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달새 달라진 박승총재
“성숙하지 못한 투기세력은 혼나봐야 한다”(10월7일)
“시장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해 미안하다”(11월11일)
박승 한국은행 총재가 한달만에 고개를 숙였다. 그는 지난달 금통위에서 시장의 금리인하 기대에도 불구하고 동결을 결정한 뒤 기세등등했었다. 한은의 금리인하 무용론을 수긍하지 않고 투기나 일삼는 채권시장 사람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한달이 지난 이날 박 총재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이날 그의 말 속에서 금리인하 무용론은 자취를 감췄다.
정부의 경기부양에 힘을 보태야 한다고 강조했고, 환율이 하락하고 유가가 안정돼 물가상승 부담이 덜어졌다는 것을 이번 금리 인하의 근거로 제시했다. 지난번 금통위에서 물가에 대해 크게 우려했다. 정작 그의 우려대로 물가가 한은의 관리 목표(3.5%)에 바짝 다가선 3.4%로 상승했다. 그런데도 이번엔 물가 우려를 앞세우지 않았다.
채권시장은 그동안 한은이 물가를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경기가 나빠 물가가 오를 염려가 크지 않고 최근 유가 때문에 다소 물가가 오른 것도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 한은의 한 국장은 "중앙은행의 메시지를 잘 이해해야한다"고 충고했다.
원/달러환율 하락이 금리 인하를 불러올 것이라고 예단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환매채(RP)를 통해 시중에 단기자금을 공급하던 것을 멈춰 금리가 인하되지 않을 것이란 신호까지 줬다. 이쯤되자 채권시장 사람들은 한은의 금리인하 불가 논리와 의지를 따를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 금통위가 이날 금리인하 결정을 발표하기 직전에 금리인하 소문이 돌았어도 채권시장의 대부분 사람들이 믿지 않을 정도였다.
박 총재가 한달전 〃혼나봐야한다〃고 꾸짖던 시장에 대해 이번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앞으로 무슨 말을 한들 쉽게 믿을지 의문이다. 한은은 이날 신뢰라는 주요 정책수단을 잃었다.