 공전식에 비해 자동식은 48볼트로 공급되어 통화 품질이 좋았다. 또한 공전식 교환기의 가입자 수용 한도는 3,500회선인데 비해 자동식은 10,000회선을 수용할 수 있고, 그 이상은 국 번호를 따로 만들면서 계속 10,000회선씩 증설할 수 있었다.기계식 자동 교환기는 단단식(段段式) 원리에 따라 발신 가입자가 착신 가입자를 호출한다. 단단식 자동 교환기(ST)는 가입자 번호를 천, 백, 십 단위로 분리하여 가입자의 다이얼(Dial) 회전에 따라 통화선을 선택해 나가는 원리를 이용한 교환기였다.
1958년 후반기에 들어와서 ICA계획이 이월되어 계획 변경된 부산 국 등 15,000 회선의 대량 구매가 남아 있었으므로 체신부(현 정보통신부 전신)는 자동교환방식의 표준화라는 견지에서 향후 미국의 원조 혹은 대체계획에 의하여 구매하는 교환기는 15,000 회선에서 낙찰되는 방식에 따르기로 ICA측과 합의하였다.(1958년 11월 12일) 이 계획 사업명은 336-M이었고 15,000 회선의 내역은 부산 2 국 5,500회선, 부산 3 국 1,500회선, 대구국 5,000회선, 용산국 2,000회선, 춘천국 1,000 회선이었다. 1959년 3월 20일 336-M 계획에 대한 국제입찰에는 7 개 회사가 응찰을 하였는데 이중에서 응찰 가격이 가장 저렴한 일본 NEC의 스토로우져 방식이었지만 자유당 말기의 정부방침이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 시기였기 때문에 일본NEC를 배제하고 서독의 지멘스사의 EMD방식이 낙찰되었다. 따라서 지원 또는 차관 금으로 도입되는 자동교환기는 EMD방식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336-M 계획인 15,000 회선의 ICA지원계획의 자동교환시설이 EMD식으로 표준화되어 부산, 대구, 서울, 용산, 춘천의 기자재가 도입되면서 각각 개통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최초 EMD국인 용산국에 2,000 회선이 1960년 2월에 ICA자금 22만 달러로 자동교환시설이 도입되어 서독인 공사원 주관 하에 시공하여 1960년 9월 5일에 개통되었다. 용산분국은 6.25 사변으로 청사도 완전 소실되어 있어서 우선 462평 규모의 신 청사를 1959년에 건축하였다. 용산 국의 개국으로 수도 서울의 국번은 2 국 ~ 6 국과 8 국의 6 개가 되었다.
1960년대 초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그 동안 스토로우져 방식에서 EMD 라는 방식 변화가 있었다.(표1-3,그림1-7참조) 그러나 기술적인 면에서 커다란 진보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인 기계식 자동교환기의 시대를 열 수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 받을 만한 것이었다.
2.4 전자식 교환기(Electronics Exchange)
가. 반전자 교환기(Space Division Exchange)의 도입
1970년대에 들어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면서 새로운 전자교환방식의 도입이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하였다. 1964년 대한통신과 ITT에서 크로스바 교환기의 국산화를, 1967년 7월에는 대한전선에서 크로스바 교환기 생산공장의 투자 신청이 있었다.
또 1970년 4월에는 다시 대한전선과 미국ITT, 삼성과 일본NEC, 그리고 불이 무역과 NEC 가 각각 크로스바 교환기 생산의 투자신청이 있었다. 이들은 나중에 사설교환기로 일부 생산 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교환방식에 관한 새로운 투자요구에 직면하여 1970년 3월 16일 경제장관협의회에서는 그 동안 검토된 서독차관에 의한 ESK형 전자교환기의 도입을 보유하기로 결정하는 한편, 전자교환기에 대한 경제성, 기술적 특성 및 국산화 가능성을 종합 검토하여 1971년 초에 국산화를 위한 합작투자를 추진한다는 내용의 자동전화 교환기의 표준화 및 국산화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전자교환방식의 도입 추진계획에 의거 생산체제의 준비작업이 상공부 주관으로 본격화 되었고, 1976년 12월 27일 대통령 재가를 얻어 1977년 1월 상공부 주관으로 관계기관의 협의를 거쳐 1977년 2월 15일 전자교환기의 제작,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전자통신주식회사가 한국산업은행의 전액출자로 설립되었으며, 3월 7일 대우센터 23층에서 현판식이 거행됨으로써 교환기 생산 준비가 본격화 되었다.
1980년대에 이르러 인쇄회로기판(PBA) 제조기술 및 전원기술 그리고 제품설계 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초년도 30%에 불과했던 자체기술을 1년 만에 조립 국산화 율을 71%로 끌어 올렸다. 다시 1981년에는 전자교환기의 핵심부품인 교환기용 컴퓨터와 주변장치를 자체기술로 생산함으로써 전자교환기의 설계에서부터 생산, 시험, 보수 등 전반적인 기술을 자립하게 되었다.
