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차입경영 부추기는 금융제도

[기고]차입경영 부추기는 금융제도

권의종 신보 둔산지점장/경영학박사
2004.05.19 12:21

[기고]차입경영 부추기는 금융제도

중소기업에는 돈이 없다. 요즘은 더욱 그렇다. 자금사정이 이처럼 나쁜 적이 없었지 않나 싶을 정도다. 경기침체, 원자재 파동, 경쟁 심화 등 삼재가 겹치면서 매출은 늘지 않는데 수익성까지 악화됐다. 돈 가뭄이 닥칠 수밖에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중소기업이 빚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만성적인 차입경영의 책임은 일단 기업에 있다. 하지만 금융제도상으로 보완과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금융기관의 설비자금 대출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중소기업 설비자금 대출의 경우 시설이 설치되는 동안의 위험을 담보하기 위해 신용보증서가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시설 설치가 완료되면 당해 시설이 금융기관에 담보로 제공돼 시설평가 금액만큼 신용보증이 해지되는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금융기관의 시설물에 대한 평가가 인색해지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기계장치에 대해서는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거나 아예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려고까지 한다. 기업이 부실화되면 설비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므로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기 어려운 은행의 입장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이왕 기업의 사업성을 믿고 대출을 결정한 바에야 최소한 대출로 조성된 시설에 대해서만큼은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마땅하다.

 

중소기업에 대한 운전자금 대출기간 운영에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현재 국내은행의 경우 운전자금 대출은 거의 전부가 1년짜리 단기대출로서 만기 일시상환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과 같이 치열한 경쟁여건 하에서 어떤 기업도 1년 후에 영업수익으로 대출원금을 갚을 수 없다.

 

과거 금융기관이 장기자금 조달이 어렵고 우월한 위치에서 채무자의 입장은 전혀 고려치 않았던 시절에 생긴 불합리한 대출제도의 잔재라 할 수 있다. 이같은 현실에서 기업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1년만기 대출조건을 수용하곤 한다. 물론 1년 후에 차입금을 갚는 상환 계획은 아예 세울 생각도 못한 채 말이다. 그렇게 이자만 내다보니 빚 부담은 가볍게 느껴지고 마침내 빚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게된다. 만기가 닥치면 대출기일을 연장하든 다른 대출을 받아 돌려 갚으면 되지 하는 생각으로 은행 돈을 빌리게 된다. 이게 버릇이 되면 자연히 빚은 갚기 어렵게 된다.

 

당장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우리와는 판이하다. 운전자금 대출이 원칙적으로 대출기간 3~5년짜리인 중장기대출로 상환방식 또한 매월 원리금 분할상환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원리금을 매달 상환하다 보니 자금부담은 되지만 매달 소정액을 꼬박꼬박 납입하다 보면 어느새 만기가 되고 대출금도 자동으로 갚아지게 된다.

금융기관도 자금지원 회전율이 높아지는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국내 금융기관처럼 만기가 되어 갑자기 대출원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갚도록 강요하지 않아도 된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외국의 선진 제도들은 그렇게 벤치마킹을 잘 하면서 왜 이런 부분들은 배우거나 따르지 않는 것일까. 때리는 금융기관에게는 사소한 문제일 수 있으나, 맞는 중소기업은 목숨이 달린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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