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이젠 '비노'(批盧)도 싫다
국가보안법은 폐지해야 한다. 누구의 말처럼 칼집에 넣어 박물관으로 보내야 한다. 함부로 휘둘리는 그 칼날에 더 이상 억울한 피를 묻혀서는 안된다. 과거사 문제도 바로 잡아야 한다. 누가 뭐라 해도 우리가 친일과 군부독재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건 분명하다. 좌익진영에서 독립운동을 한 분도 애국자로 모셔야 한다는 주장 또한 옳다.
수도도 옮기는 게 좋겠다. 남쪽으로 내려가는게 찜찜하지만 천도가 아니고서는 서울의 고도 비만증을 고칠 수 없을 것 같다. 언론시장도 뜯어 고쳐야 한다. 언론탄압 운운하며 정권 흔들기에 열을 내고 있는 일부 언론의 지독한 `이중인격'이 나도 몹시 부끄럽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순환출자의 마술로 가공자본을 만들어 총수의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문어발식 사세확장을 꾀하는 재벌 체제가 남아 있는 한 어쩔 수 없다. 이 규제가 기업들의 투자활동을 원천적으로 가로 막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노사모'인가. 나는 노사모가 아니다. 그러면 `비노'(批盧 : 비판적 지지자)인가. 굳이 편가름을 한다면 그렇다고 하겠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비노'이고 싶지 않다.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 섣부른 개혁론으로 나라를 벌집 쑤셔 놓는 게 싫다. 말로만 개혁이지 실제로는 한발짝도 내딪지 못한 채 주저 앉을 것 같아 걱정된다. 지긋지긋한 당파 싸움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전략도, 리더십도 없이 선무당처럼 설치는게 영 미덥지 않다. 정권 초기에 요란에게 만들어 냈던 그 많은 `개혁 로드맵'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잠자고 있는지 궁금하다. 실패한 개혁이 불러올 `반개혁'의 역풍이 두렵다.
둘째, 경제를 `졸'(卒)로 보는 행태가 밉다. 말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경제는 분명 `졸'이 됐다. 대선 당시 연평균 7% 성장을 장담하다가 은글슬쩍 거둬들일 때부터 수상했다. "길거리가 최루탄으로 뒤덮혀도 우리 경제는 고성장을 지속했다"고 큰소리 칠 때 알아봤다. 최루탄을 쏘아댄 독재자들이 경제만큼은 애지중지했다는 사실은 몰랐나. 그리고 얼마 전 "반기업 정서는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잘라 버릴 때 거의 두손을 들고 말았다. 먹고 살기 고달픈 가난한 나라로 서민들을 몰고 가는 것 같아 겁난다.
이런 식의 `비노' 이탈을 `친노'(親盧)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면 역시 두가지다. 첫째는 자기 합리화. "개혁 진통이다. 개혁을 위한 비용이다. 안타깝지만 감수한다. 역사가 알아 줄 것이다" 등등. 둘째는 편가름과 적대. "이제부터는 동지가 아니다. 애초부터 경계선을 오가던 기회주의자였다. 수구 세력의 구구한 궤변이고 저항이다" 등등.
이렇게 배척하고 털어내면서 전선을 양분한 결과는 정말 보잘 것 없다. 이젠 네티즌을 상대로 조사해도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론이 더 우세하다. `노짱' 열풍이 차갑게 식어버렸다. 불황은 깊고 경제는 힘을 잃었다. 서민들은 고달프다. 기업인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끊었다. 실망이 희망을 덮어버렸다. 결국 개혁은 길을 잃고 `반노'(反盧)의 기운만 드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