마침내 1979년 12월 16일 영동 국과 당산 국에 1만 회선씩의 M10CN전자교환기가 개통되었다.
이것은 외자 33억 7천만원, 내자 16억원 등 50억원의 설치비와 연인원 1만 8 천명이 투입된 설치공사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출현을 보인 전자식 교환기로 역사의 첫 페이지를 기록하게 되었으며, 전자교환기시대 개막으로써 통신수요 급증에 대처하고 시설충족 및 서비스 향상으로 전자교환방식이 본격적으로 공급되고 국산화 계획이 추진되면서 기계식 교환시대에서 전자식 교환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른바 3세대의 교환기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선진국의 기술습득 및 자립화 기반 구축을 위해 제 2 기종으로 WE의 No.1A 전자교환기를 선정하여 1980년 4월 15일 금성반도체(주)는 No.1A 전자교환기 생산업체로 지정되었으며, 미국의 WE 사와 합작투자 및 기술제휴 협상을 하게 되었다.
계약체결 후 1980년부터 1983년까지는 교환기의 일부는 턴키 방식으로 직 도입 공급하였으며 2년간의 생산 준비기간을 거쳐 1981년 10월 6일 을지 전화국에 4만 2천 회선이 최초로 개통되었고. 이어서 11월 2일 중앙전화국에 3만 회선을 공급, 1982년 사당전화국 (현 반포지점)에 3만 회선을 최초로 자체 생산품이 공급되었다. 아울러 1982년 4월 1일 혜화전화국에 미국 AT&T사의 시외 및 국제 겸용인 디지탈 대용량 교환기(No. 4) 5만 3천 회선에 대한 설치공사를 시작으로 4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1983년 7월 3일 총 338구간에 3만 2,680 회선을 수용 개통함에 따라 국내 최초로 디지탈 전자교환기로 시외 및 국제전화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었다.
시외교환기의 경우 1960년까지 수동식 교환대에 의존하였고 1971년에 DDD교환시설을 도입하여 서울-부산간에 설치한 것이 시외자동교환시설의 시초였다. 1976년 STD교환기를 개발하여 설치 함으로써 자동교환시설이 이원화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특정지역간에만 소통이 가능하였고 DDD교환시설과 STD교환시설이 전 지역간에 접속이 되는 것이 아니어서 곧 철거하게 되었다.
나. 전 전자 교환기(Time Division Exchange)의 도입
제 5차 통신사업 5개년 계획 기간 중 전기통신의 현대화 계획에 따라 1976년 시내교환기의 전자화 계획에 이어 1979년 시외 부문을 고도화시키기 위해 시외 및 국제교환기의 디지털화 계획을 수립하여 5대 도시에 대용량 시외교환기인 No.4 전자교환기를 도입하게 되었으며, 1979년 10월 28일 확정된 농어촌전화 현대화계획의 일환으로 농어촌지역에 시분할방식의 전자교환기 설치계획이 추진되면서 자체개발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국내 TDX 개발 업무 검토를 위해 1981년 5월 15일부터 6월 20일까지 35 일간 농어촌 통신개선정책 결정을 위한 조사가 체신부 및 업체(OPC, GTS, KTC)에서 파견된 6 명으로 구성된 조사반에 의하여 용량 가능성, 및 시기, 국내산업육성 및 기술향상의 적합성 여부, 경제성 등 여러 측면으로 실시하였다.
또한 1981년 8월에 수립한 디지털 교환기 계획 검토 중 기존 DDD교환시설 및 STD 교환시설로는 전국의 완전자동화를 이룩할 수 없으므로 전자교환기술과 PCM 전송기술이 복합된 디지털 교환기의 도입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기종 별 검토결과 AXE-10 기종이 가격 면에서 가장 유리할 뿐만 아니라 성능 및 용량 면에서 만족스럽고 운용실적이 많고 또한 차관 조건이 유리하고 요구조건인 한국형 디지털 교환기 개발기술 및 반도체 생산기술을 위한 기술전수를 받을 수 있어 AXE-10 전자교환기가 선정되었다. [추후 국산 전 전자교환기(TDX)개발의 원동력이 됨〕
1983년 4월 동양정밀공업(주)은 스웨덴의 LM Ericsson사와 대한민국의 통신 현대화 및 선진화를 위해 AXE-10 디지털 교환기 생산공급을 위한 합작 투자계약을 체결하였고 1983년 8월에는 한국전기통신공사(현 KT 전신)와 동양전자통신(구 동양정밀공업)간에 전전자 교환기 AXE-10의 제조, 공급을 위한 합의서가 체결되어 생산을 개시한 후 6개월 만에 포천, 합천, 부여전화국에 3만 회선을 공급 설치하여 첫 개통식을 거행함으로써 농어촌 지역에 최첨단 디지털 교환기 AXE-10를 공급하게 되었다.
