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월가의 '냉소'

[기자수첩] 월가의 '냉소'

최규연 기자
2003.04.30 14:15

[기자수첩] 월가의 '냉소'

"행간을 읽지 못하는 '순진한 녀석'은 오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게 증권산업의 속성이다."

28일 미국 감독당국이 공개한 월가의 한 애널리스트의 메모 가운데 일부다. 리서치 관행에 대한 냉소주의가 월가 내 만연해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월가의 투자자 오도 혐의에 대한 미 감독당국의 조사가 14억달러 규모의 합의금과 함께 2년여 만에 종결됐다. 헨리 블로짓과 잭 그룹만 등 90년대 대표 애널리스트들은 증권업계 종사가 영구 금지되는 등 역사상 가장 강도높은 규제안으로 기록된다. 이번 사정작업을 이끌어온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 법무장관도 "낡은 과거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월가의 냉소적인 시각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록적인' 벌금형이었지만 월가가 수년간 투자자를 오도해 벌어들인 검은 돈에 대한 처벌치곤 그 규모가 크지 않다. 일례로 씨티그룹의 경우 지난해 순이익이 153억달러에 달해 4억달러의 벌금이 실질적으로 경영에 미칠 타격은 없다시피 하다.

역사적인 스캔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증권사의 수장들은 건재하다. 자사의 애널리스트들이 '쓰레기같은' 주식을 버젓이 추천했으나 CEO 가운데 누구 하나 책임지고 물러서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샌디 웨일 씨티그룹 회장의 경우 AT&T의 분석 보고서가 낙관적으로 작성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리서치 애널리스트와의 접촉금지라는 규제를 받는데 그쳤다.

투자은행과 조사업무를 분리했다고 해도 리서치는 증권사 사업부의 일부로 남아있어, 이해상충의 가능성은 상존한다. 게다가 지금 월가는 3년 연속 침체장으로 고전하고 있어 부정관행에 대한 유혹에 노출돼 있다.

이번 스캔들로 '분노한' 투자자들은 깊은 불신감을 갖게 됐다. 신용이 최우선인 금융산업에서 투자자의 불신은 두고두고 월가의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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