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기사 써주는 슈퍼개미

[기자수첩]기사 써주는 슈퍼개미

이상배 기자
2004.10.25 12:42

[기자수첩]기사 써주는 슈퍼개미

"기사 제보가 왔습니다"

 

나른한 금요일 오후. 기자가 일하는 회사로부터 불쑥 연락이 왔다. 이메일로 기사 거리를 주고 싶다는 한 제보자의 휴대폰 번호와 함께. 고마운 마음에 냉큼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잠시 후 날아온 이메일. 그건 단순한 제보가 아니라 한편의 완성된 기사였다. 내용인 즉, 최근 한 상장사의 지분을 대거 사들여 2대주주로 올라선 한 슈퍼개미가 지분을 추가로 사들이고 우호주주를 규합해 적대적 인수·합병(M&A)을 본격화하려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놀랍게도 기사 요건까지 제대로 지키고 있었다. “~의 M&A 가능성이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는 리드로 시작해 “시장에서는 (양측의) 보유지분이 언제 역전될지 주시하는 상황이다”로 끝을 맺는다.

 

메일을 확인하던 중 제보자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제보자는 그 슈퍼개미와 잘 아는 사이라며 그의 경영권 확보 의지를 보증한다고 했다. 그리니 가급적 서둘러 기사를 내보내 달라고 했다.

 

올들어 남한제지 서울식품 한국슈넬제약 지니웍스 포커스 세원화성 등 수많은 기업들이 '슈퍼개미' 테마에 휩쓸렸다. 혼자서 상장사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주가를 맘껏 주무르는 '슈퍼개미'가 본격적으로 출현한지 불과 1년도 채 안 돼, 이제는 대리인을 통해 제보를 하고 기사도 직접 작성해주는 '슈퍼개미'까지 등장했다.

 

그런데 지난 여름 한 상장사의 지분을 잔뜩 사들인 뒤 대리인을 통해 기자에 연락해서 "반드시 경영권을 확보할테니 믿어달라"고 강변하던 한 '슈퍼개미'가 뇌리를 스치는 건 왜일까? 그 '슈퍼개미'는 불과 보름도 안 돼 "경영권 확보에 실패했다"며 끝내 지분을 팔고 떠나버렸다.

 

'제보에, 기사까지 써주는 슈퍼개미...' 슈퍼개미가 이처럼 진화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부화뇌동하다 주머니를 털리는 불쌍한 개미(개인투자자)들이 있다는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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