또한 시외용 AXE-10 교환기를 1983년 12월부터 1984년 12월 사이에 마산(52K)등 17국 23만 회선이 공급 개통 되었다.
한편 1980년 10월 7일 상공부(현 산업자원부 전신)는 중복 과잉투자를 방지하고 국가자원 및 기술의 효율적 배분으로 기간산업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전자교환기 부문 중화학투자조정 조치를 실시하였다. 이에 따라 도시용 국설 교환기 제 1기종(M10CN) 공급업체인 삼성반도체통신(주)과 제 2기종(NO.1A) 공급업체인 금성반도체가 시분할 전자교환기인 S1240과 No.5ESS의 제조를 위한 인가를 받아 삼성반도체통신(주)은 1240 교환기 86,000 회선 자재를 1988년 12월 말에 납품되어 부산(18K), 장림(20K), 여의(26K), 용산(22K)에 대한 설치공사가 1988년 12월 31일 착공하여 1989년 7월 31일 개통됨으로써 도시형 전전지 교환기 시대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또한 5ESS 교환기는 금성반도체(주)에서 10여 년의 No.1A 전자교환기 생산에서 이룩한 기술축적을 바탕으로 생산 초기에 집중 투자하여 유니트, 캐비닛 및 케이블은 생산 초기 년도부터 100% 국산화를 달성하였고 1년간의 상용준비 단계, 2년간의 상용시험 및 1년간의 생산 준비과정을 거쳐 1988년 12월 국내 첫 납품 및 1989년도 7월 12일 중앙전화국(현 KT중앙지사)에 22,000 회선을 국내에 처음 개통하였다.
2.5 국내 개발 전자교환기
가. TDX-1 전자교환기
우리나라의 전자식교환기의 연구는 1971년 KIST에서 시작된 사설교환기의 연구부터 시작되어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바탕으로 1979년에 96회선 용량의 교환기를 개발하였고 1980년에는 200회선 용량의 교환기를 개발하여 1981년에 최초로 TDX라고 명명된 500회선 용량의 선행 시제품 TDX-1X의 개발이 추진되었다. 그리하여 당시의 국내개발 기종이 강력히 요구되던 시대적 상황에 따라 TDX-1X의 제작으로 자체개발에 대한 자신을 가지게 되었고 1982년 용인군 송전 우체국에서 시범인증 개통식에서 정식으로 TDX-1X로 결정되어 최초로 TDX가 불러지게 되었으며, 국내에서 자체 개발된 교환기의 이름으로 TDX가 출현하게 되었다. (그림 1-8 참조) 또한 TDX-1X의 운용분석 결과를 근간으로 1983년에 농어촌용 교환기로 실용화할 1만회선 용량의 TDX-1의 설계 제작업무가 추진되었다.
1984년 11월 한국전기통신공사와 한국전기통신연구소의 TDX-1 상용교환기 규격이 제정됨에 따라 동년 12월 무주 등 4 개 지역에 24,000 회선에 대한 TDX-1 상용시험 교환기가 발주되고 1986년 2월 말 개통을 목표로 생산준비에 돌입하였다. 이때에 TDX-1 RSS규격, TDX-1 컨테이너 규격, TDX-1 상용규격, TDX-1 국 설계 기준 및 표준공법이 제정 되었다.
초기 설치지역은 금성반도체(주)가 전곡, 연천, 진상, 대광, 백학 5 개국을 담당하였고, 삼성반도체(주)는 모국이 가평, 분국이 조종, 설악, 청평 3개국으로 1986년 1월 20일 최초로 국설 교환기로 개발된 TDX-1의 역사적인 개통을 맞이하였다.
더구나 이 시대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사항은 자국산 기종을 개발하여 상용화 시킴으로써 디지탈 전자교환기가 단일 국산기종으로 통일되는 계기를 구축하였다는 점이다. 이를 계기로 기술자립화 시대를 엮어 나가게 되었다.
나. TDX-10 전전자 교환기
그뿐만 아니라 도입 교환기의 구입 가를 저렴하게 내리는 원동력이 되어 결국 전국 자동화 완성, 만성적 전화적체의 해소에 크게 기여하였고. TDX-1의 자체 기술력 바탕으로 국내 개발한 대형 전전자교환기(TDX-10)를 서울(강동, 노원), 서대전, 대전, 대구(상동), 북울산 전화국에 1991년 11월 30일 최초 개통되었다.
1986년 1월 29일 TWX 간담회에서 2만회선 정도로 용량을 증대하기로 결정하여 1986년 6월 26일 TDX-1A 용량 증대기인 TDX-1B의 1차 위원회가 개최되었다. TDX-1B 개발은 TDX-1A의 기본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 설계변경으로 용량을 증대하며 기능을 개선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스위치 용량 증대, 시스템 및 프로세서의 호 처리 능력개선, 가입자 및 트렁크 수용용량 증대, RSS 가입자 용량 증대 및 유지보수 기능 개선, 트렁크 및 RSS의 CEPT 방식 개발, 스위치 처리 능력 개선, M&A 기능 보완 개발 등으로 방향이 결정됨에 따라 본격적인 개발이 추진되었다.
TDX-10 및 TDX-100교환기 개발은 그 동안 자체 기술력으로 개발, 운용되어 온 TDX-10 및 TDX-10A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외국 교환기에 비해 성능·가격·기술면에서 열세였다. 이에 따라 외국의 디지털 교환기에 비해 성능 및 가격 측면에서도 경쟁력을 갖추며 앞으로 초고속 광대역 차세대 교환기 이전의 중·저속 대용량 교환기를 확보하고, 약 800만회선 규모의 반 전자교환기 대체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국내 통신시장 보호는 물론 나아가 세계시장 공략을 위해서 신형 교환기인 TDX-100교환기의 개발이 필요했다.
다. TDX-100 전전자 교환기
이에 따라 1996년부터 한국통신(KT 전신)이 주관하고 대우, 삼성, LG 연합체, 한화정보통신(주)이 경쟁 개발을 시작한 TDX-100교환기는 선정 평가 시험을 거쳐 가장 우수한 교환기를 표준 시스템으로 선정하였으며, 1998년 5월부터 8월까지 개발확인 시험을 실시하여 9월에 표준규격을 확정하고 1999년 상용화를 완료하였으며, 1990년대가 끝나는 1999년 10월 20일 국내 기술력으로 최초 개발한 대용량화 된 TDX-100교환기를 머큐리(대우통신 후신)에서 초기 설치 개통하였다.
TDX-100교환기의 주요 특징은 소 용량 모듈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소 용량에서부터 최대 20만 가입자 회선 규모까지 경제적으로 시설 및 용량 확장이 용이하고 음성 망, ISDN망, 지능망, 이동망, 신호망 등 다양한 네트워크 구성이 가능하며 ISDN,PCS, 차세대 지능망(AIN), 광 가입자 수용(IDLC), 통합망 관리(TMN)기능 등 유·무선 고도통신 첨단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TDX-100은 또한 원격지에서 운용 및 유지보수가 가능하며, 기구물 높이도 TDX-10A보다 30cm 줄이고 회로기판(PBA) 종 수도 110 종에서 52 종으로 대폭 줄임으로써 생산·설치공사 면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초기 설치는 수도권에 네 개 시스템(가좌 73,673회선, 고덕 5,274회선, 금천 26,843회선, 가락 83,992회선)으로 2002년 10월 말 46 시스템 2,631,418 회선이 설치되어 각 도권 별로 운용하고 있으며, 연차적으로 계속 증설할 계획이다.
제 3 절 교환방식의 변천
교환방식에는 연결방식에 따라 수동식과 자동식, 그리고 미래의 인공지능방식이 있으며, 수동방식에는 자석식과 공전식이 있었다. 자동식에는 통화로에 사용되는 스위치 소자에 따라 기계식(Electromagnetic)과 전자식(Electronic Switching System)으로 분류할 수 있다.
기계식은 스토우져, EMD교환기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직 및 수평운동의 기계적 스위치가 동작하면서 회선을 점유하는 교환기였다. 같은 기계식이라도 크로스바식은 바(Ber)의 횡축과 종축 이동에 의해 접점이 교접되는 원리를 이용하여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2 진법적 체계를 이루고 있었다. 전자식이란 통화로의 연결소자가 기계적 접점이 아닌 전자식 접점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축적프로그램 제어(Stored Program Control)방식에 의한 전산제어기를 사용하는 교환기를 말하며,현재 국내에서 운용하고 있는 교환기는 (표 1-4)와 같이 전자식이다.
그러나 전자식 교환기에도 제어방식만을 전자화한 아나로그 전자교환방식(반전자교환방식)과 통화로 스위치까지를 완전 전자화 시킨 디지탈 전자교환방식(전전자 교환방식)으로 분류한다. 이들 디지탈 전자교환기는 ISDN교환기로 진화하였으며, 동기형 전송모드(STM : Synchronous Transfer Mode)와 비동기형 전송모드(ATM : Asynchronous Transfer Mode)의 교환방식이 있다.
아울러 전자식 교환기 이후에는 광전 소자(Photonic Device)를 이용한 고속 광전 교환기가 외국에서는 상용화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차세대 통신망(엑세스 게이트웨이) 구축 추진으로 고속 광전 교환기의 개발은 불투명하고, 2010년 이후에는 인공 지능식 교환기가 개발 출현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